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CHAPTER 19 : 포의 녹음기

19화

by 현영강

운이 좋았다. 퓨티가 집에 온 건, 포가 마을을 돌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포는 침대에서 퓨티를 맞았다. 퓨티의 얼굴에서 포는 그녀가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지만, 딱히 평소와는 다른 제스처를 내밀거나 하진 않았다. 본인의 눈썰미를 의심했다기보다는 방금 치르고 들어온 범행의 꼬리가 손짓에 드러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퓨티는 포에게 인사를 하고, 침대 아래에 정갈히 정돈해 둔 담요 속으로 몸을 파고들었다. 퓨티는 금방 잠이 들었다. 새근새근한 그녀의 숨소리가 마을의 폭포 소리와 함께 집을 평온히 채웠다. 포는 조금도 잠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해진 공기에, 묘한 흥분감이 느껴졌다. 포는 침대 등받이에 기대어 조금 전을 회상했다. 비가 왔음에도 걷기에 적당한 습도였었지, 검은색 모자가 걸려 있는 집은 깨나 인상적이었어. 부러운걸. 그런 고급진 여자 앞에 집이 배정되었다는 게.


―뭐, 향수 쓰는 여자를 다루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리고 포는 등을 기댄 채로 팔을 뻗어 닫혀 있는 창을 열어젖혔다. 창은 오래 열어 놓지 못한다. 불이 없다 한들, 사람의 피를 멀리서도 맡아 내는 벌레들이 천지니까. 포는 고개를 기울여 나무에 가려진 별을 쳐다보았다. 마을의 별은 셀 수 없다는 표현조차 아까울 정도였다. 시티가 고도로 발달한 기구를 통해서만 별이란 존재를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곳은 별을 접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그야말로 천국인 셈이었다. 실제로 별은 마을에 갓 입성한 풋내기들이 가장 먼저 마음을 트는 대상이기도 했다. 십이면 십, 백이면 백, 모두가 그랬다. 그리고 그들은 별의 힘을 빌려 차츰 불면과도 같은 독백과 사색에 익숙함을 느껴 갔다. 포는 퓨티가 잠든 것을 확인한 다음, 사색을 택했다.


「사색이란 단어를 붙이기엔 거창하긴 했다. 그가 지금부터 할 거라곤 바를 떠올리는 일이었으니까.」


포는 별빛을 정중앙에 담은 채로 눈을 감았다. 휘어 있는 체리 빛깔 네온사인이 단출하게 걸려 있는 곳이다. 성공적으로 바의 입구에 다다른 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조경이 흐트러지지 않게 최대한 호흡을 늦추며, 전시회장을 따라 한 듯한 둥근 계단 위로 포는 발을 내렸다. 초입에서는 조금도 들리지 않던 재즈풍의 음악이 계단 아래서부터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계단을 절반 정도 내려온 포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화로 정확히 두 장.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좌우로 보초처럼 서 있는 두 명의 사내를 향해 각각 그를 건넸다. 두 사람은 상대가 움직임을 알아차릴 만큼만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엉덩이를 떼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좌석에 알맞은 머릿수만큼이 가게에 들어차 있었다. 포는 빈자리의 유무보다 먼저인 게 있었다.


―치파오…, 치파오…,


포는 되뇄다. 치파오를 입고 있는 사람이 딱 한 사람 보였다. 포는 금방 그녀를 찾아내었다. 여자의 머리에 구멍이 송송 뚫린 장식이 보였다. 여자는 머리를 묶고 있었다. 키는 160 전후, 눈썹이 조금 올라간 편이었는데, 초롱초롱한 눈망울 덕분에 앙칼진 인상은 못되었다. 포는 문득 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주변 배경도 더디게 보였다. 그녀는 술이 진열된 틀을 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아주 정성스러운 손놀림이었는데, 언뜻 보면 자신이 가게의 사장이라도 된 듯한 최면, 혹은 과시를 내뿜는 것 같기도 했다. 포는 언제나 그랬듯 쭈뼛쭈뼛하게 변한 자신의 걸음걸이를 원망하면서 그녀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포는 인사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현영강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반갑습니다. 소설 쓰는 글쟁이 '현영강' 이라고 합니다.

148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8화CHAPTER 18 : 매드가 놓친 친절의 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