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바턴의 첫 번째 이야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 단지 한 여자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38p


​나는 늘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더는 달라지고 싶지 않았다! -52p


루시 바턴은 (책과 숙제를 통해 이뤄낸 성과들을 통해) 떠날 수 있었기에 떠났지만, 떠남은 달아남이 되기도 버려짐이 되기도 한다.

-227p, 옮긴이의 말(정연희)



뉴 햄프셔의 작은 타운의 그 작가 세라 페인은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겠지. 스트라우스의 대표작인 <올리브 키터리지> 시리즈에 앞서 루시 바턴 시리즈를 읽어보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내 이름은 루시 버턴>을 아껴 읽다가, 마침내 다 읽고 나서도 (먼저 리뷰할 책들이 있어)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책방에서 후속작 <무엇이든 가능하다>와 <오, 윌리엄!>을 만나 고민을 하고 비에 젖을까 다시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루시 바턴은 애정결핍과 열등감을 더없이 담담하게 고백한다. 심지어 루시는 고향을 떠난(탈출한) 죄책감까지 뒤집어 쓰고 부모형제로부터 배신자로 불리며 살았다. 루시는 자신의 결핍과 열등감의 정도를 자가 진단할 정도의 기준이 없다고도 고백한다.


내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게 얼마나 무지(혹은 무식)한 것인지조차 가늠이 안 되는 상황. 하지만 루시는 뉴욕을 사랑한다. 나도 뉴욕을 사랑한다.


이방인으로 보이는 것에 컴플렉스가 없지 않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서울같지 않은' 분위기는 대체 뭐람. 그리하여 '어디 출신인 것 같냐'고 물어보면 뉴욕이나 LA 같은 미국의 대도시가 나와서 (약간 화낼 작정?을 하고 물어봤다면) 도리어 고맙거나 뿌듯해지(면 안 되는데!!)는 역효과가 일어난다.


서울 사람보다 더 자유분방한('눈치'를 초월한) 느낌이 소도시와는 매치가 안 되나보다.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대도시를 벗어나면 튀고 싶지 않은 마음을 그들이 알까.




서울 혹은 자기 고향과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는 위성도시나 광역시에서 나고 자란 (나의 어떤부분을 포함한) 사람들은 이런 출신토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루시 바턴이 제기하는 문제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거대하다. (백인) 쓰레기에 관한 언급은 이제 막 다문화에 인식이 겨우 싹트기 시작한 한국어 문화권에서는 과부하겠지.


나도 잘 모른다. 나도 내 무지(무식)의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제는 친구보다도 (주로) 가족들에게 잘난 척을 하지 않기 위해 홀로 수중발레를 하느라 지친다.



하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보도를 걷거나 바람에 휘는 나무 우듬지를 볼 때, 또는 이스트 강 위로 나지막이 걸린 11월의 하늘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이 갑자기 어둠에 대한 앎으로 가득차는 순간들이-예기치 않게-찾아오기도 한다. 그 앎이 너무 깊어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나올 것 같고, 그러면 나는 가장 가까운 옷가게로 들어가 낯선 사람과 새로 들어온 스웨터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21p


내가 그녀를 좋아한 또다른 이유는, 그녀가 뉴햄프셔 주 작은 타운의 쇠락한 사과 과수원에서 자라 뉴햄프셔 주 시골 지역에 대한 글, 열심히 일하고 힘들게 살아가지만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썼기 때문이다. -59p

​이 세상에는 그런 평가가 끊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94p


​그런 일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일어난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건, 나는 그것이, 내리누를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이런 필요성이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저속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11p


그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건, 그게 내가 평생 해왔던 방식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가 그 자신은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망신거리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실수를 덮어주는 것. -129p


우리도 쓰레기였어요.

우리가 정확히 쓰레기였어요.

-141p


​내 생각은 내 것이 되었다. 혹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되었다. 나는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움직였다. -211p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이 이야기만큼은.

-216p



루시 바턴 시리즈를 마저 읽고 스트라우트의 전작을 차곡차곡 쟁여두면 좋을텐데. 읽다가 일시정지 상태가 길어진 시리즈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