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건 무슨 말일까? 나는 고민했지만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글도, 댓글도 이 년 전의 것으로 정작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던 당사자들은 이 글을 기억에서 이미 잊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나를 줄곧 따라다녔다. 나중에 뵙겠다니, 날다람쥐1호는 날다람쥐2호랑 만났을까?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을까? 그들이 혹시 어떠한 모의를 한 건 아닐까? 아니면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이라던가.
날다람쥐1호 = 이치호 라는 건 가정해보면 꽤나 그럴싸했고, 나는 그가 말한 추후 생각난 '그 남자'가 혹시 내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도명제약의 직원인 어떤 여성. 그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아이. 그녀가 소개해준 유일한 지인. 쓸데없이 성실해 보인다 는 표현은 신경에 조금 거슬렀지만 욕보단 나았으니 그러려니 했다.
나는 '날다람쥐2호'에게 개인적인 쪽지를 보냈다. 이미 내 안에서 날다람쥐1호는 이치호일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모든 것이 널뛰기를 하고 있었고, 속에서 끌어 오르는 무언가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행동에 옮겨야했다. 내가 접근 가능한 건 '날다람쥐2호'였다.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그 사람이 유일한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주가 지날 때까지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무수한 글들. 모임이라는 이름아래 모인 사이트 가입자들은 제각각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이래서 사이버공간이 허무하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뭉뚱그려 부를 수 있는 오백 명의 사람들을 되도록 구체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각자를 나누는 특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하철에서 눈이 마주쳐도 모를 그 사람들은 대체 무엇으로 연결되어있다고 해야하는 건지 몰랐다.
그건 내가 '날다람쥐2호'를 만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지 모르는 이유와 비슷했다. 연락이 오지 않는 사실을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이 마무리 된 삼 주 하고도 이틀 만에 '날다람쥐2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레몬에이드를 꿀꺽꿀꺽 삼키고 있는 중이었다.
대체 왜 나를 만나자는 말에 그 인간은 수락을 한 걸까. 내가 누군줄 알고?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기막힌 타이밍으로 내 앞에 나타난 그 사람은 나를 탐색하듯 쳐다보았다.
꿀꺽. 레몬 덩어리가 식도를 넘어갔고 눈이 마주친 순간 그나마 띄엄띄엄 떠올린 인사말과 대화 서두를 통째로 날려 먹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일단 날다람쥐2호는 남자였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아 보이고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키가 큰 건 아니지만 덩치가 거구였는데, 그런 모든 특색을 무시하고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따로 있었다.
그의 왼쪽눈은 노란색이었다. 금색이라고 치장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하지만 도무지 그렇게 말하기엔 광택도 고급스러움도 없는 샛노란 색이었다. 마치 뽑기에서 뽑아낸 반은 투명인 그 자그마한 통의 아랫부분 같은 노란색.
나도 모르게 그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말았다. 막 뒤편에 가려진 듯한 동공이 불투명하게 존재하긴 했지만 자세히 보지 않는 한 그 눈은 그냥 노란색 구슬처럼 보였다. 도무지 그 눈으로 뭔가를 쳐다본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무례하다 싶을 만큼 빤히 보던 나를 제지할 생각도 않고 그는 잠시 서 있었다. 절룩거리는 다리가 불편했는지 그가 몸을 틀었고, 그때서야 마법이 풀린 듯 모든 사실을 인지했다.
내가 벌떡 일어섰다.
"아, 죄송합니다..저는.."
"괜찮네."
"네, 아..저기,"
내가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그는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가 눈짓으로 말했기에 나도 다시 앉았다.
"날다람쥐2호요."
“아..넵.”
저렇게 정직하게 자기소개를 할 줄은 몰랐다. 내 대답에 그는 웃었다. 그 웃음에는 너의 의문과 내가 나타나 놀란 이유를 안다는 듯한 여유로움과 관대함이 묻어 나왔다. 혹시나 화내지 않을까, 화내면 넙죽 엎드려야겠다 생각한터라 나는 마음이 놓였다.
"이 눈 말인가?" 갑자기 그가 말했다.
“네?”
시선이 다시 그쪽으로 간 건가 놀라 반문했다.
“이게 엔씨 때문이요.”
그는 덤덤하게 말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엔씨가 뭔가요? 하고 물어보려다... 말문이 막혔다.
NC(NerviCaput). 분명히 그 이름이었다. 물질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파동이후 그 이름은 세상에 나오기 전 미정 약품으로 분류되었다. 정식명칭은 없는 걸로 간주되고 전량 폐기처분되었다.
내가 가입한 곳이 ‘도진요’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거기 가입한 사람들은 그 이름을 모를 수 없었다. 나처럼 네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뭐라 할 말이 없어 가만히 눈알만 굴렸다. 몇 번 헛기침을 하고, 죄송합니다 를 해야하나. 이미 타이밍을 놓친거 같은데. 라는 말만 머릿속에 썼다 지우길 반복했다. 결국 먼저 말을 꺼낸 건 상대방이었다.
"나를 왜 보자고 한 거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는 그를 바라보며 숨을 가다듬었다.
"날다람쥐1호 게시글에 댓글을 다셨더라구요. 다름 아니라 그 날다람쥐1호 말인데요."
"내가 할 말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그는 내 말을 끊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가 내게 뭔가를 숨기고자 했다면, 그 반응이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너무 티가 나잖아. 당연한 거부에 황당하고 주눅든다기보단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지금껏 긴가민가했던 내 생각에 일종의 확신이 들었다.
"이치호를 아시죠?"
그제서야 남자는 내게 눈을 돌렸다. 시력이 없을 것 같던 그 노란색 눈 너머로 움직이는 불투명한 동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