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고 불편한 15년 이웃. 이탈리아. 안녕.

by SyaMya

종학 파티.

이태리에서는 학년이 끝나고 긴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같은 반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어가며 신나게 논다. 다들 종학 파티의 피로감을 호소하면서도 안하고 지나가는 일도 없고, 빠지는 일도 없다.

작년 종학 파티 때 장소와 메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엄마들 사이에 불꽃 튀는 설전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엄마들과 나름 잘 지냈고, 웃으며 짧은 수다를 떨기도 했으나, 앞으로 있을 종학 파티는 어찌하든 피해보겠노라 다짐했다.

6월 종학을 앞두고 4월부터 종학 파티 준비가 뜨거웠지만 나는 두 걸음쯤 물러서서 그저 지켜보았다.

올 해는 담임 선생님 두 분모두 정년 퇴임을 앞두고 계시기 때문에 특별히 선생님들도 파티에 초대한다고 했다.

학부형들은 지난 2년 동안 아이들을 살뜰하게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께 선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드리기로 마음을 모았다. 선생님들께 어느 정도 비용의 어떤 선물을 드릴지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좋아진 세상에서 이런 문제는 WhatsApp 상에서 논의된다.


아이들의 손편지, 아이들의 사진, 선생님의 이니셜이 새겨진 액세서리, 마사지 패키지, 상품권, 인테리어 소품.... 세상에 좋은 건 다 한 번씩 이름이 오르고, 좋다고 하는 엄마, 싫다고 하는 엄마들의 의견도 오르고, 거기다 아빠들의 의견까지 더해져 선물 선택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날 밤이 새도록 징.. 징.. 진동음이 울렸고, 결국 알림을 꺼버릴 수밖에 없을 만큼 토론이 진지했다.


알림을 꺼 놓고 한참만에 열어보니 수백 개의 문자 아래 상품권과 꽃다발 쪽으로 의견이 모였고 마지막으로 찬반을 확인하는 공지가 있다.

바로 엄지 척과 함께 찬성의 메시지를 보냈다.

가만히 뒷짐 지고 있던 외국인 엄마는 모두 피 흘리고 난 전쟁터에서 이긴 편 손을 같이 들어주는 얍삽하고 비겁한 노선을 타기에 거침이 없다. 사실 이런 일에 꼭 상품권이어야 하거나, 액세서리여야 한다는 '자기주장' 같은 건 나에게 없다.

마음을 표시하는 일이니, 모두 함께 마음을 모으는 게 중요하니 그냥, 다수가 결정하는 대로 따르는 것. 나는 그 정도로 참여해가며 외국인 엄마를 해왔다.

내 의견이라는 걸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고 중간쯤 섰다가 눈치 보고 그냥 따라가는 것.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 그게 내가 이방인으로서 단체 생활을 하며 쌓아온 나름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물 선택을 앞둔 일련의 날 선 토론을 지켜보며 속으로 선생님들과 마지막 인사는 학교에서 공손히 하는 것으로 하고, 올해 종학 파티는 가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굳혔었다. 다행히 파티하기로 정한 날이 아이가 체조하는 날과 겹쳐 엄마들에게는 아이가 피곤하다고 핑계 대고, 아이에게도 체조 끝나고 파티를 가는 건 무리일 것이라고 설득을 해서 주장이 강한 엄마들 여럿과 주장을 갖는 것도 귀찮은 나의 만남을 피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태리를 떠난단다.

아이에게는 마지막 학기이고, 이태리 친구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종학 파티가 될 거란다.

내 비록 자기주장은 없으나, 경우는 좀 있는 편이고, 모성도 좀 있는 편이니, 인사도 하고, 아이에게 행복한 이별의 기억을 남겨주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체조 끝나고 가면 피곤하다고 했잖아?"

"응, 피곤해도 우리 이사 가고 선생님도 이제 은퇴하시니까 가서 인사하고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면 좋을 것 같아서."

"응, 그럼 내가 피곤해도 좀 참아야겠네."

체조하고 와서 피곤한 적이 없는 아이는 엄마의 거짓 설득에 넘어가 당연히 그날만은 피곤해져야 하는 줄 알게 된 모양이다.


선생님들 선물도 정해졌고, 파티 장소도 정해졌으니 이제 더 이상의 안건은 없을 것 같았다.

WhatsApp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파티 이틀 전, 대표 엄마의 급한 문자가 도착했다.

담임 선생님 두 분께서 보조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을 함께 초대하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선생님들께서는 2년을 함께 수고하신 다른 선생님들을 두고 파티 참석하시는 게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선생님들께 미리 말씀은 안 드렸지만 퇴임을 앞두신 담임 선생님 두 분 식사는 모인 학부형들이 함께 부담하기로 되어 있었다.

대표 엄마는 다른 두 분 선생님의 참석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오실 경우 그분들 식사 비용도 함께 부담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무척 당연한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만 하고 있는 사이 몇몇 엄마의 찬성 문자가 들어왔다.


그런데.

"왜 우리가 선생님 식사를 대접해야 하지? 두 분 선생님은 퇴임을 앞두고 계시니까 한 번은 해드린다고 하지만, 다른 두 선생님은 같은 경우가 아니지. 난 반대야.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고 생각해."

이 문자 이후, WhatsApp 단체방은 휴대폰이 뜨끈뜨끈 해질 만큼 가열되었다.


원칙적으로 선생님 식사를 대접할 이유가 없다. 내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우에 대접을 한다. 다수가 원한다고 따를 수는 없다.

두 분은 대접하고 두 분은 대접하지 않는 건 보기 좋지 않다.

얼마 되지 않는 비용 때문에 난처한 상황을 만들지 말자. 대접받으시는 두 분 마저 어색하실 것이다. 개인적으로 대접을 하는 것이 아니니 만큼 행사의 취지에 맞게 다수의 의견을 따르자.


등등의 얘기들이 오가다 감정이 상한 엄마들은 손가락으로 의견을 내는 것으로는 의미 전달의 어려움을 느낀 나머지 다소 격양된 목소리가 담긴 음성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자정이 넘었고 나는 그만 누워버렸다.



다음날 아침에 확인해 보니 참석하시는 모든 선생님들 식사 비용을 나누어 지불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있었다. 몇몇 아빠들이 1년의 수고 끝에 즐겁게 뛰어 놀 아이들을 생각해 기분 풀고 즐겁게 모이자고 화해를 유도하는 메시지, 마음을 풀어보려는 어설픈 농담이 담긴 메시지를 올려 두기도 했다.

나는 이번에도 결론에 짧게 찬성 의견을 냈을 뿐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종학 파티가 열렸다.

가장 많은 메시지를 남긴 엄마는 결국 참석하지 않았다.

그 엄마를 빼고 다른 엄마들도 마음이 다 같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어제의 전투는 이미 잊은 듯 엄마들은 모두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 볼 수 없는 우아한 자태로 환하게 웃으며 쪽쪽 서로의 양볼에 입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나도 같이 인사를 했다.

아이들은 밤이 늦도록 식당 앞 잔디에서 뛰어놀았다.

엄마 아빠들은 선생님들과 또 서로서로 담소를 나누며 전에 없이 화목하고 유쾌했다.

여러 가지로 큰 의미가 있는 저녁이었으니 우리도 즐겼다.

이사를 앞둔 우리를 격려하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엄마들과 얘기를 하면서 가끔씩 코끝이 찡하기도 했다.

선생님과 기념 촬영까지 마치고 기분 좋은 아이와 기분 좋게 밤길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고. 그 날 일을 다시 떠올렸다.

치열했던 공방의 기억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훅 더운기가 느껴졌다.

스스로의 의견을 스스로 눌러버리는 일 같은 건 절대 없는 이태리 사람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태리 사람들은 정말 정말 주장이 강한 사람들인 것 같다.

15년을 그 사람들 속에 혹은 곁에 살면서 그 사람들의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 불편하기도 했다.

불편했던 건 아무래도 불필요한 소모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도 아니고, 개인의 안녕을 위협하는 일도 아닌데, 사사건건 주장들을 펼치느라 간단히 결정할 일들도 먼 길을 돌아가는 것 같았다.

주장들을 펼치다 보면, 감정이 격양되기도 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의 주장을 비난하기도 하며 감정을 모두 쏟아 버리는 태도가 다소 과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별 거 아닌 일에도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밝히는 자신감이 늘 부럽기도 했다.

사소한 모든 일들 마저도 중요하고 대단하게 여기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부러웠다.

감정을 쏟아 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만나 쪽쪽 입을 맞추는 뻔뻔한 당당함이 부러웠다.


부럽고 불편해하느라 15년 동안 나는 이 사람들을 닮지 못했다.

이제 겨울이 긴 나 라에 가면 이 부럽고 불편한 사람들을 분명 그리워할 것이다. 종학 파티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훅 더운기를 느끼며 향수를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닮지 못했지만 아이에게는 잔뜩 담겨있는 이 불편하고 부러운 사람들이 그 그곳에 가서도 여전하길 바란다. 여기서는 미처 닮지 못한 사람들을 아이를 보며 추억하고 다시 배워 언젠가 나에게서도 사소한 일에 감정을 쏟는 지중해 사람들의 열정이 비친다면.

하나도 나쁠 것 같지 않다.


밤이 긴 나라의 사람들은 어떨까?

여덟살의 손을 잡고 우리는 우리에게도 낯선 세상을 찾아 나선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키가 큰 사람들의 나라에서의 우리를 꿈꾸듯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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