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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n Sour Mar 25. 2019

[Sweet]
저 한 번도 안 해본 건데요..?

어떻게 해야 하죠?

내 첫 직장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첫 구직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까 한다 (궁금한 독자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 궁금하지 않다면 아래로 스크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 아냐??"

내가 취직할 때 면접 이야기를 듣고 내 친구들이 하는 말이다. 긴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니고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4학년 때까지도 밀린 전공수업에 찌들어 있는 상태였다. 한국 대학교는 다녀본 적이 없는 관계로 어떤 시스템인지 잘 모르지만, 우리 대학교는 학교 내에 플랫폼이 있었다. 그 플랫폼에 내 이력서를 올려놓으면 관심 있는 회사들이 볼 수 있었고 그 이력서에는 당연히 나의 연락처나 이메일 주소 등이 적혀있었다.


4학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어느 날, 나는 아침 8시 반에 학교로 향하고 있었고, 전날 숙제를 하며 밤을 새웠던 나는 씻지도 않은 채로 슬리퍼를 신고 학교로 가고 있었다. 첫 수업이 끝난 후 커피를 사러 걸어가는 도중 핸드폰에 전화가 왔고 그 전화는 Samsung Telecommunications America에서 온 전화였다.

전화의 내용은, "우리가 지금 너희 학교에 와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데, 와서 면접 볼래?"라는 내용이었고, 나는 당연히 "네. 근데 오늘은 안되고 내일 됩니다" 했더니 반대편에서 "오늘 오후 3시 반밖에 비는 시간이 없어"라고 했다. "전 3시 반에 갈 수는 있는데 제가 지금 씻지도 않았고 이력서도 안 뽑아놨고 양복도 아니고, 뭣보다 슬리퍼를 신고 있는데요"라고 했더니 "괜찮아 이력서는 우리가 뽑을 테니 그냥 와"라고 했고 long story short, 가서 면접을 보고 붙었다. 나중에 회사에 들어간 후에 알게 된 얘기지만 그 당시 면접관들은 나를 보고 코딩을 아예 못하거나 엄청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둘 다 아닌데..

illustrated by 머슬메이션


어찌 됐든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퍼를 받은 후에 나는 구직활동이 지겨워서 더 기다리는 선택을 하지 않고 바로 사인했다.



"네가 이미 해본 일이면 우리 팀이 하면 안 되는 일이란 거겠지"

그리하여 출근한 나의 첫 직장은 Samsung Telecommunications America - Mobile Communications Lab 이란 곳이었다. 나는 처음엔 클라우드 팀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4학년 때 안드로이드 관련 연구를 하면서 모바일이 하고 싶었고 그래서 mobile apps and platform이라는 팀으로 가게 되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 팀은 총 6명 정도 되었던 것 같고 내 매니저는 삼성에 꽤 오래 다닌 미국계 중국인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도 나는 Java를 좋아라 했고, 안드로이드를 하면서도 Java를 하는 거에 만족하면서 하고 있었다. 나의 주 업무는 (사실 우리 팀의 주 업무는) 앱이나 플랫폼을 완성해서 출시하는 것이 아니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한국 삼성에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이었다. "이런 프로토 타입을 우리가 만들었다. 이게 제대로 제품이 되어 출시된다면 좋을 것 같다" 하는 역할이라고 할까?


그러나 저러나,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팀에서 Python과 Ruby를 하던 친구가 갑자기 퇴사를 했고, 그 일을 마저 마무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매니저는 나를 불렀고 나에게 내가 하던 AOSP (Android Open Source Project) 프로토 타입을 멈추고 python과 ruby 관련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python은 해본 적도 없었고 ruby는 기본적인 것만 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프로덕트는 만들어 본 적도 없었다.



: Um... If you insist I do it, I'll do it but I don't think it will be very efficient since I've never done any of those things before.

(음... 네가 꼭 나한테 시키면 하겠지만 별로 효율적인 선택은 아닌 거 같은데.. 왜냐하면 난 그거 둘 다 한 번도 안 해봤거든)


매니저: This is a lab and we are meant to do things that haven't been done before. You should be consistently learning new tech, and if this project was already done by you before, we probably shouldn't be doing it.

(여기는 연구실이고 우리는 원래 과거에 시도되지 않았던 걸 하는 곳이야. 너는 항상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해. 그리고 만약 네가 이런 프로젝트를 이미 과거에 해봤다면 우리 팀은 이 프로젝트를 하면 안 되겠지?)



매니저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하겠다 라고 했고, 다만 내가 랭귀지를 새로 pick up 해야 하니 조금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별 말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난 그때 한국 나이로 25살이었고 첫 직장을 시작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고 뭔가 굉장히 멋있고 획기적인 말이라고 느꼈다. 

'갓 대학 졸업한 내가 만들어봤으면 얼마나 많은걸 만들어봤겠으며, 내가 이미 해봤고 실패한 거라면 삼성 연구실에서 큰돈을 쓰고 또 해볼 필요도 없는 것들이겠지.'


물론 이제 직장생활을 한지 6년이 넘으며 저 말 자체가 항상 사실이 아니라는건 굉장히 잘 알고 있다. 다만 25살의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던 말이였고 그걸 계기로 내 mentality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때 이후로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 나만 새로 해보는 거 아닐 것이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접해보지 않은 것일 거고, 그렇다면 굳이 내가 해보면 안 될 이유는 없으니까.


그리고 또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에서 개발자를 뽑을 때는 사실 어떤 한 분야의 expertise만 보고 뽑지 않는데, 그 이유가 저런 상황들을 대비해서이다. 언제 어떤 새로운 기술을 픽업해서 배우고 사용해야할지 모르기 때문데, 한가지만 아주 잘하는 사람보다는 어떤걸 픽업해도 잘 할수 있을것 같은 generalist를 뽑는 인터뷰 프로세스가 많다.


다음 화에서는 바로 그 인터뷰 프로세스에 대해서 한번 살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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