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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Nov 12. 2019

아이가 사라졌다, 아빠에게로

이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아이를 낳고나서 새롭게 알게된 세상과 기분좋은 변화에 대해 기록하고 소회를 적습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게,

아이를 낳고 나서야 기억이 났다. 



아이가 눈앞에 없다.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찐득한 물엿에 붙어있는 쌀 튀밥처럼 ‘엄마! 엄마!’를 외치며 매달려있던 녀석이 없다. 아이가 안 보이는데 마음이 평온하다. 사그락, 사그락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아빠와 같이 있다. 동그란 두상과 쳐진 눈매가 똑 닮은 두 사람이 입으로 비행기 소리를 내며 놀고 있다. 두 사람이 있는 모습을 보면 시선이 아빠에게 간다. 풋풋한 연인이었던 저 남자는 이제 꽤 주름살이 두드러지는 아빠가 되어있다.  


남편이 아이를 향해 웃는다. 한 번도 나에게 보여준 적이 없던 ‘아빠미소’를 보여주고 있다. 나에게 그렇게 웃어주지 않아도 그걸 보는 게 좋다. 우리 둘이 만들어낸 세상을 통해 당신이 행복한 것 같아서.


결혼하기 전, 그에게 별로 좋은 여자 친구는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확신을 가지고 다가오는데 나는 그에게 확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변명이지만, 그가 처음 결혼을 말했을 때가 내 나이 28살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결혼에 대한 확신을 갖긴 서툰 나이다.


결과적으론 우린 결혼에 골인했지만, 그에게 표현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아직도 그가 연애시절 쏟아 부어준 사랑을 갚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웃을 때 좋다. 우리가 함께 만든 아이를 통해서 당신이 행복하다면, 그 행복의 절반은 내가 준 셈이니까.



감상에 빠져있는데 눈앞에 아이가 또 사라졌다. 아빠는 이제 지쳤는지 소파에 앉아있다. 내 몸이 묵직해진 게 느껴졌다. 아이는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서 사과를 먹고 있다. ‘사각사각’ 아이가 씹는 사과소리가 내 피부에 닿는다. 손으로 아이를 감싸니 사과 씹는 소리가 더 깊어졌다. 마치 내가 사과를 먹는 것 처럼.


아이가 내 배에 착 달라붙으니 임신했던 시기가 떠올랐다. 이정도 크기는 아니었지만 꽤 묵직한 태아를 품고 다녔던 때가 있었다. 그땐 언제 나올래, 언제 나올 래 했는데 금세 자라서 이렇게 우리 두 사람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난 이 아이를 위해 죽을 수도 있겠어.”


내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보면 그 말이 떠오른다. 나는 그저 연애 때 받은 사랑을 갚아내려고 하는데, 당신은 앞으로 더 큰 사랑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것 같아서. 나만의 착각일수도 있지만 그 말이 왜 ‘나는 당신을 위해서도 죽을 수 있다’로 들렸을까.


그 아이의 절반은 나로 만들어졌으니.


빚만 늘어가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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