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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Aug 13. 2019

아홉 살. 이별을 습득하고 그리움을 익히다.

이태리에서 여름을 보내기로 결정하기 전 나와 황가수는 남모를 걱정을 키웠다.

지난겨울 이태리를 떠나오면서 많이, 아주 많이 울었던 시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아가 마주하게 될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찬 기쁨과 커다란 슬픔 가운데서 머뭇거렸다.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


그리움이 모두 식어 버리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덴마크에 마음을 주고, 덴마크에도 환호하게 될 때쯤 이태리에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세상은 넓으니 가보지 못한 곳에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새로운 곳에 마음을 주고 궁금증을 키우다 보면 이태리에 대한 사랑도 조금 건조하고 담백해지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눈물이 식어, 웃으며 떠나올 수 있지 않을까?...


"웃으며 이별. 나도 못하는데... 나중이라고 시아가 할 수 있을까? 시아가 우는 걸 보는 우리가 걱정이 돼서 주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울면서 이별해야 하지만, 시아는 많이 행복하기도 할 거야."


이태리에 가는 비행기표를 샀던 날 저녁부터 시아는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도록 힘을 다해 살았다. 일찍부터 여행용 가방을 내려놓고, 가방을 챙기고, 이태리에서 만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고, 손편지를 썼다.

행여 친구들의 휴가 일정과 겹쳐 만나지 못할까 봐, 빨리 연락해 약속을 잡아달라고 성화를 했다.


아직 우리를 반겨주고 기다려 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신세 질 거라고 뻔뻔하게 공포를 하고, 이태리 바다가 그동안 잘 있었는지 구경하러 갈 준비를 하고 비행기를 탔다.


목소리에 흥분이 가득 차고, 발걸음이 가벼워 날아가 버릴 것처럼 소란스러운 시아는 비행기 창문에 얼굴을 대고 구름 아래 세상을 고대했다. 


30도가 채 안 되는 나라에서 40도가 넘는 나라로 왔지만 시아는 기꺼이 땀을 흘렸다.

겨울에 만났던 M, S네 집에서 하룻밤씩 자고 오기로 약속을 했다.


M을 만나러 가는 길에 우리가 살던 집을 지났다. 시아가 멈추어 서서 오래오래 집을 바라봤다.

"아직 똑 같이 생겼구나. 이제는 누가 살고 있을까?"


M과 시아는 겨울과 봄 사이에 조금씩 더 자란 서로를 쑥스럽게 확인하고, 이내 꼭 안았다.

계속 체조를 하고 있는 M은 시아도 새 학기부터는 체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에 뛸 듯이 기뻐했고, 열심히 연습해서 어디든 대회에서, 선수 캠프에서 만나면 너무 좋겠다고 금방 꿈을 키웠다.

M의 엄마 아빠도 시아가 체조 경기를 하러 이태리에 온다면 어디가 되었든 찾아가 응원을 하겠다고 약속을 해주었다.

이태리까지 와서 경기를 할만한... 그러나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고 정겨웠으니 고맙다고 맞장구를 쳤다.


시아는 M의 손을 잡고, M의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다음날 한낮에 데리러 가 만난 시아는 밤새고 놀아본 사람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깊이 있는 다크서클을 획득하고, 아기 너구리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기 너구리 둘이는 꼭 안고 인사를 나누며 자주 전화하자, 겨울에 또 만나자, 다음에는 같이 체육관에서 체조를 하자고 약속을 했다.

"다음에 나 체조하는 동영상도 찍어서 M 한테 보내주자.  M도 나한테 다 보내준다고 했어. M이 다른 친구들 체조하는 것도 보내준대. 빨리 M이 개학해서 체조하면 좋겠다. 그럼 다른 친구들 얼굴도 다 볼 수 있잖아."



M을 만났을 때는 이태리어가 조금 어색해 바로 입을 떼지 못했던 시아는 S를 만났을 때는 작년 이맘때의 시아를 되찾아 이태리어로 크고 떠들썩하게 인사를 하고, 덴마크가 아직은 별로인데, 왜 그런지, 이태리에 와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를 술술 술술 풀어냈다.

시아는 S의 손을 잡고 S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한낮에 데리러 가 만난 시아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S와 꼭 끌어안고 인사를 했다. 

조금 눈물이 고이긴 했지만, 이내 손을 크게 흔들며 돌아섰다.

뭐하고 놀았는지, 무슨 얘기 했는지 묻는 우리에게 너무 얘기를 많이 해서 얘기할 힘이 없다고 대답을 거부하고 이따금 지금은 S만 살고 있는, 우리가 살던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았다.


이태리에 있는 동안 S와 M과 통화를 몇 번 더하며 매일 만나는 아이들처럼 시시한 대화를 나누었다. 

"시아야, 통화하면서 무슨 얘기해?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어렸을 때, 6살 때, 4살 때 뭐 그런 얘기했어. S가 그러는데, S는 4살 때 P를 좋아했대. 나는 정말 몰랐는데. P는 볼이 아주 통통해서 귀엽긴 했어. 그런데, 지금 P는 A를 좋아한대. 웃기지 않아? M은 내가 어렸을 때 머리에 흙뿌리고, 지렁이 만진 걸 기억하더라. 하하하, 엄마가 괜찮다고만 하면 나는 지금도 머리에 흙뿌리고 놀고 싶은데, 안 되겠지? 어렸을 때가 재밌는 일이 많았던 것 같아.:


친척보다 더 친척 같은 언니, 동생들도 만났다.

같이 자고, 같이 먹고, 웃고, 싸우면서, 헤어져 지낸 시간을 지웠다.

어른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누구누구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하는 아이들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동안 많이 자랐구나 감상에 젖기도 했다.

비슷한 음식을 좋아하고, 비슷한 놀이를 좋아하고, 비슷한 농담을 하고, 비슷한 노래에 비슷한 춤을 춘다. 


시아는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서 한 없이 편안하고 자유롭고 홀가분해 보였다.

손톱, 머리칼 끝까지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물안의 물고기 같은 시아를 다시 뭍으로 데려가야 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걱정했고 불안했다. 


이태리를 떠나는 날.

"이제 G랑, J 언니랑 인사해야지." 하는데

"나는 안 할래." 하고 시아가 돌아선다.


나도 G도 J언니도, 이모도 삼촌도 그 마음을 다 알 것 같아서, 그만 모두 조금 울었다.

시아는 먼저 저만큼 가서 차 앞에 섰다.

차에 앉고 나서야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차가 출발하고, 그리운 사람들이 멀어지고 나서 시아는 조금 울었다.

"울어도 괜찮은데, 아까 인사하지 그랬어?"

"응... 그러면 많이 울까 봐... 많이 울면 많이 슬퍼. 혼자 빨리 울고, 빨리 슬픈 게 좋은 것 같아. 많이 슬프게 돌아가면 집에 가서도 많이 슬퍼. 그럼... 나는 슬픈 게 안 좋으니까..."


이별에 이별을 거듭하면서 시아는 이별을 습득한다.

이별을 대하는 요령을 배운다.


시원한 덴마크 한여름 공기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여기가 집이구나. 집이네. 집이니까 좋긴 좋다. 이제 또 다른 데를 간다고 하면, 여기 있는 L, S, A가 보고 싶겠지. 그래도 아직은 이태리 친구들이 더 더 더 많이 보고 싶어. 나는 이태리에서 훨씬 더 오래 살았으니까. 나는 다음에 커서 이태리에 갈 건데, 그때 L, S, A 다 같이 가면 좋겠다. 오늘은, 이태리 생각이 많이 나겠네. S한테 전화해볼래. 그럼 기분이 좋아질 거야."


아홉 살 사랑도 알고 이별도 알고 그리움도 안다.

네 눈물을 보는 일이 없기만을 바라고 종종거리는 동안, 너는 의젓하게 울 줄 아는 사람이 되었구나.

너를 이별하게 하고, 그리워하게 하고, 힘들게 했던 게 미안하기만 했던 엄마 아빠도 이제 조금 가벼워져도 되겠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 의젓하게 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걸까?

아홉살 모르게 살금살금 뒤를 따라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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