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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ish Feb 15. 2020

제가 그걸 왜 말해야 하죠?

님하. 그 선을 넘지 마오.

살다 보면 정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난다지만, 그래도 나는 인복이 나쁘지 않아 비상식적인 사람보다는 상식적인 사람, 인정머리 없는 사람보다는 정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무난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사회에서 만난 나의 상사는 그간의 나의 "좋은 동료 만남"의 사이클을 단숨에 끊어버리고 내가 어렴풋이 경험했던 것과 다른 차원의 "불합리함"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는 여러 번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행동으로 나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는데 그런 행동의 기인은 아마도 그의 지나친 열심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생존본능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유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가 파하면 집에 딸린 작업장으로 가 가업을 도와야 했다. 그렇게 어려운 가장 형편이었음에도 순전히 본인의 노력으로 명문대 석사학위를 받고 외국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이었다.


느지막이 꾸린 가정에 외벌이 가장으로 느꼈을 그의 무게감과 더 나은 삶을 향한 그의 평생의 갈망은 가끔 아주 나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어떤 목표가 생겼을 때, 그것에 할 수 있는 한 빨리 그것에 다다르기를 바랐는데 그것은 주변 사람들을 아주 피곤하게 만들었다.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게끔 상대를 압박했고, 그것을 위해 야근과 주말 출근은 대놓고 종용했다. 대단한 추진력이라 포장할 수 있는 그의 급한 성격은 실무자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견을 조율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 - 특히 하급자 - 을 다그치고 쪼는 방식으로 발현되었다.


신경성 두통이 오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출처 : Unsplash)


그의 직속 하관이었던 나는 그 쪼임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높은 빈도수로 겪어야 했다. 평일, 휴일, 아침, 저녁 가릴 것 없이 연락을 해대는 통에, 나는 그와 365일 24/7을 함께 보내는 것 같았다. 월화수목금금금을 살아내며 나는 진정한 의미의 퇴근은 퇴사를 해야 성취되는 게 아닐까 라고 자주 생각했다. 늘 핸드폰을 움켜쥐고 있어야 했고, 무거운 노트북도 자주 들고 다녀야 했다. 불편한 몸과 마음을 안고 사는 나날이었다.


염전 노예 같은 삶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까. 경험이라는 미명 하에 이 모든 부당함을 감수할 만큼 나는 이 일을 좋아하는 걸까. 호기로웠던 입사 초 열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 분야에 발을 들이기 전에 이것은 분명 좋은 기회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던 많은 논리와 판단의 근거들이 하루하루 힘을 잃었다.


분란이 싫어 웬만하면 참고, 스트레스도 잘 받지 않는 무던한 성격임에도 영혼이 피폐해지고 작은 일에도 불만이 터져 나오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돌파구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나는 그를 바꿀 수도, 나를 바꿀 수도 없어 매일매일 어김없이 차곡차곡 적립되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취미활동을 찾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악기 다루는 사람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나는, 오랜 고민 끝에 바이올린을 배우기로 결심을 했다. 유년시절 몇 년 배웠던 피아노에도 다시 손을 대봤지만, 피아노 레슨을 받으면서도 옆방에서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에 더 집중하게 되는 스스로의 모습에 이쯤 되면, 그냥 동경만 할게 아니라 배우는 게 낫겠다 싶었다. 악기의 크기가 작아 휴대할 수도 있고, 피아노 학원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도 연습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예술의전당 앞에 위치한 악기 공방에서 연습용 바이올린을 신중하게 고르고 집 근처 작은 바이올린 교습소에 등록하였다. 바이올린 수업은 어느 정도 나의 스트레스를 감하여줬고, 나는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오랜 꿈을 이룬 감격에 바이올린 지판에 음을 표시하는 테이프를 떼기도 전에 피치카토 (바이올린, 첼로와 같은 현악기의 현을 활로 긁지 않고 손끝으로 튕겨서 연주하는 주법)나 비브라토를 넣어서 연주하는 날을 상상했다.






지판에 여전히 은색 테이프가 붙여있고, 비브라토는 커녕 겨우 '반짝반짝 작은 별'을 뗐던 무렵, 그날은 당일까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퇴근이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퇴근 후에 집에 들를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악기 케이스를 등에 매고 출근을 했다. 업무 시간 동안 바이올린 케이스는 책상 밑 공간에 조심히 세워두었다가  업무를 다 끝마치고 자리를 정리하고 난 후, 악기 케이스를 책상 밑에서 꺼냈다. 조심스레 악기 케이스를 한쪽 어깨에 매는 순간,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Sweetish씨. 그게 뭐예요?"


"바이올린이요."


"Sweetish씨, 바이올린 배워요?"


"네."


"언제부터요?"


"두 달 됐습니다.."


"근데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요?"


"네..?"


"차라리 관악기를 배우지. 바이올린이 얼마나 배우기 힘든 악기인지 알아요? 에휴. 그런 거 결정하기 전에는 나랑 미리 상의를 했어야죠...."


"......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들어가 봐요."


그는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시선을 모니터로 돌려 업무를 계속했다.


그걸 왜 말해야 해요? (출처: 무한도전)


뭔가 깔끔하지 않은 기분으로(더럽다는 얘기다) 사무실을 나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내내 방금 전 일어난 대화에 대해 곱씹어봤다. 머리 위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그려졌다. 버스정류장에 가까워지면서 어안이 벙벙하고 황당함으로 인해 정지되었던 사고가 다시 작동이 되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고 기가 찼다. 내 취미생활을 왜 그와 상의를 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았다는 이유로 핀잔을 들을 일인지 나는 그의 사고체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몹시 불쾌했다. 밤낮으로 염전 노예처럼 나를 부리더니 그는 정말 자신이 뭐라도 되었다고 생각한 걸까.


감정을 분출하기 전, 그것이 합당한 감정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느라 늘 화 낼 타이밍을 놓치는 나는 그날도 한발 늦게 발동이 걸려 그에게 제대로 정색 한번 하지도 못하도 집에 오는 길 내내 씩씩거렸다.




그 일에 대해 꽤 자주, 오랜 시간을 들여 생각해봤지만, 그가 왜 나의 사생활에 간섭을 해도 된다고 느꼈는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취미생활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그와 상의하고 그로부터 재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성공과 실적에 대한 열망으로 공(功)에 너무나 빠진 나머지 인생에는 사(私)도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살게 된 것인지, 업무로 인해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자주 연락을 하다 보니 진짜 나랑 친하다 생각을 했는지, 단순히 타인의 감정에 무신경한 사람인지,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꼰대 기질이 갖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내가 만만했는지. 위에 언급한 이유 중 하나 일수도 있지만 설령 전부 다라고 해도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을 것 같다.


그 일이 있고, 몇 년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의 그의 발언을 생각하면 입꼬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코웃음이 난다. 시간이 지나면 안 좋은 기억도 미화되고 윤색된다던데, 그 기억만은 그때의 열기를 잃지 않고 나의 감정을 달궈 기어코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내가 버티고 버티다 결국 퇴사를 하면서 그와의 인연이 끊어졌지만 그처럼 극단적인 수준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연관되지 않는 일에 "그걸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지금도 종종 마주친다.


자격증 시험에 응시했던 일, 신변의 변화, 이직, 관계 속 지위의 변화, 친구와의 갈등, 가정의 문제 등 내게 일어난 사건을 나중에 듣게 된, 혹은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그것을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마치 대단한 조언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러면 다른 결말, 좀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것처럼. 그들은 자신에게 왜 말하지 않았냐고 따져 묻지만, 그 이유는 의의로 단순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낄 만큼 내가 그들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말에서 나의 안녕을 기원하는 진심보다는 우월감, 지배욕, 자신을 드러내고 으스대고 싶은 욕망을 본다.


출처 : Unsplash


진짜 내 사람들은
기꺼이 나와 함께 무력한 존재가 되어준다


같은 말에도 내가 진정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한다. 진지한 태도로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나와 같은 감정으로 자신의 온도를 맞춰준다. 내가 기뻐하는 일에 함께 기뻐하고 내가 슬퍼하는 일에 마음 아파한다. 내 인생을 바꿔줄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계획대로,  바람대로 이뤄지는 것이 드문 세상을 살며 참을  없이 작은 존재로 무력감을 느끼는 나에게 "그러게. 정말 모든 일이 우리 마음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하며 기꺼이 함께 무력한 존재가 되어준다.  






상사와 있었던 그날의 해프닝은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긴 했지만 그것을 통해 얻은 것도 분명히 있다. 정도가 지나친 간섭을 받았을 때, 나를 향한 애정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해 충고를 하려는 사람을 보고  불쾌감을 드러낼 타이밍을 놓치지 않게 되었다는 것. 씩씩거리며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던 나는 이제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라고 묻는 사람에게, 그것은 너무나 이상한 질문이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출처 : Unsplash


"제가 그걸 왜 당신에게 말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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