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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Nov 06. 2019

아토피 아기, 갸루 엄마를 바꾸다

아토피 아기를 키우며 달라진 삶

아이를 낳고나서 새롭게 알게된 세상과 기분좋은 변화에 대해 기록하고 소회를 적습니다.




갸루화장 매니아가,

화장을 벗겨낸 계기는




“아토피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단어가 의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타고난 까만 피부는 유년시절 내내 콤플렉스였지만 대신 피부는 단단했다. 한번도 피부질환을 앓아본적이 없었는데 아기가 아토피라니. 상기된 얼굴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흥분한 내 목소리와 달리 남편은 담담했다. '음'하고 5초 정도 침묵하던 남편은 과거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어릴 때 아토피였어. 엄마가 말로는 어릴때 얼굴이든 몸이든 피부가 매끈했던 적이 별로 없대. 걱정하지마, 내 피부 지금 좋잖아. 우리 아이도 괜찮을 거야.


갑자기 깊은 배신감이 느껴졌다. 의사 말에 의하면 아토피는 유전적 영향도 꽤 크다고 했다. 그는 왜 결혼 전에 말하지 않았을까. 마치 사기결혼을 당한 기분이었다. 전화를 끊고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금 남편을 비난하는게 맞는 것일까. 파도를 타던 감정은 곧 잠잠해졌다. '그래, 난 그의 피부를 보고 결혼한게 아니잖아.'


아토피를 견디는 시간은 고통스럽고 길었다. 의사는 아이 피부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거침없이 발랐다. 스테로이드에 대해 잘 몰랐다. 평생 발라본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으니. 병원에서 처방받은 '리도맥스'연고를 테이블에 올려둔 채 검색창에 ‘스테로이드’를 치다가 하루를 보냈다. 검색을 하면 할수록 무시무시한 단어와 사진이 시야를 가렸다.


< Blur 한번 한 상태.... 엄마는 매일매일 눈물 >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이의 몸통에는 울긋불긋 습진이 올라왔다. 습진은 모기물린 자국처럼 타원형에 겉이 아주 딱딱했다. '아기피부같다'고 할때 그 아기피부는 우리 아이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주변 아이들은 어찌 다들 그렇게 피부가 튼튼한지,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의 SNS를 보는 것도 괴로웠다.


몸을 긁는 아이 손에 손싸개를 채우고 화장대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 넓게 펼쳐져 있는 화장품들. 20대부터 까만 피부를 가리기 위해 프라이머, 메이크업 베이스, 파운데이션 등 모든 단계의 피부 화장품을 쓰고 있었다. 치울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미 머리보다 손이 먼저 이 화장품을 치우고 있었다.   


화장품을 치우면서 한켠에 세워져있던 PONY 메이크업북이 보였다. 그녀는 유명 뷰티 인플루언서다. PONY가 싸이월드 블로그에 소소하게 메이크업 스킬을 연재를 할 때부터 열혈팬이었다. PONY메이크업 책이 출간되었을 때 컨셉별로 다 따라하면서 기분 전환을 하곤했다. 이젠 그것도 못하게 되었다.         


< 포니 메이크업의 포니. 싸이시절부터 왕팬>


PONY책까지 처분을 하고 나니 화장대에 아무것도 없었다. 로션, 선크림만 덩그러니 외롭게 서있었다. 아이가 아토피 진단을 받은 이후 한동안 화장을 안했다. 피부에 바른 화학적 성분이 아이에게 영향을 끼칠까봐 로션도 천연성분으로 된 것만 사용했다.

     

화장을 안하면서 혹시 피부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했다. 슬프게도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잘 보지 못했던 피부의 세세한 부분이 보였다. 모공은 여기서 숨을 쉬는구나, 피부 결은 원래 이렇게 되어있구나, 화장할 때 가리기 급급했던 곳을 눈으로 마주하게 됐다.      


결이 점점 거칠어지는 것 같아 천연소재로 피부를 관리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 반찬을 하고 남은 계란과 흑설탕으로 각질제거를 하고 수박껍질을 갈아서 팩을 했다. 점점 피부가 숨을 쉬는 게 느껴졌다. 로션만 바르고도 외출을 할수 있을 것 같았다.        


< 돌즈음 리도맥스 없이 점점 좋아지는 피부 >


아이가 돌이 되자 곳곳에 습진투성이던 피부가 매끈해졌다. 아이의 피부만 좋아진게 아니었다. 돌잔치를 치르면서 나도  오랜만에 화장을 했다. 축하해주러 찾아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내 피부를 칭찬했다.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은 확실히 예전과 달랐다.


“비법이 뭐야?”

답례떡을 받아들고 나가는 지인이 물었다. 화장을 1년만 안 해보라고 추천했더니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며 눈을 흘겼다. 하긴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아이가 아토피가 아니었다면 이런 경험을 할수 없었을 거다.      


모든 손님들이 떠나고 식당 테라스에 앉았다. 잔잔히 불던 바람이 갑자기 찰싹이며 내 몸을 휘감았다. 찬바람에 콜록, 하고 묵혀진 숨이 터져나가고 청량한 바람이 몸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왔다. 바람은 구석구석을 헤집다가 피부 바깥쪽으로 퍼저나갔다.

 

비로소 숨을 쉬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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