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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May 23. 2019

9살에게도 눈물겨운 초코파이쯤은 있다

갑자기, 어찌어찌하여 잠깐 이태리에 다녀왔다.

엄마가 이태리에 혼자 가는 게 속상한 건지, 엄마와 잠깐 헤어지는 것이 속상한 건지 속내를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로 시아는 다소 우울했다.

시아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시아를 두고 어딘가를 다녀오는 나도, 남겨지는 시아도 짧은 이별을 앞두고 슬프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황가수는 내내 무척 당당했고, 자신 만만했으며 그간 이태리에서 내가 감당한 독박 육아의 은혜를 한 번에 갚아버리겠다는 각오로 결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침에 가방을 들고 나서는데. 

그토록 결연했던 황가수가 시아보다 천만 배는 불안한 얼굴과 매우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배웅했다.

그럴 줄 알았다.

역시 황가수는 상황이 벌어져야 비로소 불안을 승인하는 사람이다.


불안한 황가수와 슬픈 시아에게 빠이빠이를 하고 이태리 엘 다녀왔다.


딱 한번. 시아를 데리러 학교에 갔던 황가수가 운동장 구석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시아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당황한 것 빼고, 황가수는 장담했던 대로 사사로이 전화를 하지 않았고, 시아와의 일정을 스스로 결정하는 대담함을 보여주었다.


정신없는 일정 때문에 변변한 선물 하나 장만 못한 엄마는 돌아오는 길에 덴마크에는 없는 몇 가지 먹거리를 장만했다. 

몇 가지 양념, 요리에 필요한 이런저런 것 그리고 시아 간식을 좀 샀다.


RINGO. 

산도를 닮은 이태리 과자다. 덴마크에 과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덴마크 과자가 다 맛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시아는 유독 어릴 때부터 먹던 이태리 과자 RINGO를 그리워한다.  

동그란 모양의 RINGO 클래식, 타원형 모양의 새로 나온 RINGO과 시아가 체조 갈 때 하나씩 들고 가던 FLAUTI라는 작은 크림빵도 샀다.

평소 과자를 중요한 음식으로 여기지 않는 나는 뭐 이런 것까지... 하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어쩐지 시아가 보면 반가워할 것 같아 주섬 주섬 담았다.


갈 때랑 똑 같이 두 시간 날아 다시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방문에 빨간 풍선까지 달아두고 나를 기다리던 두 사람의 황 씨들은 진심으로 나를 반겼다.

극진한 뽀뽀를 주고받고 호들갑을 떨어가며 시아더러 눈을 감으라고 하고 가방을 열었다. 

두 가지 스타일의 링고와 플라우 티가 쫙!


"우아!!!!! 우아!!!!! 엄마 진짜 최고야!!!!! 너무너무 좋아!!!!!!!"


시아는 과자들을 한 아름 끌어안고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좋아하는 과자라고는 하지만 이만큼 커다란 반가움이라니.

과자 봉투를 뜯지도 못하고 한참 바라만 보다가, 

"엄마, 링고 하나 먹어볼까?"

"응, 먹어봐야지. 시아가 보관했다가 먹고 싶을 때 먹어."

"응!!!!!"


손바닥 반만 한 과자를 손에 들고 다시 한번 꼼꼼히 훑더니 앙 한입을 물었다.

"엄마.... 너무 맛있다. 기분이..... 기분이..... 아주 좋은데.... 이태리 생각이 아주 많이 나는 맛이네. 놀이터에서 많이 먹었는데, 친구들 나눠줄 때도 있었고, S가 이 과자 좋아해서 나도 좋아하게 됐잖아. 생각나? 아침에 이 과자 먹느라고 아침 너무 천천히 먹어서 엄마한테 혼났었는데, 그렇지?"


과자 한입에 하룻밤을 꼬박 풀어도 모자랄 추억이 쏟아져 나왔다.


많이 웃는 시아의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빵을 먹지 않는 청소년이었다. 좋아하는 빵도 없었고 단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김치, 고추장, 떡볶이, 마른오징어, 순대 같은 음식은 늘 그리웠지만, 과자는 떠오르지도 않았고, 그립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다녀온 누군가가 순대도 떡볶이도 아닌 초코파이 한 개를 선물했다. 차라리 새우깡이었다면... 즐기지 않는 과자였지만 이왕 먹어야 한다면 짭짤한 과자를 선호했던 나는 초코파이가 새우깡이 아닌 것이 조금 서운했다.

며칠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두었다가 어느 날 오후에 적당한 간식을 찾지 못해 책상 구석에 자리 잡은 초코파이를 뜯었다.

그런데.

반짝반짝 윤이나는 초코파이의 자태에 잠시 숨을 멈추었다. 초코파이가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아직도 그날의 반짝이는 초코파이가 눈에 선하다. 그날 만난 초코파이는 단연,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간식이었다.

아름다운 초코파이를 천천히 한입 베어 물었는데 초코 코팅과 카스텔라 마쉬멜로우가 나뉘어  한국말로 무언가 쉼 없이 큰 소리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집 앞 재래시장을 지날 때 들리던 소리, 쉬는 식간에 복도를 가득 채우던 소리, 내용은 모르겠지만 익숙하고 푸근한 소음. 초코파이가 힘을 다해 들려주는 그 소리에, 어이없게도 나는 큰 위로를 받고 잠시 훌쩍이기도 했었다.


나는 여전히 단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초코파이는 소중하다.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만나도 반갑고 고맙다. 


9살 시아에게 링고는 어떤 소리를 들려주었을까? 어떤 위로를 전했을까? 

9살에 그리운 맛을 가지게 된 너는, 또 어떤 맛에 익숙해지고, 또 어떤 맛을 간절해하며 살게 될까?

맛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풍성하게 경험하고 추억하는 사람이 되길. 그리울 것이라도 사랑하고 많이 먹기를 주저하지 않길. 그리움이 베인 추억이 너를 더욱 살찌게 하길.  

링고를 베어 물은 네 얼굴을 잊지 못할 것 같아. 그날의 초코파이처럼 아름답고 우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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