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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ish Jun 28. 2018

오카리나와 돌고래

내 인생에 처음으로 만난 멋진 어른

오카리나와 돌고래

책상 정리를 하다가 하단 서랍, 그것도 가장 깊은 안쪽 구석에서 손바닥만 한 상자를 발견했다. 먼지로 뒤덮인 곳을 피해 모서리 부분을 살짝 집어 상자를 열어보니 그곳에 오래된 오카리나가 있었다.


대략 이런 모양이었던 것 같다. (출처: 갓피플몰)


노란 새 모양을 한 오카리나를 보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네가 여기 있었구나. 나는 그것이 진짜 동물이라도 되는 양 머리 부분을 쓰다듬었다.



그 오카리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반에서 단체로 구입했던 것이었다. 사실 우리 반뿐만이 아니라 1학년 전체가 그것을 구입했을 것이다. 정확한 과목명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주일에 1시간 듣는 "재량 과목" 시간에 그 자그만 악기가 필요했다. 가격은 만 원. 악기치고는 퍽이나 싼 금액이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생활기록부에도 성적 반영이 되지 않는 과목이라 한 템포 "쉬어가는" 수업이었다. 성적 반영이 되지 않는 신설 과목이라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도, 정해진 형식도 없었던 그 수업은 요즘 말로는 정말 "꿀"이었다.

해당 과목의 첫 번째 시간. "재량"이라는 말의 의미도 몰랐던 우리는 멀뚱멀뚱 선생님이 들어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교실 앞문으로 들어온 선생님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선생님이었다. 통이 큰 치마를 입은 그 선생님은 임신 중인 것 같았다. 그렇게 젊은 여자 선생님은 처음이었다. 어쩐 일인지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들은 죄다 남자 선생님 뿐이었고, 5학년 때 우리에게 십자수의 매력을 알려주셨던 담임 선생님은 여자 선생님이었지만 호탕한 웃음에 팔자걸음을 하는 중년의 교사였다. 처음으로 20~30대의 젊은 여자 선생님을 보니 신기하고 괜스레 마음이 들떴다. 선생님께서는 "재량 수업"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고 부담을 느낄 필요 없이 재미있게 참여하면 된다고 우리를 독려해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선생님이 5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분위기가 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아줌마 파마"라고 불리는 뽀글이 머리를 하지도 않았고 팔자걸음을 걷지도 않았지만, 유쾌하고 당당한 성격과 호탕한 웃음이 닮아있었다. 복도를 거닐 때 당당하게 휘두르는 팔과 꼿꼿하게 핀 등도 얼추 비슷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악기 하나 다루지 못해 큰일이 날 것은 없지만, 악기 하나 정도 다룰 줄 아는 것이 개인의 만족과 삶의 짊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하시며 왜 "오카리나"를 수업을 하기로 결정하셨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우리에게 "첫날에는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며 남은 시간을 자유시간으로 주었다. 당시에는 꽤나 파격적이었던 결단이었다. 친구들과 눈치껏 떠들고 장난치다 보니 어느새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까지 5분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교단 왼쪽, 한구석에 컴퓨터가 놓인 책상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던 선생님께서는 교단에 올라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주문한 오카리나가 학교에 배송되기까지 약 일주일 정도 걸릴 거야 얘들아. 그럼 다음 수업시간에 우리가 할 게 없잖아."

"선생님 영화 봐요!"
"선생님 첫사랑 얘기해주세요!!"

교실 곳곳에서 이런저런 요청이 쇄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되지만, 그때는 왜 그리 누군가의  "첫사랑"에 관심이 그렇게 많았을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노는 수업"임에도 좀 더 날로 먹으려는 학생들이 저마다 하고 싶은 활동을 소리쳤다. 다소 무질서해 보이는 그 광경에도 선생님은 웃으면서 우리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셨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영화"가 가장 무난한 선택으로 느껴졌고 결국에는 선생님도 이를 수용하시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들도 좋아하는 활동이고 선생님들에게도 리스크가 덜했다. 누가 다칠 일도 없고 조용히 앉아서 스크린만 쳐다보는 활동이라 인접한 다른 반의 수업을 방해할 일도 없었다. 여러모로 편리한 옵션이 "영화 보기" 아니던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몇 주 동안 얼마나 수많은 영화를 급우들과 함께 보았는지를 생각해보면 "영화 보기"가 제일 안전한 선택이었다.

"자자. 얘들아 조금만 조용히 하자!"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선생님의 소리에 아이들은 금세 조용해졌다. 말똥말똥 빛나는 두 눈은 하나 된 마음으로 외치고 있었다. 영화! 영화! 영화!

"다음 시간에는 너희들이 질문을 하면 선생님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대답을 해줄게!"

기대했던 답변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을 곱씹어 본  아이들은 금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오호라. 이것은 설마 첫사랑 얘기를 해주겠다는 의미일까? 


(대박사건! 출처: 무한도전)


"우와! 선생님! 첫사랑 얘기해주시는 거예요??"

와. 역시 젊은 선생님은 다른 것인가? 첫사랑 질문에 이렇게나 쿨한 태도를 보이다니. 나는 놀라웠다. 그동안 한 번도 첫사랑 얘기를 기꺼이 해주려고 하던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 다시 생각해보면, 반나절도 못되어 까끌까끌한 수염이 거뭇하게 올라오는 그동안의 남자 선생님들의 첫사랑이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아니. 첫사랑 얘기 말고, 너희들이 성(性)에 대해 궁금한 것을 질문하면 다 대답해줄게."

첫사랑 얘기를 기대하며 흥분되었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며 눈을 양옆으로 돌려 서로의 눈치를 봤다. 우리가 들은 게 우리가 들은 게 맞나? 열에 아홉은 자신의 청각을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성(性)이라니. 그것도 선생님의 입에서. 그것은 교실이라는 공간 내에서는 거의 "금기어"와 다를 바 없는 단어가 아니던가.

"여러분은 이제 사춘기도 올 것이고, 신체도 생각도 많이 변할 거예요. 이 중에는 이미 변화가 시작된 학생들도 있을 겁니다. 생리 시작한 학생들도 있죠? 여러분은 이제 2차 성징이라고 하는 변화를 겪을 테고이성에 대한 관심도 커질 거예요. 그런데 내가 생각했을 때는 아무도 그것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것 같아.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그것에 대해서 대놓고 말하는 것을 꺼려 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너희들은 몰라도 돼. 공부나 열심히 해'라던가 '엄마 아빠가 손을 잡고 잤더니 아기가 생겼어, 밤 사이에 황새가 아기 바구니를 놓고 갔다'라는 그런 대답은 이제 여러분의 수준에 맞지 않다고 나는 생각해요. 여러분들 사이에서 궁금한 것이 있어도 부끄러워서, 창피하다고 느껴서 혹은 누구한테 물어볼지 몰라서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친구들, 그런 친구들한테 나는 전혀 창피를 느낄 필요가 없다.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고 여러분들의 그 질문들에 대답을 해주고 싶어요. 다음 주에 그런 시간을 갖겠다고 미리 말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무엇을 질문할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어서입니다. '이거 물어보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어떠한 질문에도 다 대답해줄 거니까 걱정 말고 잘 생각해오세요.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칩니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시자 아이들을 웅성거렸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당혹스러움과 흥미로움이 동시에 읽혔다. 두 번째 수업 시간까지의 일주일의 시간 동안, 쉬는 시간, 과학실이나 운동장으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서로가 생각해 놓은 질문들에 대해 물었지만, 그때까지도 "낯선 수업 방식과 내용"에 말하기 꺼려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마침내 "재량수업의 날"이 왔다. 음악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 우리들은 주변 친구들의 허리를 팔꿈치로 찌르면서 서로를 떠봤다.

"너는 뭐 물어볼 거야?"

"너는 뭐 물어볼 건데?"

"내가 먼저 물아 봤잖아."

"네가 먼저 말해."

얼마나 많은 질문들에 '애들을 몰라도 돼'라는 답이 돌아왔던가. 그것은 만능 치트키처럼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했기에 어른들에게는 정말 편리한 대답이었다. 그런 대답을 듣고 자란 우리들은 성(性)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것 자체가 금기 같았고, 그것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다. 그 죄의식이 어찌나 큰지, "우리 우정 뽀레버"라는 오그라드는 말도 거침없이 말하던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그것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함을 느꼈다. 어쩌면 너무 가깝기에 더욱 들키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근데 진짜 다 대답해주실까?"

"그러신다고 했잖아."

"그래도 설마. 선생님인데"

모든 지 다 알려주겠다는 선생님의 발언도 의심의 대상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수위의 상한선이 있지 않을까? 선생님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어떤 영역이 있지 않을까? 하긴 있다 한들, 그 정도의 질문을 우리가 꺼낼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얘들아. 일주일 동안 잘 생각해봤니?"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질문을 하는 사람은 우리인데, 더 여유로운 쪽은 선생님이었다.

"자. 약속한 대로 다 대답해줄 테니까 질문을 해봐."

"...."

"아무도 없어?"

"...."

머뭇거리고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우리를 선생님은 미소를 띠며 바라보았다. 숨 막히는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회장이 용기를 내어 총대를 멨다.

"성감대가 뭐예요?"

용자를 향한 환호가 쏟아졌다.


(출처 : 아는형님)


선생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성감대는 자극이 올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위를 성감대라고 부르는데 사람마다 다 달라."

회장의 용기와 선생님의 쿨한 태도에 감명을 받은 뒤쪽에 앉은 A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처녀막이 뭐예요?"

"처녀막은 질 입구 쪽에 있는 건데 보통 성관계로 인해서 파열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아. 자전거 타다가도 찢어질 수 있어."


창문가에 앉은 B도 입을 열었다.


"배란일은요?"

"배란일은 난소에서 난자가 나오는 시기인데, 이때 성관계를 가지면 임신 확률이 높아지지."

선생님의 태도는 일관되었다. 차분하고 똑 부러졌다. 정말 어떠한 질문에도 다 대답을 해주었다. 선생님의 진지한 태도가 우리에게 이런 궁금증을 갖는 것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었다.
선생님은 어떠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았고 어떠한 질문도 비웃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해도 어리석은 질문에도 성심성의를 다해 답해주는 선생님의 모습에 우리도 점점 질문의 수위를 높여갔다.

피임방법, 성관계와 관련된 용어 등 민감한 있는 질문에도 선생님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답해주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더 이상 질문이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셨다.

"얘들아. 성에 대해 궁금해하고 성적인 욕구가 드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 그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니까. 하지만 너희들의 몸은 아직도 자라고 있는 중이야. 완전히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중히 다뤄줘야겠지? 그럼 몸이 다 자라 성인이 되면 성관계를 가져도 괜찮은 건가?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단, 너희들이 너희들의 몸과 혹시 생길지도 모를 아기를 책임질 수 있다고 한다면! 성관계는 그냥 재미나 즐거움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아까 피임에 관한 질문들이 나왔을 때도 얘기했지만, 피임을 하더라도 임신 확률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니야 얘들아. 배란일을 피하더라도 피임기구를 사용하더라도 임신 가능성은 있어. 선생님은 너희가 너희 안에 생긴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 때, 성관계를 가지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는 것. 그것은 정말 엄청난 축복이고 황홀한 경험이니까."

선생님이 그날 우리에게 해주었던 성교육은 초등학교에서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을 분리된 공간에 넣어놓고 임신의 과정을 그린 이미지를 보여준 뒤 생리대나 나눠주고 끝이 나는 성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누구보다 진솔했고 진지했으며 실용적이었다. "성(性)에 대해 궁금해도 괜찮다"라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수업 이후로, 아이들은 빠르게 선생님에게 빠져들었고 비공식적인 팬클럽까지 결성되었다. 선생님과의 오카리나 수업이 더욱 기대되었고, 왜 재량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분이냐는 고운 투정이 나오기도 했다. 그 선생님의 수업을 가능하면 자주, 되도록 오래 듣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선생님께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떠나셨다. 남편과 이민을 떠날 것이라 하셨다.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 때,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한 소회를 밝히고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선생님께  우리는 물었다. 어딜 가시냐고. 왜 가시냐고. 꼭 가셔야만 하냐고.

"얘들아. 선생님한테는 꿈이 있어. 내 아이에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그림책을 보면서 '이게 코끼리야', 수족관 수조 벽 너머에 있는 동물을 가리키면서 '저게 돌고래야'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수영하는 돌고래를 보여주고 싶어. 모형이 아니라 진짜를 보여주고 싶어. 너희들이 많이 보고 싶고 한국도 많이 그립겠지만,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고 싶다는 꿈을 선생님은 꼭 이룰 거야.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말이야."

선생님이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 (출처 : pixaboy)


며칠 뒤 선생님은 정말로 학교를 떠나셨다. 그 뒤의 소식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선생님의 대신하여 한문 선생님이 그 수업을 이어받았다. 몇 번의 오카리나 수업이 있었지만, 학기의 말미에 가서는 수업 내용이 "영화 감상"으로 대체되었다.

그 선생님이 우리 반의 수업에 들어온 것은 고작 한 달, 횟수로는 네 번이 전부였고 그중 오카리나를 손에 쥐고 입으로 불었던 수업은 단 한번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 존함도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나는 아직도 오카리나를 보면, 그 소리를 들으면, 그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궁금하다.





타향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황홀한 경험 속에 잉태되어,

엄청난 축복으로 태어난 아이는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보았는지.
넓은 세상 속에 나간 아이가 선생님같이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그 아이도 오카리나를 연주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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