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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Aug 15. 2018

엄마는 오늘 어땠어?

드디어 집을 계약했고 임시 숙소에서 나가기로 했던 날에 딱 맞추어 이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집은 예상했던 것보다 비싸고,  예상했던 것보다 좋다. 

유로 사이트를 매일 들여다보며 거의 자기소개서에 가까운 메시지를 수십 통씩 보내다 더 이상 불안을 담아 둘 수 없었던 하루는 무작정 부동산을 찾아 나섰다.

부동산에 가도 월세 아파트 소개받지 못할 거라고 듣기도 했고 읽기도 했지만 그냥 앉아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나가 보기로 했다. 그러다 어딘가 어떤 부동산에서 우연히 들어온 월세 아파트 소개를 받을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도 품었다.

문이 열린 부동산은 모두 들어가 월세 아파트가 있느냐고 물었고, 모두에게서 한결 같이 매입만 취급하지 임대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었다. 좀 더 친절한 중개인들은 내가 이미 가입한 사이트 주소를 적어주며 그쪽으로 알아보라고 했고, 부동산 체인에서 직접 운영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월세 아파트가 있는지 확인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안내를 해주었다.

이미 예상한 답변이었지만 직접 확인하고 나니 맥이 빠졌고, 여덟 살 시아도 그런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느라 힘들고 지쳤다.

더 걸어가면 또 다른 부동산이 나오기는 하겠지만, 그 쯤해서 그만 두기로 했다.

"최선을 다한 것 같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아. 더 걱정하지 말고, 고민하지 말고 기다려보자."

황가수는 언제나처럼 느긋하려고 애썼지만, 넓은 어깨를 조금 늘어뜨린 채였다.


임시 숙소에서 나가기로 한 날이 닷세 쯤 남았을 때 유료 사이트에 새로 올라온 집을 보고 연락을 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공인 중개사로 부동산을 통해 내놓은 집이었다. 부동산을 훑고 다니던 날은 없던 집이 이렇게 부동산을 통해 나왔다. 역간의 절차를 거쳐 계약을 하고 나니, 세상에 이 만큼 간단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지난 3주. 내 속의 웃음기를 쫙 비틀어 짜 버린 그 시간이 이토록 극적으로, 또 조금은 싱겁게 그렇게 막을 내렸다.

계약을 하던 날 기분이 좋았다. 월세에 대한 예산이 올라가 앞으로의 생활이 슬쩍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일단은 좋았다.

그렇게 딱 하루 좋았다.


이제는 주소지를 등록하고, 무슨 색 카드를 받고, 또 무슨 색 카드를 받고, 은행과 공공기관 서비스 이용을 위한 일종의 보안 계정인 NemID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한다.

주소가 정해졌으니 학교도 알아볼 수 있다. 덴마크어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안내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어 설명하고 등록이 가능한지 물었다. 

얼마간 기다리면 인터뷰 안내를 받게 되고, 인터뷰 이후에 바로 학교를 갈 수 있을지 언어를 먼저 배워야 할지 등의 사항을 결정해 준다고 한다.

학교 개학은 이번 주인데, 인터뷰 날짜는 다음 주에 잡혔다. 인터뷰가 끝난다고 바로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으로서는 기약이 없다.


다음 계단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매일 하나씩 오르는 기분이다. 한 발 앞으로 디디면 아래 계단이 사라져 버린다. 돌아갈 수는 없다. 돌아갈 길도 없다. 분명 한 발 오른 여기가 좋은데, 다음 계단 걱정에 자꾸만 저 아래 사라진 아래 계단을 돌아본다.

집을 구한 것처럼, 이제껏 살아온 것처럼, 내가 애쓴 것보다 더 풍성한 감사를 누리게 될 것이지만, 다시 걱정을 안고 산다.  

주로 사이좋은 부녀인 시아와 황가수가 부딪히는 일도 잦아졌다. 사소한 서운함들을 얘기하지만 그 뒤에는 이사. 이별. 불안. 낯선 환경. 새 직장. 그런 진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이내 악수를 하고 화해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마음에 상처 주는 말들을 주고받고 미안한 마음을 건네지 못해 뚱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난 3주 그렇게 제 몫의 불안을 안고 지냈다. 


나갈 때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낯선 임시 숙소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잠들기를 기다렸다. 이제 두 밤 자면 이 침대를 두고 또 새로운 침대에 누울 텐데, 그곳에선 편안히 푹 잠이 들 수 있을까?

"엄마, 우리 얘기 좀 하다가 잘까?"

"응, 그래."

"엄마는 오늘 어땠어?"

"괜찮았어."

"괜찮았어? 좀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았는데. 집을 찾았어도 아직 기분이 좋지는 않은가 봐. 다른 문제가 있어?"

"문제는... 없어.. 그냥 이런저런 할 일들이 있는 거지."

"할 일이 있으면 하면 되지. 할 일이 있으면 기분이 안 좋아?"

"기분이 안 좋은 게 아니라, 어떻게 할까 생각하느라 그래. 시아는 어땠어?"

"나도 뭐.. 기분이 아주 좋은 건 아니지... 여기 오니까 좀 이상해. 심심하고, 친구도 아직 없고, 엄마 아빠도 좀 다른 것 같고..."

"엄마 아빠가 다른 것 같아?"

"응, 나하고 같이 있는데, 많이 같이 놀지는 않고, 안된다고 하는 것도 많고, 그런 것 같아."

"맞아. 그건 시아 말이 맞는 것 같아. 엄마가 할 일이 많은 건 아닌데, 머릿속으로 계속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시아랑 얘기하고 놀아줄 여유가 없었나 봐."

"아빠는 이탈리아에 있을 때는 더 웃기게 많이 해줬는데, 여기서는 많이 웃기게는 안 해줘."

"응, 아빠도 새로운 극장에서 일하느라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 여기서 앞으로 우리 셋이 어떻게 즐겁게 지낼지 생각하느라 그런지도 모르고." 

"나도, 괜찮은데, 좀 기분이 이상할 때도 있어. 여기는 다 다르고, 나중에 학교 가면 어떨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데 너무 많이 생각은 안 하지. 나는 똑같은 생각을 너무 오래는 못해. 하하. 엄마는 똑같은 생각을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어? 엄마랑 아빠도 나처럼 계속 새로운 생각을 하면 기분이 금방 좋아질 텐데."

"그러게. 시아처럼 잠깐 생각하고 잊어버리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되네. 엄마는 걱정이 많아. 일부러 걱정을 하는 건 아닌데, 내일 할 일이 있으면 잘할 수 있을까, 잘 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

"잘할 수 있겠지 뭐. (요즘엔 말끝마다 '뭐' 한다. 우리 부부중 누군가의 말버릇일 텐데, 둘이 다 아니라고 하는 중이다.) 잘 못하면 다시 하면 되겠지 뭐. 여기 처음 왔으니까 잘 못할 수도 있겠지. 그럼 어때 뭐?"

"그래. 그럼 어때 뭐?"


이태리 살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편하고 단단해졌다고 생각했었다. 새로운 문제 앞에서 이전보다는 좀 더 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안심했었다. 

하지만 많이 달라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스스로가 조금 느긋해졌다고 느낄 수 있었던 건,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익숙하지 않은 세상에 와서 걱정 많은 익숙한 나를 다시 만났다.

시아에게 새로운 환경에서도 의연하고, 느긋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불안한 엄마를 들켰을 뿐이다.  

아주 힘든 오늘도, 아주 즐거운 오늘처럼 분명 지나간다고 영원한 기쁨이 없는 것 처럼, 오늘의 고단함도 영원할 수 없다고, 오늘 다음에 오는 내일을 미리 그리는 일 보다, 오늘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중요하다고, 시아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오늘들을 보내는 나는 그저 형편없고 말았다.

노력하지만 의심하지 않는 신앙. 애쓰지만 아등바등 불안해하지 않는 신앙. 내일이 보이지 않아도 여덟 살과 침대에 누워 간지럼 피며 웃을 수 있는 정도의 믿음을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


낯선 곳에서의 3주 동안. 나는 조금 쓰라리게 나를 만났다. 

이 계단을 오르고 나면 나는 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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