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는 끝이 아닌, 죽음.

30화 : 소설의 탈고

by 현영강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쓰고, 엔터키를 두 번 누른 뒤, [완결] 혹은 [끝]이라는 단어를 타이핑한다.



그 순간, 내 방의 공기는 바뀐다.
폭죽이 터지거나 팡파르가 울릴 줄 알았는가?
천만에.



완결의 순간은 흡사 '장례식'과 같다.



​지난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내 머릿속에 살았던 인물들이 일제히 짐을 싸서 떠난다. 매일 밤 나를 괴롭히던 주인공,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악당, 내가 사랑했던 조연들. 그들이 "작가 양반, 수고했어. 우린 이제 갈게."라며 내 뇌에서 빠져나간다.



그때 찾아오는 건 환희가 아니라 거대한 '공허'다.



​폴 발레리는 말했다.
"시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버려질 뿐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완벽해서 끝내는 게 아니다.



더 이상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내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들을 세상으로 방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탈고(脫稿)는 원고를 벗어난다는 뜻이자, 자식을 떼어놓는 어미의 심정과 같다.



​초보와 프로의 차이는 여기서 갈린다.
초보는 '시작'을 잘하고, 프로는 '끝'을 낸다.



세상에 쓰다 만 걸작은 없다.
완성된 졸작이 미완성된 걸작보다 위대하다.



아무리 엉망이라도 마침표를 찍어본 사람만이 다음 문장을 쓸 자격을 얻는다. ​이제 나는 다시 백수로 돌아간다. 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인간 현영강으로 복귀한다. 이 추락의 낙차는 언제 겪어도 아찔하다.



나는 안다.
이 공허함을 채울 방법은 딱 하나뿐이라는 것을.
다시 새로운 첫 문장을 쓰는 것.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또 다른 인물들을 불러내어,

내 머릿속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



​소설가는 마침표를 찍는 사람이 아니다.



마침표 뒤에 숨겨진다음 이야기를 기어이 찾아내는 사람이다. ​나의 '소설가 현영강' 1권은 여기서 끝난다.




​안녕하세요, 소설가 현영강입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소설가 현영강] 1권이 30화로 막을 내렸습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 제 목표는 거창한 작법서를 쓰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매일매일 흔들리는 한 인간이 어떻게든 글을 붙잡고 버티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눌러주신 '라이킷' 하나,

댓글 한 줄이 저를 책상 앞으로 끌어다 앉혔습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유일한 세상과의 연결 고리였습니다.


​1권에서는 주로 작가의 '태도'와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돌아올 [소설가 현영강 2권]에서는 조금 더 깊고, 날카롭고, 실전적인 이야기들을 들고 오겠습니다.


제 소설 『반반한 마을』, 『식물인간』, 『조향사』를 쓰면서 겪었던 구체적인 에피소드들과, 피 튀기는 집필의 현장을 더 생생하게 중계하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배고픈 작가입니다.
하지만 저는 쓰는 사람입니다.
쓰는 한, 저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 그리고 저의 글벗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금방 다시 오겠습니다.




​2026년 2월,
당신의 작가,

현영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