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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Aug 09. 2018

덴마크 하늘이 예쁘다

코펜하겐 하늘은 맑고 맑은데, 내 마음은 불안이 가득 껴 흐리던 날.


셋이 나란히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체구가 작고 고우신 할머니 한 분이 버스를 타러 오셨다. 정류장 의자는 딱 3 사람 앉을 정도로 작았다. 황가수가 할머니를 보고 먼저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할머니는 버스가 금방 올 거라 괜찮다고 사양을 하시다 마지못하셨는지, 마지못한 척하신 건지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코펜하겐 할머니답게 유창한 영어로 어디서 왔느냐, 코펜하겐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 물으신다.

모르는 사람이 말 거는 게 일상인 이태리에서는 오히려 짧게 대답하고 대화 오래 하지 않으려고 시선을 살짝 피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쩐지 할머니의 질문에 순순히 다 털어놓았다. 코펜하겐 정착은 잘 되느냐고 아이 학교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신다. 

"집이 없어요. 집을 못 찾아서, 학교 등록도 아직 못했어요. 코펜하겐은 집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렇지, 나도 알아. 코펜하겐이 집 구하기 어려운 도시라고 소문이 났지. 외국인들만 집 구하는 게 힘든 게 아니라 내국인도 마찬가지야. 젊은 사람들 독립하면 집을 못 구해서 다들 여럿이 모여 살고 그러잖아. 집 값도 비싸고, 집도 많이 없고. 힘들겠구나."

"네... 좀 힘들어요."

할머니의 진심 어린 동감에 마음이 녹아 나도 모르게 '힘들어요' 했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집을 찾다가 어려움이 있으면 나한테 연락 줘. 나도 주변에 한번 알아볼게."

할머니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주셨다.

우리는 너무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호의에 여러 번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같이 버스에 탔다가 먼저 내리시는 할머니께 다시 손을 흔들며 인사드렸다.

아마 명함의 연락처로 연락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받아 든 명함이 너무 따뜻해서 몇 번이고 다시 보고 할머니 성함을 읽었다. 

코펜하겐 하늘이 참 맑구나.


"언니 걱정 말아요. 기도하다 생각났어요.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니 집 문제나 다른 작은 문제들은.. 다 해결해 주실 거야.. 나도 이런저런 걱정 많이 했는데..... 정말 예비하셨구나 하는 생각 이듬.... 요즘에 언니가 보고 싶어요."

나보다 먼저 나보다 멀리 이사 간 동생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토스트를 구워 아침을 준비하다 말고 좀 울었다. 

나도 그러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문득문득 의심과 비관이 찾아오려는 중이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우성이 깊이 이해되다 못해 나도 아우성의 길에 접어들기 직전이었다. 그런 중에 내가 눈물로 먼저 떠나보낸 동생에게서 받은 문자는 속이 다 든든해지는 위로였고 응원이었다.

코펜하겐 하늘이 참 높구나.


교통 카드를 두 명이 같이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기계에 대고 버튼을 누르는데, 잘 이해가 안 된다.

여전히 아날로그를 미덕으로 삼는 이태리에서는 어디나 사람이 있었다. 모르면, 좀 긴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물어보면 해결할 수 있었다. 

덴마크는 인구가 적어 그런지, 인건비가 비싸 그런지, 앞서가는 사회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지하철도 운전사가 없고, 사람이 앉아 표를 파는 매표소도 없다.

나이 먹고, 뭐든 다 아는 것처럼 잘난 척 좀 하던 아줌마는 말 안 하는 기계 앞에서 당황하고 당혹해 화가 날 지경이다.

커다란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신 아저씨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으신다. 

두 명이 표를 같이 이용하는 법을 자세히 알려주신다.

내가 어떤 지점에서 혼란해했는지 이해한다고도 하셨다. 표 주인의 표는 이미 인식이 되고, 추가되는 1인의 표를 더 사용하는 것이니 +1로 표시되어야 더 쉬웠을 텐데, +2로 표시되는 것은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내가 혼란스러운 게 당연한 것 같다고 하셨다.

지하철을 같이 타고 조금 가다, 내릴 준비를 하시던 아저씨께서 내려서는 반드시 빨간색 표시가 된 기계에 다시 한번 카드를 찍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그걸 안 하면 60Kr, 우리 돈 만원 정도가 카드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니 조심하라고 일러주셨다.

"엄마, 저 아저씨 좋은 아저씨다. 그렇지? 우리가 안 물어봐도 먼저 다 알려주고. 정말 친절하다."

코펜하겐 하늘의 노을이 곱다.


이제 슬슬 휴가가 끝나는지 며칠 전까지 한산했던 놀이터에 아이들이 모인다.

큰 언니, 오빠, 어린 동생의 한 가족이 숨바꼭질을 한다. 내 옆에 앉아서 숨바꼭질 구경하는 시아에게 손짓을 하며 같이 놀자고 한다. 부끄럼 타는 시아는 같이 놀지는 않았지만, 자꾸만 웃어가며 숨바꼭질 가족과 눈인사를 했다.

아이 4명을 데리고 나온 엄마를 이틀째 만났다.

4명 중 막내가 시아 옆에서 그네를 탄다. 그네를 밀어주다 눈이 마주쳐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태리 출신 프랑스인이고, 가나 인과 결혼해 파리 근교에 살고 있고, 코펜하겐에는 이태리인 부모님이 이민 오셔서 아이들 데리고 놀러 왔다고 했다.

이태리 출신이지만, 어릴 때 이태리를 떠나 이태리 말이 서툴다고 하면서 반갑게 이태리 말로 대화했다.

시아도 목소리가 조금 커졌고, 4명의 아이들도 엄마를 통해 배운 몇 마디 이태리어로 인사를 건넸다.

이태리 학교 방학, 프랑스 학교 방학은 어떻고, 코펜하겐 학교 방학은 또 어떨지, 방학 끝나면 늦잠 자는 아이들을 또 어떻게 깨울지, 프랑스도 덥고 이태리도 더운데, 그나마 코펜하겐은 시원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매일 학교 앞에서 엄마들과 나누던 별 의미 없으나 늘 정다웠던 수다가 떠올랐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일이면 잊어버릴 얘기들을 나누고, 서로에게 행운을 빌며 헤어졌다.


노을이 빨간 하늘을 보고 불어 억양이 섞인 이태리 발음으로 그녀가 읊었던 이태리 속담을 나도 조용히 읊는다.


Rosso di sera bel tempo si spera

저녁 하늘이 붉으면 내일 날씨가 좋을 거야.



내일은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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