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무어 <숲의 신>
우리 아들이 지금 사라졌다는 게 말이오. 바버라도 사라진 마당에 이게 어떻게 보이는지 이해하시오?
-274p
도망쳐. 저 짐승 같은 놈들이 네 목을 매달 거야.
-307p
인간도 동물이다. 똑같은 본능이, 언어의 저변에서 혹은 언어 없이 소통하는 똑같은 본능이 있다.
-402p
유서 깊은 (랠프 월도) 애머슨 캠프에서 한 소녀가 실종됐다. 캠프 설립자 피터 1세의 증손녀, 반라 보호구역을 소유한 반라 가문의 외동딸 바버라. 그런데 바버라 실종 전후로 수색팀과 반라 집안 사람들, 특히 애머슨 캠프의 실권자인 T.J.휴잇이 있는 곳에서 다른 실종 사건이 금기시된다?
바버라의 오빠, 베어 반라는 14년 전에 실종되어 공식적으로는 생사가 불분명하다. 가족들은 그 사건을 빨리 종결하고 싶어하고 엉성하게 수사하다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 라로셸은 승진한다. 바버라와 달리(!)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베어는 누구보다도 남매의 친모인 앨리스, 그에 못지않게 그들을 사랑한 T.J.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사라졌다.
베어는 어디에 있을까? 베어를 찾아야, 바버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신임 형사 유디타는 본능적으로 반라 집안 가족관계를 역추적한다. 전국 최초 여성 경찰, 뉴욕 주 최초의 여성 형사인 주디의 어깨가 무겁다. 그녀는 낙오되지 않는데 그치지 않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캠프 참가자 트레이시와 누구보다 총명했던 지도교사 루이즈가 있다. 트레이시와 루이즈는 주요 초점화자 중에서 유디타와 앨리스 다음으로 분량이 많다. 바버라의 오두막 동기 트레이시는 외톨이였지만 바버라와 캠프를 통해 강해졌다. 바버라를 찾아 나섰다 길을 잃은 그녀는 캠프의 생존지침을 떠올린다. “길을 잃으면 앉아서 소리치기”
바버라와 트레이시의 지도교사 루이즈는 인생 자체가 생존여행이다. 주목받으면서 무시당했고, 계급의 한계를 넘어설 뻔 했지만 이중생활을 하는 뻔뻔한 남자친구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중이다. 사실 루이즈의 관심사는 11세 연하의 남동생 제시와 애머슨 캠프 뿐이다. 심지어 배신할 게 뻔히 보이는 보조교사 애너벨까지 감싸안으려 한다. 함정에 빠진 루이즈의 뒤로, 베어 사건 당시의 요주인물 칼 스토더드가 겹쳐진다. 그는 대체 무엇을 목격했기에 죽어서도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을까?
타고난 감각으로 스릴러를 읽는 추리 본능을 만족시키는 형사 유디타, 미국에서 ‘전업주부’ 가스라이팅이 한창이던 시절 민며느리처럼 훈육과 조종을 당한 나머지 (그 시절 주부들과 빅토리아 시대 귀족 부인들이 그러했듯) 알코올 의존증을 거쳐 미쳐가던 앨리스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동안 트레이시와 바버라를 둘러싼 청춘 사각관계 드라마와 루이즈와 존 폴을 둘러싼 어른들의 치정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렇게 손에 땀을 쥐는 스토리만 가득했다면 각자의 서사에 그토록 몰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교사 올컷을 통해 요약되는 반라 보호구역의 역사, 사이코패스 슬루터의 조상들과 4대에 걸친 피터 반라 사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그림자 가문 휴잇, 앨리스에게조차 무시당하던 시어머니의 결정적인 단서 제공, 숲을 떠도는 백발의 여인, 질투 많은 존 폴을 때려눕히는 리 타우슨 등 거의 모든 챕터에 복선이 있다. 이 복선들은 사건의 본질과 그 숨은 이면까지 끊임없이 들추는 동시에 이들이 숲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바버라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녀는 <밀레니엄 시리즈>의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노르딕 여전사의 원형인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스밀라까지 소환한다. 지역 주민의 생존 수단을 틀어쥐고 왕처럼 군림하는 반라 집안의 피터 2, 3세와 그쪽 사람들은 수많은 귀족물을 오마주한다. 인물들은 유럽풍인데, 뉴욕주 업스테이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통제불가한 자연에 대한 묘사는 자연스럽게 소로, 애머슨, 누구보다도 빌 브라이슨과 겹쳐진다.
미드에서 Truth or Dare? 게임을 본적이 있다면 이 책을 바로 읽자. 노르딕 스릴러, 고딕 소설, 자연주의 사회파 소설, 그 어느 것을 상상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지만 마지막 한방울까지 음미하려면 풍성한 연관추천작과 함께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