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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Jan 05. 2024

그의 캐나다행 편도 티켓

나의 여행이 행복한 이유, 그의 여행이 고단한 이유 1

10년 전, 그는 내가 묵었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고마워. 사랑해."

나와 친구가 로비를 지날 때마다 인사하는 로봇처럼 자동적으로 저 말을 내뱉었다.

 

"아시아 여자만 보면 들이대는 놈들 중 하나일지 몰라. 쌩까자."

친구와 나는 자동 경계태세를 갖추고 로비를 지나다녔다. 그리고 체크아웃하는 날,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던 30분 동안 긴장이 풀린 나는 그 이상한 놈과 이야기하게 됐다.


 "나는 이란에서 왔어. 돈이 없어서 여기서 일하면서 숙식하고 있어. 거의 한 달이 다 됐네."

 "너 싱가포르에서 왔다고 했지? 싱가포르는 가고 싶은데 물가가 너무 비싸서 못 가겠어."

 "이번 여행에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 나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좋아, 그래서 카카오톡도 깔았어. 너 카카오톡 해?"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카톡으로 자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얼마 후 말레이시아를 떠나 태국으로 갔다. 그리고 몇몇 나라를 거쳐 한국과 일본에 다다랐다.

그의 여행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이란 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분명 돈도 거의 없다고 했는데 뭘 저리 싸돌아다니지?'

여권 커버를 본떠 만든 아시아 지도

우리는 종종 영상통화를 하기도 했는데, 그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던 날에도 우리는 영상통화를 했다. 나는 궁금함을 못 참고 무례함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너 이란 사람이라며. 어떻게 그렇게 아무 나라나 마음대로 갈 수 있어?"

 "푸하하 하하하핳.


한참 웃던 그가 정색을 했다.

 "지금 너 혼자 있어? 주위에 아무도 없어?"

 "응"

 "내가 지금 뭐 하나 보여줄게. 혹시나 화면 캡처 같은 것도 하면 안 돼."

 "뭔데 그렇게 심각해?"

그의 여권이 내 화면 가득 나타났다.


 "너 이스라엘 사람이야? 이름 OO이라며? 86년생이라며? 너 이 자식 싹 다 구라였어?"

혼자서 신나게 ㅋㅋㅋㅋ 거리던 그가 말했다.


"아니. 이거 가짜야. 내 진짜 여권은 여기 있어."


그가 진짜라며 보여준 여권에는 그가 내게 말한 모든 정보가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네 말이 맞아. 내 이란 여권으로는 절대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여행한 것처럼 여행 못해. 나 위조 여권으로 여행하고 있어."


늘 장난스러운 말을 하던 그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나 이란에서 추방당했어. 내 친구가 민주주의에 대한 기사들을 썼는데, 나는 그 친구 기사에 사진을 제공했거든. 그런데 내가 블랙리스트가 됐더라고. 그러다 구속되게 생겼지. 그래서 그 길로 도망쳤어. 내 친구도 도망 중이야. 지금 나 이란 땅을 밟지? 나 바로 체포 돼.

....  사실 돌아갈 곳이 없어. 여행이 아니라 집을 찾아다니고 있는 거야."

정말로 갈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 내일 일본 가는 거 알지? 일본에서 캐나다로 갈 거야. 그리고 자수할 거야.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려고."


그랬다. 그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어찌어찌 일을 했고, 어찌어찌 돈을 모았다.  그리고 일본-캐나다 비행기 티켓을 샀다.(그전까지 그의 이동수단은 버스, 배, 기차, 그리고 튼튼한 다리였다.) 그건 그의 인생 통틀어 가장 위험한 도박이었다. 새로운 집이 생길 수도 있고, 도망친 집으로 강제 송환될 수도 있었다.




 "우리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다."

내가 돌아갈 곳이 없다면 여행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사람은 한 곳에 살기 때문에 여행을 한다.

유목민들에게 여행이 무슨 의미일까?

돌아갈 곳이 없이 무작정 떠돌아다니는 삶은, 심지어 내가 태어난 나라에 돌아가지도 못하는 삶은 무엇인가?

 '으휴 이놈의 집구석.'

그날따라 내 몸뚱이 하나 뉘일 수 있는 집구석이 그리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누울 수 있는 침대가 있다는 것,

월세지만 매일 밤 내가 들어갈 집이 있다는 것

내가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나를 잡아가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이라서,

지겹다고 맨날 욕했건만 그래도 나를 보듬어주는 싱가포르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며칠 후 일본에서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기 전 그는 내게 마지막 카톡을 보냈다.

 "나 이제 비행기 타. 나 도착하면 출입국 심사대에서 잡힐 거야. 그러면 구치소에 들어가게 될 거고 한두 달간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연락 가능하면 꼭 할게. 그동안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나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답장을 보냈다. 내 메시지의 1은 한 달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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