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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un 23. 2018

Oratorio, 이탈리아 성당 여름 학교


이태리는 유럽 최장기간 여름 방학을 자랑한다. 어쩜 전 세계 최장기간 일지도 모르겠다.

3개월.

해마다 매번 새롭게 놀란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닐 때는 그래도 6,7월 두달간은 시설 자체 여름 캠프가 있어서 이어 다녔는데, 초등학교는 사정이 다르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여름 학교는 없고, 동네 성당, 시, 사설 단체에서 주최하는 여름 학교에 등록해야 한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일주일에 2만 원 정도부터 10만 원이 훨씬 웃도는 시설도 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참석하는 여름학교는 동네 성당에서 주최하는 여름학교다.

비용이 가장 저렴한 성당 여름 학교는 보통 6월 한 달 동안 운영된다. 대부분 아이들은 6월에는 성당 여름학교, 7월에는 사설 여름 학교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댁, 8월에는 부모와 휴가라는 일정으로 3개월을 보낸다.

초등학교 첫 번째 방학을 맞았던 작년에는 성당 여름 학에 보내지 않았다.

초등학교 초년생인 우리는 동네 엄마들에게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내는게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상당수 엄마들이 성당 여름학교는 큰 아이들이 많고, 전문 선생님 대신 자원봉사를 하는 고등학생들과 몇몇 동네 어른들이 지도를 하시기 때문에 너무 어린아이들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성당 여름학교는 언니 오빠가 있어 함께 갈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닌 경우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조금 이르다고 들 했다. 그러한 이유로 시아 친구들도 성당 여름학교에 참석을 안 하니, 우리도 자연스럽게 사설 시설을 찾아 등록했다.

이태리 엄마들이 여름만 되면 농담반 진담반 '여름 학교 보내느라 은행 융자라도 받아야 하나' 하는 말에 절대 공감을 경험했다.

사설은 사설이니, 선생님들의 지도도 꼼꼼했고,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즐거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부담은 우리가 지는 것이고, 시아는 스포츠 캠프, 영어 캠프, 아트 캠프를 몇 주씩 참석하며 몹시 만족스러워했다.

시아가 만족하니 우리도 좋았지만, 2학년이 되면, 6월에는 성당 캠프를 보내고 싶다는 강한 소망을 키웠던 것도 사실이다.


1학년 때는 성당 여름학교 가면 큰일 난다던 엄마들도 2학년이 되니 태교 때부터 성당 여름학교를 계획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여름 학교 참석을 얘기했다. 시아 단짝 친구들도 성당 여름학교에 등록 한다고 했다.

친구들이랑 같이 놀 수 있다는 기대에 시아도 한마디로 성당 여름학교를 지지했다.


성당 여름학교.

제일 저렴해서 제일 참석률이 높다는 것 외에는 사실 아는 게 없었다.

학기중에 시아가 친구들이 모두 Oraotrio에 가서 논다고 해서 몇 번 갔었다. 동네 성당에서 운영하는 운동장과 놀이터, 교육관 건물이 함께 있는 공간이다. 성당을 다니는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교리 문답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고, 동네 축제가 있을 때 바베큐 파티를 하거나 오픈 마켓 장소를 제공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성당 여름학교에서는 과연 무엇을 하는 걸까?

성당 여름 학교는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는 학교이다.

성당을 다니는 신도들을 중심으로 구성되긴 하지만 신앙이나 종교는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한다.

아이들 등굣길에 도로 안전 요원을 해 주시는 어르신들께서 총출동하시고, 동네 중학교 고학년, 고등학생들 상당수가 봉사로 지원하다. 어르신들은 아이들의 안전을 관리하시고 중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은 프로그램을 담당한다.

엄마들도 봉사를 하는데, 엄마들은 보통 사무실에서 행정 업무를 본다.

엄청난 양의 식사 준비를 위해 봉사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아이들을 위해 성당이 나서고 동네 어른들과 청년들이 앞장을 서는 것이다.

떠날 이태리가 애절하게 매력적인 경험이다.


방학 시작하고 첫 월요일. 길에서 만난 아이들은 모두 여름학교 단체 티셔츠를 입고 있다. 모두 같은 곳을 향한다. 알록달록한 단체 티를 입은 큰 아이들도 같은 곳을 향한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학생들인 모양이다.

문 앞에는 학교 앞 길 건널 때 차 세워 주시던 할아버지들이 서 계시고, 오다 가다 자주 만난 엄마들이 사무실에 앉아있다.

일찍 도착한 시아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시아를 반겨주었다.

시아는 금세 무수한 하얀 단체 티셔츠 사이로 사라졌다.

정말 아이들이 많다.

괜찮겠지?

아침에 데려다주고 퇴근하면서 다시 만난 시아는 땀 범벅이 되어, 더 이상 하얗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하루 만에 얼굴이 까맣게 탔다

"시아야, 어땠어?"

"진짜 재밌어! 정말 재밌다. 새 친구 진짜 많이 사귀었어. M. N. A. T. C...."

"그래? 처음 만나는 친구들이야?"

"아니, 학교에서 본 친구들인데, 같이 놀아본 건 처음이야. N은 몇 살인 줄 알아? 10살이고, T는 11살이다."

"아, 그럼 언니구나."

"응, 언니들이야. 그런데 이탈리아 말로는 다 Amica 친구지."

"응, 그러네. 언니들이랑 뭐 했어?"

"언니들이 안아주고, 운동도 같이 하고, 더울 때는 같이 물 뿌리면서 놀고 그랬지."

"선생님들은 어때?"

"선생님 아니야. Animatori야."

"Animatori… 엔터테이너 번역이 될 텐데, 우리나라라면 역시 선생님이라고 불렀을 것 같다.) 그렇구나."

"다 큰언니 오빠들인데, 재밌게 해줘. 우리랑 같이 뛰어다니고, 노래 나오면 춤도 추고 그래. 축구도 하고, 피구도 하고, 쉬는 시간에는 나는 M이랑 R이랑 체조하고."


하나도 싫은 게 없다고 한다. 아주아주 즐거운 하루였다고 했다.

다행이고 감사하다.

어떤 날은 데리러 가면 스프링클러를 틀어 놓고 뛰어놀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어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엉덩이며 다리에 흙을 잔뜩 묻히고 있기도 하다. 초등학교 2학년, 만 8살, 우리 나이로는 9살. 나는 그때 저렇게 치열하고 정성스럽게 놀아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흙이 잔뜩 묻고, 물이 뚝뚝 떨어지고, 묶은 머리가 아무렇게나 풀어져 있는 새카만 시아는 온 힘을 다해 놀아 후회도 미련도 없이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있다.

뜨거운 태양 보다 더 정열적으로 하루를 살아낸 아이들의 얼굴이 눈부시다.


여름학교에는 아이들이 용돈으로 직접 군것질거리를 사 먹을 수 있는 BAR가 있다. (커피와 음료, 주류를 판매하는 곳을 이태리에서는 BAR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의 BAR의 주인공은 단연 커피. 아침에는 브리오쉬와 커피로 BAR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학교가 끝나는 오후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 먹이고, 저녁시간에는 간단한 에피타이저를 즐기기 위해 찾는 곳이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줄을 서서 간식을 사 먹는다고 한다.

시아도 아침마다 저금통을 열어 동전을 꺼내 지갑에 담는다.

"내 돈으로 뭐 사 먹는 거 너무 재밌어."

"오늘은 아이스크림 한 개랑 사탕 한 개 사 먹을래. 괜찮아?"

친구들이랑 다른 맛 간식을 사서 바꾸어 먹기도 하고, 시원한 음료수 한 캔을 사서 나누어 마시기도 한다고 한다.

아직 혼자 경제 활동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시아에게 소비를 하고, 남은 돈을 세어 보고, 내일 사 먹을 간식비를 미리 계산하는 일은 무척이나 대단하고 멋있는 일이다.


저금통의 동전을 다 쓰고 지폐를 꺼낼까 말까 고심하는 모습에 몹시 인자한 엄마 얼굴을 하고 동전을 건넸다.

"아, 좋아. 그럼 내 돈은 안 써도 되겠다. 엄마가 더 주면 어때? 내 돈은 안 쓰게."

"왜? 시에 돈은 안 쓰고 뭐 하게?"

"그냥, 나중에 쓰게. 그런데 집은 얼마야?"

"응? 집? 집은 왜?"

"돈을 가지고 있다가 더 많아지면 큰 집을 사고 싶은데. 그래서 집이 없는 사람을 살게 해주고 싶어. 엄청."

이런 소원을 가졌다면, 내 주머니에 동전을 담아 둘 도리가 없다.

홀린 것 같기도 하고 당한 것 같기도 하다.


아침에는 신부님이 오셔서 같이 기도를 하기도 하고 오전 시간에는 성당 찬양을 같이 부른다고 한다.

성호 그을 줄 모르는 시아는 친구들을 보고 따라 했다고 한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와 성당이 조금 다르고, 목사님과 신부님도 조금 다른게 신기하다고 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른 모양의 기독교를 만나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우리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지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깨끗이 담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억지스럽지 않게 교회 밖과 교회를 섞어내는 가톨릭의 부럽기만 한 장점도 몸으로 기억하기를 바란다.



시아에게 마지막이 될 수 있을 이탈리아에서의 여름 방학에 성당 여름 학교를 경험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영영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1학년 때 시아를 성당 여름 학교에 보냈다면 위험했을까? 그것 역시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모를 뿐이다. 그때는 그렇게, 지금은 이렇게 길고 더운 방학을 열정적으로 살아 낼 수 있으니 언제나 최선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최선을 향하는 나도 이 여름 시아를 잘 보고 뜨겁게 따라 살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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