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연애가 하고 싶은 당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시도해보았다.

by Kelly Yoon



내게 두 명의 남자 친구가 생기고 다자연애를 몇 개월간 지켜보던 한 지인이 말했다.


"나도 K처럼 남자 친구 여럿 두고 멋지게 살고 싶어."


"인생 한 번뿐인데 해봐요."


덧붙여 지인은 "K는 남자 친구가 두 명이라 외로울 날 없어서 좋겠다"라고 했다.


우리는 외로움을 느낄 때 온전한 내 사람이 내 옆에 있어줬으면 한다. 친구나 가족이 채워 줄 수 없는 외로움을 사랑하는 사람이 채워 줄거라 믿는다. 사랑으로 일어난 뇌의 화학물질인 세로토닌은 일시적으로 외로움을 없애고 행복감과 만족감을 고양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이 두 명이라 내 뇌는 세로토닌을 두배로 분비시킬까? 그렇지 않다. 세로토닌, 옥시토신 모든 것들은 그저 사랑에 빠진 뇌의 한 화학작용 일 뿐이다. 뇌의 화학작용이 끝나고 나면 내게도 외로움은 찾아온다.


나는 외로움이 찾아오면 지인이 했던 말을 떠올리곤 한다. '외로울 날이 없어 좋겠어요.' 그리곤 한숨을 쉰다. 내 외로움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이 외로움은 다자연애를 하기에 더 외로워진다.


일대일 독점적 연애를 할 때, 외롭다고 징징거리던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힘들고 고된 하루를 보낸 날, 이유 없이 모든 것들이 짜증나고 공허한 날. 나는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투덜거리고 애인은 그런 날도 있는 것이라며 날 다독여준다. 상황이 조금 더 도와준다면 집 앞까지 달려와주는 모습에 나는 감동하고, 사랑에 깊이 빠져든다. 이것이 아마 보편적인 사랑의 한 모습일 것이다.


외롭다는 말은 곧 '나는 지금 당신이 필요하니 내 옆에 있어주세요'와 일맥상통한다. 이 말에 숨은 뜻을 파악해보면 '내가 외로운 순간에 당신은 내게 달려와야지. 그게 바로 사랑이잖아.' 하는 강한 소유 욕망이 내포되어 있다. 외로움이라는 이름을 핑계 삼아 사랑하는 사람이 내 소유임을 확인하고 만족감과 안정을 느껴야, 뇌에서 엔도르핀이 형성되어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자연애에서는 외롭다는 말을 함부로 꺼낼 수가 없다.


내 파트너들이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잠자리를 한다는 것은, 내가 외롭다고 느낄 때 그들은 다른 애인과 시시덕 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명의 파트너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할수록 내 외로움은 더 커져갔다. 우리의 친밀함이 강해질수록 제4의 파트너를 자유롭게 만나도 우리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나는 종종 외면받아야 했다.


내 남자 친구들 입장에서는 나보다 뒤늦게 다자연애에 합류한 새로운 파트너를 챙기는 것이 우선순위였기에, 새로운 파트너가 힘들어할 때마다 그들을 지탱해줘야 했다. 새로운 파트너를 챙김과 동시에 나까지 챙겨야 하는 그들의 고충을 너무나 잘 이해하기에 나는 나도 좀 봐달라고 칭얼거릴 수가 없었다.


나는 더욱 외로워졌다. 그리고 더럽게 슬펐던 어느 날, 나는 P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문자에 답장을 하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직감적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다. S에게선 이미 다른 사람과 저녁 선약이 있으니 내일 연락하겠다는 문자를 받았던 터였다. 결국 외로움을 혼자 꾸역꾸역 삼킬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받는 대가로 외로움도 두배로 견뎌내야 하는것은 다자연애의 쓴 진실일 것이다.



"당신이 다자연애를 하겠다면 제일 먼저 상기해야 할 것은,
당신이 가장 외로운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없을 것이다.“






몇 주 후, 내 조언을 듣던 지인은 여러 명의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지인과의 대화 중 내가 언급한 '개개인의 매력이 모두 다른데 한 사람의 매력만을 사랑한다는 건 '사랑'이 너무 아까워.'라고 했던 말을 왠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전해왔다. 나는 지인의 데이트 패턴을 곰곰이 들으며 생각했다.


다자연애와 문어발식 만남의 차이가 보였다. 지인은 데이트 상대들에게 다른 데이트 상대가 있다는 것을 숨기고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아직 만남의 초입 부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데이트 상대들을 기만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남성들이 지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빤하게 보였다. 저러다간 어중이떠중이로 그저 섹스에서 모든 관계가 끝나고 말 것 같았다.








나는 여자의 입장에서 다자연애에 관한 글을 쓰지만, 어쩌면 다자연애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남자들에게 최적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자연애를 시작함과 동시에 가장 안도했던 부분은 바로 '섹스'였다. 내가 내 남성인 파트너들보다 섹스를 더 좋아한다는 점이 이 연애에 있어서 이점이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한 상대에게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다른 파트너를 통해서 내 성욕을 해소하고 두 사람의 섹스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내 섹스 판타지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 사람에게 얻지 못하는 다른 만족감을 다른 파트너에게 구할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다시 지인을 만나 근황을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이 없는 사람과는 섹스를 할 수 없다는 지인은 이미 한 남자와의 관계를 정리했으며 두 남자를 두고 저울질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다 사랑해야지 왜 누가 나을지 고민해요?"

"그게 안돼. 만나보니까 A가 더 끌리는 거야... B도 좋은 사람인데.. 뭐랄까... 아무런 느낌이 없달까?"

"두 사람 중 잠자리는 누가 더 잘 맞는데요?"

"그게 A랑 밖에 안 잤어. 이런 거 보면 B는 확실히 많이 좋아하진 않나 봐."

"답은 나왔네요. 그냥 A랑 잘해봐요."


지인은 '그렇지만 B를 놓치기엔 아까워' 하는 표정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나는 지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나는 지인이 뜻대로 하도록 더는 말을 부연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주 뒤 지인은 A와 연애를 시작했다 전해왔다.


A가 어렴풋이 B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았고, 그로 인해 A가 떠날까 불안해진 지인은 B라는 사람을 '그냥 친구'라는 단어로 포장했다. 그리고, A와 독점적 연애를 시작했다.


지인의 입장에서는 마음에도 없는 B라는 사람 때문에 A를 놓칠 수는 없었다.


"A가 나 몰래 다른 여자랑 연락하고 만난다는 생각 하면 불안하고 화가 나. 나는 그냥 이 사람이 나만 봐주고, 나도 이 사람만 보며 연애하는 게 좋은 것 같아."


"잘했네요. 다자 연애 따위 해봐야 속앓이 하는 건 본인 뿐이지 뭐."






여자들이 모여 수다 떨 때 흔히 나오는 말이 있다.

저 사람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저 사람이랑 섹스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서 이미 답이 내려진다고. 여자에게 있어 섹스라는 행위는 어느 정도 감정 이입이 있어야 가능하는 말이다. 호기심과 일시적인 호감으로 섹스를 할 순 있지만 다시 한번,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여성은 임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기에 파트너 선택에 심념 해야 한다. 그러니 장기간 이 남성에게 의지 했을 때 자신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필수 있는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 또한 여성의 섹스 선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나는 지인을 보며 그녀가 B와 먼저 잠자리를 했었더라면 그녀의 애인은 B가 되었을 확률도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니지 처음부터 지인은 B에게 많은 매력을 못 느꼈으니 B는 정말 제2의 파트너도 안되고 친구에서 끝을 맺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지인은 연애만 하기엔 B는 괜찮은 남자라고 했다. 하지만 장기간으로 내다본다면 직업적으로나 성격적으로 가정적인 A에게 더 많은 매력과 안정을 느꼈다고 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도와주고 지켜줄 수 있는 사람과 섹스를 하고 사랑을 하는 것이 여성의 본능일 테니. 나는 지인이 A를 선택했을 때 충분히 이해했다.





여자로서 다자연애를 한다는 것은 두 사람 혹은 세 사람과도 섹스를 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해봐야 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과 섹스를 하고 싶은가? 적당한 호감만으로도 섹스가 가능한가? 섹스 이후에 한 파트너에게만 깊게 빠져들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지인을 보며 깨달은 한 가지는 다자연애가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다자연애는 그저 새로운 형태의 연애방식일 뿐이다. 게이,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해서 아이를 입양한다. 그들은 이 시대의 새로운 가족 형태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다자연애를 하고, 누군가는 안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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