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직장인을 위한 뻔한 자기 계발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꿈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는 내공 있는 책이었다. 저자는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직장인들에게 절대로 회사를 관두지 말고, 회사라는 시험터에서 세상을 향해 가볍게 꿈의 씨앗을 날리라고 말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몇백 개의 씨앗을 뿌리다 보면, 아스팔트에도 떨어지고 밟히기도 하겠지만 한두 개는 꿈의 싹을 틔울 거라고. 그리고 거대한 나무가 될 거라고 격려의 말을 건넨다.
우리는 이제 '50년 커리어'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회사의 부속품으로 일하다 퇴직하여 여생을 즐기는 '직장인'으로 사는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저자는 '나'를 발굴하고 평생의 직업을 창조하는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직업인'의 길은 남들과의 경쟁이 우선이 아니다. 얼마나 자신에게 충실하며 그 과정이 행복한지가 핵심이다. 때로 져주기도 하면서 궁극적으로 이길 필요가 없어지는 전략. 그것이 슬로 커리어로 가는 인디 워커의 전략이다.
분명한 건 슬로 커리어가 오래 성장하는 길이라는 점이다. 다만 인디 워커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의 씨앗이 꽃을 피우기까지 사계절의 순환이 필요하듯 인디 워커 또한 성숙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꽃피는 시점 또한 각자의 리듬마다 다르다. 슬로 커리어는 자신의 속도대로 무르익어 가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
몰입 전문가 칙센트미하이는 사람은 타고난 흥미와 결이 맞고 자신의 능력과 깊이 연동되는 활동을 할 때 몰입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정작 내가 몰입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저자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막막함이 몰려온다면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해보라고 말한다.
- 무엇이 내게 희열감을 선사하는가?
- 팍팍한 일상 속에서 문득 살아나 내게 울림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 무엇을 할 때 가장 나다운가?
- 나의 〈소확행〉은 무엇인가?
- 당신은 무엇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 당신의 영혼을 풍성하게 해주는 특별한 경험은 무엇인가?
- 별다른 이유 없이 예전부터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했는데도 답을 찾기 어렵다면 지나친 완벽주의와 자기 회의, 두려움과 자기 검열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경우에는 아무 장애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다시 질문을 해보라고 말한다. 만약 내가 억만장자이고 불사(不死)의 몸이라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원하는 꿈일 수 있다.
나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니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읽고, 쓰는 삶이다. 회사를 다니든 아니든, 어디에 살든, 나는 평생 읽고 쓰고 싶다. 억만장자나 불사의 몸이 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것.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그것을 나는 지금 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에게 "우리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여기에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가 추구한 '흔적'은 '사람들이 동기에 충만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스티브 잡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인디 워커에게는 자신만의 철학과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추구하는 철학이나 목표 없이 좋아하는 일만 한다면 언젠가는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가 있고, 이에 충실할 때 진정 자기다워질 수 있고 일에도 열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인디 워커로서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는 무엇인가? 필명과 유튜브 채널명을 만들 때 생각했던 '치유'라는 단어가 나의 가치이자 철학이 아닐까? 일상을 치유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만들어 가는 것. 그 길을 따라갈 때 나는 가장 나답고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라틴어인 오티움은 시 짓기, 공부, 악기 연주, 예술 감상 등을 말한다. 보통의 취미와 그 깊이가 다르며 취미가가 아닌 마니아로서 그 활동에 푹 빠지는 것을 말한다. 마니아는 돈이나 타인의 인정 같은 외적 보상이 아닌 배우고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기쁨을 얻는다.
헨리 소로의 오티움은 산책이었다. 그는 날씨에 상관없이 매일 4시간씩 걸었으며, 번뜩이는 영감은 대부분 걸을 때 떠올랐다. 일기에 쓸 글감도 산책 중에 주워 담았다. 그의 일기는 산책의 소산이었고, 이 일기를 바탕으로 20세기 생태주의의 탁월한 고전인 <월든>을 집필했다.
나 역시 산책을 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는 편이라 이 부분이 많이 공감 갔다. 나는 출퇴근 길에 아침저녁으로 매일 산책을 한다.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며 많은 아이디어와 생각이 떠오른다. <월든> 같은 대작은 못쓰더라도 산책의 영감을 꾸준히 기록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오티움을 찾아 꾸준히 성장시키고 일과 오티움의 교집합을 키울 때 인디 워커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워라밸의 진짜 목적은 '칼퇴근'이나 '저녁이 있는 삶'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람과 행복으로 충만한 일상에 있다고 말한다.
직업과 오티움을 연결함으로써 차별적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일상 또한 싱싱해진다. 인간은 자기 창조 욕구가 있어서 본인이 원하는 삶을 만들고 싶어 한다. 오티움을 하나 찾아서 꾸준히 가꿔 보라. 기쁨으로 반짝이는 자기 세계 하나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
책을 읽고 나서 깨달은 건 정말 감사하게도 나의 오티움과 직업은 완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회사에서도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고, 글쓰기는 나만의 오티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오티움을 할 때 피곤하거나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책읽는 시간이 그렇다.
이 책의 말미에서 소름이 돋았던 건, 내가 이미 실천하고 있는 명상과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내용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잠재의식에 깔려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긍정의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명상이다.
잠재의식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가장 좋을 때는 잠들기 전이나 깨어났을 때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아침, 저녁으로 명상을 하고 있다. 이제 그에 더해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내가 바라는 인생의 최고의 장면을 명상할 때마다 떠올려봐야겠다. 나의 잠재의식에 더 깊이 새겨지도록.
성공한 이들의 다수가 명상을 생활화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전 세계의 가장 성공한 경영자, 석학, 전문가, 아티스트들을 인터뷰한 책 『타이탄의 도구들』을 쓴 팀 페리스는 책의 인물들 중 대다수가 명상을 생활화했음을 밝힌 바 있다. 가장 간단한 명상법은 내가 바라는 최고의 장면을 한 문장, 한 장의 사진, 또는 짧은 영상으로 되뇌며 그 장면에 집중하는 것이다.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
'인디 워커로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소박한 삶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외부의 평가에 의존하지 않고 경험의 본질에 집중하는 삶이다.
심리학을 공부할 때 '물건'을 소비하는 것보다 '경험'을 소비할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중시하는 삶의 양식이 미니멀 라이프와도 연결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똑같은 물건은 다시 구입할 수 있지만 여행은 날씨, 동행, 현지 상황 등 많은 변수 때문에 똑같은 체험은 불가능하고 희소성도 더 크다.
하지만 진정한 미니멀리즘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의 것을 가지더라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소유하는 것. 그리고 물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한 미니멀리즘이다.
법정 스님은 차 마실 때 쓰는 다기(茶器)나 글 쓸 때 사용하는 만년필처럼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만 가졌다. 대신에 당신 마음에 드는 걸 골라서 아주 오랫동안 사용했다. 그가 강조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말라거나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게 아니다. 군더더기를 없애고 최소한의 것만 소유함으로써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홀가분해지는 것이 무소유의 요지다.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꾸는 꿈의 방향이 어느 정도는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명상이나 미니멀 라이프의 삶도 인디 워커의 삶의 방향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나의 오티움을 키워가며, 회사 밖으로 꿈의 씨앗을 가볍게 날릴 것이다.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 어딘가에서는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될 것임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