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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혜진 May 22. 2020

남편과 각방쓰며 깨달은 것들

1인분의 오롯한 삶

남편과 각방을 쓰고 있다. 새로 들어온 고양이와 기존 고양이가 사이가 좋지 않아 남편과 각각 한 마리씩 맡아 잠을 자게 되면서부터다. 작은방을 작업실로 사용해 온 내가 자연스럽게 그 방을 사용하게 됐다.     


작은방은 정말 작았다. 책상과 책꽂이, 피아노만으로도 방이 꽉 찼다. 좁은 방에서 아침저녁으로 이불을 폈다 갰다 하려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침대 놓을 공간은 나오지 않았고 고양이들은 쉽게 친해지지 않았다. 겨울을 보내는 동안 전기장판까지 접었다 폈다 하는 일에 나는 그만 진절머리가 났다. 


반면 남편이 쓰는 방은 내 방보다 두 배는 넓었다. 퀸사이즈 침대와 책꽂이를 놓고도 공간이 남아 가벽을 세워 옷방까지 따로 만들었을 정도다. 


큰방과 작은방... 평등한 '방'은 왜 없나


지금까지 내가 들어가 본 집 가운데 원룸을 제외한 모든 집에는 큰방과 작은방이 있었다. 이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작은방에서 생활해보니 한 집의 방 크기가 이렇게 대놓고 차이가 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큰방은 부부용이다. 두 사람이 지내려면 그만큼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큰방에는 주로 장롱 같은 큰 수납장이 있고 계절별 이불을 비롯해 여러 공용 물품이 들어간다. 거실이 없는 경우 큰방에서 가족들은 밥도 먹고 TV도 본다. 작은방은 주로 자녀의 생활공간이다.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한 가족이 살기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주거용 건물 내부가 이렇게 큰방과 작은방으로 구성돼 있다는 건 문제가 있다. ‘부부와 자녀’가 살 것임을 전제로 한, 가족 이외의 다양한 조합을 상상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성인 두 사람이 크기가 비슷한 방 두 개가 있는 집을 얻기란 쉽지 않다. 주거비를 함께 내더라도 공간을 평등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작은방은 성인 한 사람의 짐을 다 풀어놓기에 충분치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내 경우처럼 말이다.     


 비슷비슷하고 답답한 집 구조에 생각도 갇힌 탓일까. 가족 이외의 동거 조합(이들은 연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으로 구체적인 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족을 이루는 데 꽤 많은 비용과 희생이 필요한 이 나라에서, 다양한 생활공동체의 가능성마저 차단당한 이들에게 허용된 건 1인 가구의 삶뿐이다.     


오래전, 친한 친구들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나중에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다같이 한집에서 살면 좋겠다고.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고 공용의 커다란 거실과 주방이 있는 집을 구상하며 한껏 신이 났었다. 사생활이 보장된 내 공간과 공유 공간이 어우러진 집에 모여 살면 돈도 적게 들고 무엇보다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소소한 갈등이야 사람 사는 곳 어디라고 없을까. 가족이란 허상 앞에 무시되는 폭력과 착취는 또 얼마나 많은가.


1인분의 오롯한 삶을 꿈꾸며


 공간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우리 집의 경우 고양이의 삶이 평온해진 것과 함께 내게도 ‘밤 중 사생활’이란 것이 생겼다. TV나 핸드폰 영상 소음이 서로에게 방해가 될까 소리를 줄이거나 이어폰을 끼지 않아도 되고, 밤늦게 들어온 상대방의 인기척에 잠이 깰 염려도 없다. 뭣보다 술 좋아하는 남편의 술 냄새를 덜 맡아 좋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땐 얼마든지 붙어 지낼 수 있고, 밤새 따로 잔 덕에 다음날 식탁에서의 대화에 더 집중하게 된다. 부부라고 해서 꼭 한 침대를 사용해야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란 걸, 부부에게도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단 걸 깨닫는 중이다. 다만, 내 방에도 침대 놓을 공간이 필요할 뿐이다.     


 집 구조가 다양해지면 그만큼 다양한 동거조합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1인 가구들이 각자의 공간과 공유 공간을 고루 사용할 수 있는 주택이 지어지면 어떨까. 1인 전용 공간은 한 사람 몫의 짐이 쏙 들어가고, 쉬는 날이면 방안을 뒹굴거릴 수 있고, 지인을 초대해 여가를 즐길 만큼 충분히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공용 공간 덕분에 주거비용도 크게 늘어나진 않을 것이다. 이미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고, 비혼과 비출산 인구도 늘어간다. ‘다른 삶’을 상상하는 이들이 기존의 ‘가족 중심의 삶’으로 돌아갈 확률은 낮다. 큰방, 작은방으로 정형화된 집 구조는 이런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가구 구성의 변화에 주택 구조도 발을 맞추어야 한다.     


혼자 걷기엔 외롭고 힘든 인생길. 나와 남편이 같은 크기의 방을 동등하게 누리며 살기 위해선 정녕 내 손으로 집을 짓는 방법밖엔 없는 걸까. 따로 또 같이, 1인분의 오롯한 삶을 살 방도를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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