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확실한 길
서른의 초입에 섰다.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서른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서른이면 돈도 있고 가정도 있고 애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통장에 돈도 없고, 책임질 가정도, 애도 없다.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지 정말 알 수가 없나 보다. 깜깜한 터널처럼.
나는 갑자기 이별을 했고, 직장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왔고, 이사를 했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이 잘못되었던 걸까? 그럴 수도 있다.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싶었다.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1초 만에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직업을 바꿀 수도 없고.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몇 년이고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불행한 일을 하면 나를 잃는 건 시간문제다.
연애가 잘못되었던 걸까? 그럴 수도 있다. 일과 삶에 치이면서도 시간을 쪼개서 이어가던 관계가 끝나 버렸으니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문제가 수없이 발생해도, 무를 자르듯 끝낼 수 없는 것이 관계다. 그런 걸로 '헤어질' 것까지는 없으니까. 내가 좀 더 이해하려 했고, 무리하게 맞추려 했다. 그럴수록 나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나'라는 게 뭐지? 나를 잃었다는 느낌의 실체가 뭐지?
나는 일까지 그만두며 '나'의 정체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히 무언가 잃어버린 것이 확실한데, 대체 이 느낌이 무어냔 말이다. 일 없이 한가한 어느 날, 책장에서 몇 년째 잠자고 있던 책에서 나는 답을 찾았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 창조성의 회복을 다루는 책이다.
창조성 하면 예술가를 떠올리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창조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예술가다. 인생이라는 작품을 만드니까.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이다. 모두가 창조성을 회복해야 하는 당위성을 가진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수도 없이 쓰는 '창조성'이라는 단어를 찬찬히 음미해 보니 이런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1. 인류는 그 존재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두 번의 혁명을 거쳤다. 그래서 그 이전의 삶을 잃어버렸다. 수렵 채집을 하다가 이제는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다. 인간이 본래 만들어지지 않은 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2. 창조성이란 내 안에서 나오는 그대로의 것을 사는 것이다. 그 자체가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것이다.
3. 그러려면 사회의 통념에 부딪히고, 스스로와도 싸워야 한다. 그러나 '나 자신'이 만들어진 바로 그 방식대로 살아야 가장 행복하다. 외향인은 밖에서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행복을 느끼고, 내향인은 방해받지 않고 혼자 놀아야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모두가 다른 행복의 공식을 가지고 있다.
아, 나를 잃었다는 건 아주 심플한 거였다. 나 지금 불행해.라는 뜻이었구나. 그리고 내 안의 것을 살면 행복해질 수 있구나!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타인의 목소리로 살아왔던가. 부모님의, 친구의, 연인의, 상사의... 수도 없이 많은 잡음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의 인생인데, 남의 뜻대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는 나로 한번 살아보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