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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피캇 Jul 18. 2023

2023년 6월 월간서가

 할까 말까 고민하던 일을 결국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주 바빠졌다. 바빠진 만큼 수입이 늘어나겠지만 글쎄.. 배가 불렀나.. 책을 읽을 시간이 줄었다는 점, 운동할 시간은 줄고 피로도는 높아졌다는 점, 맡은 일이 다시 일상에 익숙해질 때까지 한동안 묵상과 명상에 빠질 사고의 여유가 없다는 점, 그리고 글을 쓸 시간이 매우 부족해졌다는 점이 스트레스다.

 그래도 글을 써야 한다.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리학자이자 다독가인 기시미 이치로가 이렇게 말했다. "글을 쓰는 것은 읽는 태도를 다르게 한다." 즉, 쓰려는 의지는 나중에 독후감을 쓸 때를 대비해 진지하고 집중하는 태도로 읽게 한다. 그리고 쓰는 행위 자체가 복습이다. 뇌는 관심이 덜한 정보라도 복습하는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저장한다. 천재들의 뇌는 글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공부가 되겠지만, 나 같은 보통사람은 써야 한다. 짧은 리뷰일지라도... 바쁘니까 주절거리지 말고 빨리 쓰도록 한다.


1. 김진명, 바이러스X (SF소설)


 "코로나 바이러스는 겨우 3만 비트에 불과한 아주 작은 정보뭉치 뿐이다!" DNA와 RNA가 아데닌, 시토신, 구아닌, 티민(RNA는 티민 대신 우라실) 네 가지 염기 알파벳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모티브를 얻은 소설이다. 바이러스는 DNA나 RNA만으로 이루어진 존재인데 그중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RNA만으로 된 바이러스다. DNA가 유전자 본체라면 RNA는 DNA를 복제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유전자이므로, 말하자면 데이터와 같은 것이라고 보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거다. 바이러스는 생명체의 세포에 침투하면 자기 복제를 시작하고 활성화된다. 생명체 외부에서는 금세 사멸한다. 스스로를 보호할 강력한 세포가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생명체 외부에서 바이러스를 제거한다면 감염의 모든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 바이러스를 데이터 뭉치로 바라본다면 고도로 발달하고 있는 정보통신 및 반도체 기술로 데이터로서의 바이러스를 검출하고 제거할 수 있지 않은가? 대충 이런 아이디어였다. 음.. 사건과 배경은 화려한데 인물의 내면 서사가 약해서 밋밋하다. 저자의 인터뷰에서 이 책의 집필 의도를 바이러스 제거방식 아이디어에 두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전체적으로 그냥 그랬다.



2.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고전, 소설)


 자기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는 내 자아와, 나의 삶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과, 타자들이 나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나의 추측과 상상이 뒤엉켜 삶이 전개된다. 내면 깊은 곳의 자아와 자신이 소속된 사회적 역할자로서의 행위에서 괴리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내 자아가 원하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알고 있는가? 그 의미를 살고 있는가? 그저 관례를 따라 살거나 적극적으로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살지는 않는가? 풍족한 재산과 타인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사회적 위치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SNS에 올려서 누군가의 부러움과 시샘을 받을 만한 화려한 모습에서 멋짐을 찾고 있지는 않는가?



3. 엘리자베스 문, 잔류인구 (SF소설)


 고정관념에 그저 순응하면서 사는 이들과 잘못된 것을 거부하는 용기 있는 이들에 관하여. 어느 먼 미래, 인류는 우주 여러 곳에 식민 행성을 개척하고 개척민을 보낸다. 오필리아는 40년째 콜로니 3245에서 살아왔다. 그녀의 나이 일흔에 콜로니 3245를 관리하는 기업 심스 뱅코프가 거주민의 이주를 결정한다. 오필리아는 마음속으로 이주를 거절한다. 그녀에게 거절의 권리는 없지만 회사에게도 그녀의 기본권을 좌우할 권리가 없다. 라고 오필리아는 생각했으리라.

 행성을 떠나지 않은 오필리아의 결정에 대하여 누군가는 묻는다. "이주 중에 죽을까봐 두려웠나요?" 오필리아는 속으로 생각한다. '언제나 죽음으로 돌아간다. 젊은것들은 죽음에 집착한다.' 오필리아는 다시 설명하려고 애썼다. "죽음 때문이 아니에요. 삶 때문이지."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해 살라는 지혜로움이 오필리아와 같은 용기 있는 자의 선택이다.



4. 한동일, 라틴어 수업 (철학, 에세이, 강의록)


 공부하는 태도와 삶에 관한 철학. 공부를 하는 이유는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세네카의 말에서 이 책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왜 모르는 것을 탐구할 이성을 가지고 태어났나?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인가? 공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우주적 존재가 보잘것없음과 고귀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인 것 같다. 거대한 우주의 역사 속에 인류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그러나 그 거대한 세계의 복잡함과 아름다움, 존재와 존재의 관계, 사랑, 행복, 슬픔, 괴로움은 보잘것없는 인간 개개인을 통해서만 개념이 드러난다. 인간이 바라보지 않는다면 세계는 아무 의미도 없는 물질의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바라보는 자로서 태어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부가 의미 있다. 인간은 우주를, 세상을, 타자를, 생명을, 감정을, 관계를, 물질을, 원자를, 현상을 바라보는 존재들이다. 인간의 마음에서부터 세상의 빈 공간이 채워지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의미를 생성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공부할 의무가 주어졌다.


5. 가스통 르루, 오페라의 유령, (고전, 소설)


 오페라 극장에 숨어 사는 '오페라 유령'의 슬프고도 섬뜩한 사랑 이야기!

 라고 하였지만 저자가 이 이야기를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썼을지, 아니면 사랑이라고 포장된 광기라고 생각했을지 의문이다. 주인공 세 사람은 모두 인간적 매력이라고는 없는 캐릭터다. 크리스틴 다에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나 양다리에 외모지상주의자이고 기회주의자다. 라울은 순정파이며 신데렐라를 구원할 왕자님처럼 등장하지만 전체적으로 좀 모자란 귀족 놈팽이다. 에릭은 크리스틴에게 집착하는 천재이지만 못생긴 외모 때문에 '끔찍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오페라의 유령이다. 그리고 순한맛 사이코패스다. 에릭의 비극적 사랑을 애달프게 그려낸 소설이라고 많이들 평가하지만 르루가 살아 있다면 묻고 싶다. 이 소설의 큰 그림은 풍자가 아닌지?



6. 로랑스 드빌레르, 모든 삶은 흐른다. (철학, 에세이)


 이 책은 바다에서 인생의 비유를 본다. 바다의 어느 부분을 인간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가? 작은 파도 하나 앞에서도 휘청이거나 일렁임에 그대로 몸을 맡기거나 할 뿐이다. 인생이 왜 이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슬퍼하거나, 실망하거나, 화가 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는 꿈같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옥 같은 게 우리네 삶이다. 이처럼 바다도 그 참모습을 알 수 없다. 바다는 기름 같은 존재인지 거품 같은 존재인지. 알 수 없다. 바다와 대양은 우리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습을 그대로 믿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우리도 인생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지녔을 수 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도 우리 자신도 우리가 걸어온 역사도 우리가 겪은 고통도 절대로 하나의 정체성으로 분류할 수 없다"



7.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고전, 소설)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추한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며 그 모습을 어떻게 해서든 숨기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르게 물어보자.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은 그 모습을 숨기려고 할 것인가, 추하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내어 깨끗하게 고쳐보려 할 것인가? 우리는 누구나 자기 내면을 그린 초상화를 마음속 깊은 방에 두고 산다. 생각과 말과 행위가 그대로 나의 본심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면의 초상화를 숨기고 산다.



8. 브라소프 트리포노프, 재미있는 화학 (과학)


 확실히 재미있기는 재미있다. 주기율표에 대한 지식이 좀 있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저자는 최대한 쉽게 강의하고 있지만 솔직히 나는 쉽게 따라가기 버거웠다. 재미있기는 했지만 독후감으로 무슨 말을 더 써야 할 지 막막하다. 아무튼 이 책을 읽고 거실 벽에 커다란 주기율표를 붙여두고 자린고비 굴비보듯 한 번씩 돌아본다. 수소, 헬륨, 리튬, 베릴륨,... 여전히 5번에서 막힌다. 붕소다. 6번부터 다시 탄소, 질소, 산소, 플루오린, 네온, 나트륨(소듐), 마그네슘... 이 정도는 외워두자. 문과 출신에게도 이 정도 흥미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위대한 책이다. 주기율표를 좀 외운 후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9.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고전 소설)


 헉슬리가 현대의 문화를 본다면 이미 반쯤은 멋진 신세계가 구현된 모습일 것이다. 사실 현대인이 보기에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 이제 더 심각한 상상과 우려를 해야할 시대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미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있는 인간성 상실이 충격을 상쇄할만큼 강력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문득 미래의 이상한 모습을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지 하는 생각도 든다. 심지어 그것이 헉슬리가 생각했던 끔찍한 세계일지라도. 인간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히 두렵지만 그것은 우리의 입장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이 미개함이라고 여기는 후손들이 나타난다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이라는 것도 빅히스토리 관점에서 본다면 몇 만 년 되지도 않은 따끈따끈한 관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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