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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피캇 May 04. 2023

인류에게 주어진 기회

루이스 다트넬, 오리진(ORIGINS)

[루이스 다트넬, 오리진(ORIGINS)]


 인간은 왜 이동했을까?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시작했으며 어떻게 도구를 발달시킬 수 있었는가? 어떻게 금속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련하였을까? 어떻게 불을 이용하고 난방에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인간의 역사에 이런 질문을 던지고 인과를 조사해왔다. 루이스 다트넬은 이 우연과 필연의 범위를 지질학과 천문학의 단위로 넓힌다. 그러자 새롭고 거대한 퍼즐이 드러난다.


 호모 사피엔스가 80억 명에 이르기까지 우연적, 필연적 사건의 복잡한 네트워크가 얽혀 있다. 지구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기후가 되고 식량 생산과 과학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은 길고 긴 시간과, 지질학적 변화, 천체의 운동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하나의 현상이다.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한 지 37억 년 만에 유독 높은 지능을 가진 호모속의 유인원들이 그야말로 '갑자기' 나타났다. 1억 년 전, 2억 년 전에도 지구에는 생명이 번성했지만 이런 존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6억 년 전에는 생명이 별로 없는 황량한 별이었다. 초대륙 판게아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대륙의 거대한 이동은 해류와 대류를 변형시키고 각 지역의 기후를 변화시켜 생명체들 발생과 소멸과 이동을 일으켰다. 판의 활동과 화산의 위치는 비옥한 땅의 위치를 결정하였다. 산소가 대형 동물들이 호흡하기에 넉넉해지고, 적절한 중력은 공기를 지표에 붙잡아 두었으며, 오존층이 태양의 자외선을 흡수했다. 인류는 그 길고 긴 변화의 끝자락에, 지구의 거대한 변화의 시간으로 보자면 아주 잠깐일 뿐인 점과 같은 시기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시점이 놀랍도록 고마운 시점이다. 석유와 석탄, 주석과 구리, 철, 그 외 각종 광물과 원소들이 우리가 사용하기 딱 좋은 상태로 형성되어 매장되어 있었다. 밀란코비치 주기에 의해 반복되는 빙하기와 간빙기는 우리 조상들을 굶주림에 몰아넣기도 하고 풍요롭게도 하였다. 생존에 부적합한 조건은 호모 사피엔스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지구의 이곳저곳을 탐험하도록 이끌었다. 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한 근 5천 년은 지구가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서 공전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문명을 유지하기에 치명적인 수준의 빙하기가 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인류를 위한 자연'이다.


 이 거대한 역사가 우연이든 필연이든 아니면 우연과 필연의 조합이든, 인류에게 주어진 기회는 너무나 귀하다. 충분한 지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 수많은 사건의 복잡한 타이밍과 조합들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면 문명은 진보할 수 없었다. 같은 호모사피엔스임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단절된 결과,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는 자원의 차이와 환경 다양성의 차이 때문에 기술의 발전에 큰 차이가 있었다.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도 그러하다. 우리 몸은 지구 환경에 맞게 37억 년을 진화한 결과이다. 지구의 모든 시기에 충분히 생존 가능성을 보장받는 몸은 아니다. 10억 년 전의 지구는 탄생한지 35억 년이 넘었음에도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별이었다. 지구가 늘 푸른 별이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게다가 인간의 생존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너무 추워도, 너무 더워도 문제가 생긴다. 단순히 우리 몸이 견디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기후는 식량 생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산소를 생산하는 바다와 숲의 건강과 직결된다. 지구 나이 45억 년만인 최근에(지질학적 시간으로 최근이면 수백만 년) 인간에게 완벽한 환경의 조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탄생했다. 이 환경은 외줄 타기와 비슷하다. 균형이 크게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회복탄력이 가능한 수준이거나 '자연스럽게' 균형에 변화가 생긴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런 변화는 아마도 수백만 년이 걸리는 일이다.  수백만 년의 시간이란 80년을 사는 인간에게 영원과 다를 바 없는 아득한 시간이다.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난다면 대체로 인간의 신체를 비롯한 생태계 모든 생명들도 자연스럽게 환경에 맞게 진화할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지질학적, 천문학적 시간 앞에서 인간은 하루살이의 한살이와 별차이가 없다. 빙하기와 간빙기의 '자연적인' 변화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다. 밀란코비치 주기에 의하면 지구의 공전궤도는 10만 년의 주기로 태양에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데, 이 주기의 변화가 체감되려면 적어도 1만 년은 살아야 '아~ 밀란코비치 주기 때문에 좀 더워졌네', '아~ 밀란코비치 주기 때문에 추워졌네' 말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밀란코비치 주기를 검색하다가 현재의 지구온난화가 밀란코비치 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하도 어이없는 포스팅을 발견해서 덧붙이는 말이다.)


 수십수만 년의 주기가 딱 맞아떨어져야 일어날 수 있는 기후 변화를 현대 인류는 200 년 만에 이루어 내고 있다.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 피동적으로 주어진 조건이지만 인간 의지는 주어진 조건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200년 전까지는 사실 인간이 지구 자연을 휘청거리게 할 만큼 숫자가 많지 않았다. 지금은 인간이 명실상부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 중국인이 동시에 오줌을 누면 황하강이 넘친다는 농담이 있었는데 정말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 인류가 먹을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산업적으로 키우는 소들이 너무 많아져서 소똥에서 나오는 메탄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될 지경이다. 식량은 그나마 핑계가 되겠지만, 줄지 않는 화석연료사용, 바다를 질식시키는 플라스틱 쓰레기, 여러측면의 생태계 파괴행위 같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구에는 환경을 보전하려는 사람들과 개발과 돈으로 바꾸려는 사람들과 편하게 오늘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함께 산다. 인구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절반의 인구가 환경 보전에 관심이 없으면 나머지 절반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인류를 위한 자연'은 끝장날 수 있다. 파괴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연히 일어날 미래를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이미 일어난 결과와 인과관계가 뚜렷한 미래는 충분히 인지하고 예측할 수 있다. 지구는 6억 년 전의 환경으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인류를 위한 자연'은 우리에게 고마운 선물이지만 지구의 입장에서 인간은 필수적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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