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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un 15. 2018

8살의 이별은 아프다




우리 삶에 큰 변화가 생길 예정이다.

아주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탈리아를 떠나 코펜하겐에 새 둥지를 틀기로 했다. 틀기로 했다기보다는 그렇게 하게 되었다는 말이 맞다. 우리가 결정해서 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손에 잡히지 않는 꿈, 바라기는 했지만, 이루어지리라고 믿어 본 적은 없는 그런 일이 생겼다.

하나님의 큰 손이 하신 일이다.

우리에게는 '하필 지금'이 그분에게는 가장 적절한 시기 이리라.

큰 변화, 큰 선물, 큰 기쁨.

하지만 시아...


"시아야... 엄마 아빠가 할 얘기가 있어."

"응? 무슨 얘기?"

"우리가 이사를 가야 할 것 같아."

"이사? 싫은데... 어디로?"

"덴마크. 다른 나라야."

시아가 대답도 못하고 눈물이 그렁 그렁하다.


시아의 눈에 가득히 맺힌 눈물을 보니 우리의 속 없는 벅찬 마음이 미안하기만 하다.

"나는 여기 친구도 있고, 학교도 좋고, 집도 좋은데. 그럼 체조는? 체조는 못해?"

"체조... 거기 가서도 체조할 수 있어. 가서 좋은 체조 학원 찾아보자."

"아니야. 싫어. 나는 여기서 할 거야. 이제 더 어려운 반 할 수 있다고 했잖아. 나 그거 하고 싶어. 정말 하고 싶어. 그럼 나는 3학년 못가? 내 친구들은 다 같이 가는데 나는 같이 못가? 내 자리에는 누가 앉아?"

맺혔던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시아는 올여름부터 체조 선수반 합류 제안을 받았다. 작년 한 해 성적이 좋았고 무엇보다 시아가 체조를 아주 좋아하는 마음이 선생님들께도 전달이 되었다고 했다. 전체 아이들 중에 딱 3명 선수반 합류 자격을 부여받았다. 시아는 너무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워서 매일매일 덤블링 연습을 하고 오래도록 스트레칭을 했다.


시아의 종업식이 딱 일주일 남던 날 황가수가 계약서를 받았다. 이제 정말 모든 게 사실이다. 학교 선생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감사 인사를 하는 편지를 써서 시 아편에 보냈다.

"오늘 엄마가 선생님들께도 우리 이사 간다고 편지 썼어. 시아가 보여드려. 알았지?"

"응...."

일주일 정도 무거운 비밀을 품고 있었던 시아는 오히려 후련하다는 듯이 담담했다.


일주일 동안 많이 얘기했고, 많이 설명했다. 이사를 가면 아빠가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는 일이 없을 거라고, 매일매일 아빠랑 놀고 자전거도 탈 수 있다고, 덴마크는 레고를 만든 나라라서 레고도 아주 많다고, 코펜하겐은 바다도 있고 강도 있고 호수도 있다고, 학교도 아주 재미있을 거라고. 아빠가 일하게 될 극장 사진도 보여주고, 코펜하겐 사진도 보여주었다.


제 방에 장난감을 둘러보며, "이건 누구 주고 가야겠다. 너무 무거워서 못 가지고 가겠지? 이건 좀 큰데 그래도 가지고 갈래." 같은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도 했다.


어쩌면 조금 마음이 편해진 걸까?


편지를 보낸 날 오후에 시아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먼저 나온 다른 반 시아 친구 눈이 빨갛다. 엄마를 보자마자 달려가 엉엉 운다. 시아가 없다고...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들도 모두 놀라 정말 이사 가느냐, 언제 가느냐를 물었다.

친구들은 우는데 시아는 웃으며 나온다. 

"시아 괜찮아?"

"응. 괜찮아."

"시아는 안 울었어?"

"울었지. 그런데 괜찮아. 선생님이 코펜하겐은 아주 먼데 있는 건 아니라고 했어. 친구들한테 한 번씩 시아 보러 놀러 가면 된다고 했어. 나한테도 자주 놀러 오라고 했어. 그렇게 할 수 있지?"

"응, 그럼 자주 놀러 오자. 시아 친구들도 코펜하겐 오라고 해서 같이 놀자."

"응."

시아가 우는 친구들 손도 잡고 어깨도 툭툭 쳐가며 크게 웃는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을 하시는 시아 선생님께서 긴 손 편지를 써주셨다. 

시아가 많이 슬프고 힘들지만, 아빠와 함께 하는 생활을 선택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덴마크에서 잘 적응하고 즐겁게 지내는 시아 소식 꼭 들려 달라고. 어차피 정년 퇴임을 하시니 헤어질 예상은 하셨지만, 시아가 멀리 간다고 생각하니 헤어짐의 아쉬움이 더하다고 하셨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자꾸만 선생님 손을 붙들고, 품에 안기는 시아가 그저 예쁘다고 하셨다. 더 많이 안아주고 싶다고 하셨다. 

집 주소도 알려주시고, 메일 주소도 적어주셨다.


시아는 가끔, 슬픈 생각이 든다고 했다. 새로운 학교에 가면 엄마랑 아빠가 처음엔 같이 있을 수 있냐고, 너무 어려우면 엄마랑 아빠가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가기 전까지는 체조 선수반에 합류하기로 했다. 어린이집부터 함께했던 친구 M과 함께 일주일에 3일 동안 3시간씩 체조를 한다는 생각에 시아는 잘 때도 웃었다.


학년말 파티를 했다. 다 같이 피자를 먹고 아이들은 방학을 앞두고 함께 신나게 노는 행사다.

선생님들도 모두 함께하셨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우리 이사 가는 얘기를 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일을 걱정해 주기도 했고, 환경을 바꾸면 아이도 어른도 성장을 한다며 격려해주기도 했다.

시아와 단짝인 아이들의 엄마들은 이사 가기 전까지 시아가 방학 동안 어떤 활동을 하는지 물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시아는 피자도 맛있게 먹고 친구들과 춤도 추고, 뛰며 밤이 늦도록 놀았다.

이제 방학이긴 했지만 이사 가려면 아직 두 달이나 남았고, 그 두 달 동안 이 작은 동네에서 우리는 수십 번은 더 만날 것이니 작별은 하지 않았다.


아파트 놀이터 할머니들께도 말씀드렸다.

한살이 채 안된 시아를 안아 보셨던 할머니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아쉽고 서운하신데, 시아가 속상할 것을 눈치채시고는 덴마크는 정말 좋은 나라다. 진짜 멋있다고 시아가 참 부럽다고 부러 크게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매일 이사 가는 날짜를 되물으신다.


같은 아파트 단짝 친구인 S는 시아와 하염없이 그네를 탄다. 나도 S의 엄마도 아이들을 재촉하지 않는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부른다. 둘이 하나도 아쉽지 않게 이별하게 해 주고 싶다.


3시간씩 하는 체조 수업이 시작되고, 시아와 절친 M은 운동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수다를 떤다. M의 엄마는 체육관 밖에서 두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다. M에게는 올해가 가기 전에 시아를 만나러 코펜하겐에 가기로 벌써 약속을 했다고 했다.


이제 한 달 반 정도가 지나면 시아는 정든 친구들과 정말 작별을 해야 한다. 시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름 캠프에 다니고 체조를 하고 놀이터에서 논다. 그리고는 생각날 때마다 꼭 가지고 가야 하는 물건들을 제 가방에 챙겨둔다.


시아는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평생을 살았다. 인연을 만들었고, 세상을 배웠다. 그런데 이제 이 곳을 떠나야 한다. 엄마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같이 있을 수 있는 그곳에 가기 위해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한다.


가끔 슬픈 생각이 들고, 짜증이 나는 시아의 마음이 어떤지, 우리는 다 헤아릴 수 없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이별을 받아들이는 시아의 마음을 다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별의 아픔쯤은 다 아는 것처럼 시아의 이별을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서로 헤아릴 수 없는 이별을 견뎌내는 중이지만, 어깨를 꼭 맞대고 이별 위를 함께 걸어가 볼 생각이다.



"엄마, 너무 많이 울지는 마. 우리 힘내자."

가끔 슬픈 생각이 들어 내가 조금 울던 날 시아가 내게 말했다.



여덟 살의 아픔. 아주 많이 미안하고, 네가 대견하고 참 고맙다. 우리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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