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 정 Jan 25. 2016

슬픈 이름, 졸업

Track 01. 졸업 (Feat. Soulman) - 아날로그 소년 

 다른 때와 달리 가는 길이 무겁던 대학교 졸업식날. 나는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졸업식에 어색한 학사모를 꾹 눌러쓰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동기들과 달리 조금 늦게 졸업하는 터라 후배들 사이에 끼여 누구보다 존재감이 한껏 부풀어있었다. 한 손엔 친구들이 주는 꽃다발을, 한 손에는 사진기를 들고 교정을 헤매고 다녔다. 한 달 전까지도 다녔던 도서관, 학교 건물들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저 하늘에다가 내 학사모를 집어던져

딱 한번 입는 옷이라 어색하고 좀 떨려


  처음에 학교 들어갔을 땐 고3의 스트레스 때문일까, 원하지 않는 학교에 왔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입학식에 가는 날부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공부만 하자. 아싸*(아웃사이더)가 될 테야!' 그러나 그 결심은 동기들과 어울려 놀게 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새로운 친구와 만났다는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한참을 웃고 떠들며 이왕 다니는 거 재미있게 다니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질없는 욕심이긴 했지만. 뿐만 아니라 나는 중, 고등학교 때와 다르게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더 크게 보고, 더 신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학교 안에서 갇힌 답답함을 벗어던지고 나보다 더 멋진 사람, 더 높은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 갈망을 늘 한쪽 구석에 갖고 있었다. 


누구의 가사말처럼 다 학점의 노예

그렇게 되긴 싫었지 (그냥 막 놀면 어때?)

난 매일 밤을 술로 시간을 뿌려댔지

시트콤은 거짓말이라면서 푸념했지

3월은 한 달 내내 학교 행사만

끝나면 뒤풀이라며 술집은 맨날 가


  그 갈망을 해소시키려는 계획도 세우기 전에 나는 동기들과 한껏 어울려 과 학생회 활동에 매진하게 되었다. 술도 먹지 않으면서 학교 행사와 뒤풀이를 빠짐없이 나갔고 그곳에서 묘하게 즐거움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학점도 거의 방치한 채 참여했던 학생회 활동에서 싫증과 권태가 동시에 찾아왔다. 갑자기 친했던 동기들이 금세 마음에서 한 뼘, 두 뼘 그리고 저만치 멀어져갔다. 아마 나는 학교에서 스스로를 분리하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도망치듯 나왔던 학교, 조금은 멀어진 동기들, 후배들, 선배들.  그때의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멀어짐'도 익숙해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학교로 돌아가 이전과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했다. 입버릇처럼 '졸업하고 싶다'를 중얼거렸던 나는 정말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몇 천만 원짜리라던 그 졸업장

근데 종이 한 장이라니 진짜 멋없다

요즘은 그거 하나로는 취직이 어렵다니

그래도 다들  한 손엔 빛나는 꽃다발이

셔터 소리에 다 멈춰있어




이 추운 날, 귓속을 파고드는 노랫말 한마디에 나는 한숨 섞인 입김을 억지로 숨기며 내뱉었다.

이제는 쓰지 않을 졸업이라는 이름을 다시 생각하며,

이맘때쯤 학사모를 던지고 세상에 걸음마를 시작했던 나를 떠올리며,



아날로그 소년, 5집 택배 왔어요 - Track 09. 졸업 (Feat. Soulman)


작가의 이전글 그리고 내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