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내 직업운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였는가 하면 뭔가 내가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꾸준히 오래 하지 못하는 나의 성격에 비해 순간의 집중력과 아이디어는 남보다 더 인정을 받았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동안 분기, 반기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쥐어짜 내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보험 세일즈부터 시작하여 은행에 들어간 나로서는 행원으로 입사한 사람들보다 좀 더 산뜻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전 직장의 동료들의 기억 속에 나는 빠르지만 어느 정도 준수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기억된다고.. 몇몇의 전 직장 동료와 선배들에게 들은 바 있다. 이런 나를 간파한 첫 회사의 선배는 '너는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는 재주가 있어'라는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어떤 조직에서든 길게 몸 담지는 못하였고, 그 안에서 잠깐 인정을 받았을지언정 나를 평가하는 사람에게는 큰 신뢰를 주지 못한 것 같다. 아마도 그런 모습이 조금 자아도취한 모습이었거나 앞서간 생각을 하는 누군가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다.
사회생활 15년 만에 자발적(?) 백수가 된 지 장기간(6개월째..)으로 치닫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서 있다 느낀다. 지금까지는 노력대비 운이 좋아서 버텨 온 내 삶에 많은 것들을 채웠다. 누군가는 노력이었다고 말해 줄지언정 나는 안다. 내가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진짜 노력을 했다면 난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중간에 그 일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노력도 노력이거니와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일을 해보고 싶다. 그래야 내가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다섯 살이 된 딸아이에게 환갑쯤 되어서는 '아빠는 운이 좋았어'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도록.
얼마 전 기안84가 자신의 성공에 가장 큰 작용을 한 것이 운이라고 말한 장면이 기억난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이 그만한 노력을 하지 않았냐고 했지만, 그는 그 정도의 노력은 누구나 한다고 말하며 자기는 정말 운이 따랐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른 것 같다는 말을 다시 강조했다. 기안84라는 사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지독한 자기검열자이며 엄청난 노력가, 그리고 야망가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았다는 말을 쉽게 할 순 있지만, 누가 그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 말의 의미는 달리 느껴질 수 있다.
요즘 가수 권진아의 '나는 운이 좋았지'라는 노래에 흠뻑 빠져있다. 사랑과 헤어짐에 관한 노래이지만 가사 중 이 부분은 좀 다르게 와닿는다. "스친 인연 모두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었으니 후회는 하지 않아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나 역시 스쳐지나온 일과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래도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