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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Nov 14. 2019

수족구, 구기종목 아닌가?

걸리면 발로 채이는 종목


아이를 낳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된 세상과 기분 좋은 변화에 대해 기록하고 소회를 적습니다.





수족구는 물속에서 하는 경기인줄 알았는데,

일주일 내내 격리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무식한 소리지만, 수족구는 농구, 야구 같은 구기종목 중에 하나인 줄 알았다. 아이를 낳은 선배들이 여름만 되면 '수족구 유행이래, 어떡해'라며 불안에 떨길래 마치 베이블레이드(팽이)나 시크릿 쥬쥬(인형)류의 고급 장난감을 칭하는 건 줄 알았다. 한번 빠지면 엄마 아빠 지갑이 털리는 신종 유아 스포츠 게임 같은 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수족구'의 정확한 뜻과 파급력을 알 수 있었다. 여름만 되면 어린이집에서 법정전염병에 대한 안내서가 왔고 맨 상단에 수족구에 대해 쓰여있었다. 수족구(手足口)란 입, 손, 발에 물집이 생기는 급성 바이러스 질환으로 통증이 강하고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수족구의 친척으로 구내염이 있는데, 구내염은 어른들도 자주 걸리는 구강질환이다. 어른도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약해지면 구내염이 걸린다. 어른은 입안에 이물감이 들거나 약간의 통증만 견디면 되지만, 어린아이들은 구내염만 걸려도 고열이 난다. 


염증만으로 고열이 난다는 사실을 모른 초보 엄마는 미열 증상이 있는 아이를 소아과에 데려갔고, 의사 선생님 입에서 '구내염이네요'라는 말이 나왔을 때 갸우뚱했다.

'이 아이가 대체 왜 피곤하지, 내가 피곤한데.'


미열은 곧 고열이 됐다. 39.9도까지. 홈쇼핑에서 왜 4만 원에 팔아도 될 제품을 굳이 39900원에 파는지 이해됐다. 39.9도와 40도는 0.1도 차이지만 심리적 저항감은 천양지차. 아마 아기가 40도를 넘었으면 힘겹게 붙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아버릴 뻔했다.


해열제를 먹이니 겨우 열이 잡혔다. 35.2도까지. 이건 열이 잡힌 게 아니라 저체온증이었다. 고열보다 더 위험하다는 저체온증. 약을 멈추고 아기를 끌어안았다. 다행히 아이는 웃고 있었다. 카멜레온처럼 왔다갔다하는 체온을 제외하고는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내 마음에도 안정이 찾아들었다.


새벽 1시, 아기방에서 자지러지듯 우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뛰어들어 가보니 아기가 생전 처음 보는 자세로 울고 있었다. 엉덩이에 붙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목과 몸은 완전히 C자로 꺾여있었다. 아기를 번쩍 들어 안고 토닥거리는데 그 상태에서도 아기는 발버둥을 쳤다. 나를 때리고 자신의 얼굴도 때렸다. 자길 때리다니, 이건 자책하는 어른들이 하는 행동인데.


"여보!"를 다급하게 부르니 용수철처럼 남편이 뛰어왔다. 남편이 아기를 안자 아기는 울음을 멈췄다. 순간 아이의 숨이 멈춘 줄 알았다. 진정된 줄 알았던 아이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의 멈춤은 더 크게 울기 위한 뒷걸음질이었다. 아이는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울었다. 한 시간 정도 안았다 내려놨다를 반복하니 아기도 울다 지친듯했다. 품에 안고 토닥이니 겨우 다시 잠들었다. 응급실에 갈까 말까를 한 100번 넘게 고민하다가 아침이 찾아왔다.


새벽 사투로 인하여 폐인이 된 몰골로 소아과부터 찾아갔다. 아기를 찬찬히 보던 선생님은 "구내염인데, 수포가 더 생겼네요"라고 아주 드라이하게 말했다. 아니, 제가 새벽에 얼마나 힘들었는데그렇게 편안하게 말씀하시나요!라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의사는 "여기서 호전이 될 수도 있고 악화되면 손과 발에 수포가 올라옵니다."라고 말을 잇더니 아까보다는 조금 더 감정을 실어 말했다.

"수포는 아주 아파요. 하루 종일 칭얼댈 겁니다."

      

의사가 왜 그렇게 드라이하게 말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기의 앞으로의 행동이 예측이 되기 때문. 아기는 결국 수포가 더 올라왔고 엄청나게 아파했다. 아이도 아팠겠지만 나도 아팠다. 마음이 아팠고 맞아서 아팠다. 구내염이, 수족구가 이렇게 무서운 병인지 뼈저리게 체험했다.


선배 엄마 아빠들이 왜 '수족구'라는 단어만 듣고도  TV에서 기괴스럽게 뛰쳐나오는 '사다코'를 본 것 마냥 무서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한번 제대로 걸리면 귀신 들린 듯 마음과 혼이 쏙 빠져나가는 게 바로 수족구니까.



20대에는 '질병' 자체에 공포를 가져본 적이 별로 없었다.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시기이고, 질병이 오더라도 약한 감기 정도로 앓고 지나간다. 아이는 다르다. 우리가 조금 불편함을 느끼는 수준의 구내염, 기침은 아이에게는 고열과 통증이 수반되는 무시무시한 병이 된다. 일반적으로 감기라고 여겼던 것들도 그냥 감기가 아니라 후두염, 기관지염, 폐렴 등으로 분류되는 질병이다.


수족구로 말문을 텄지만, 지금은 폐렴이 유행이다. 우리 아이도 지금 초기 폐렴 증상으로 집에서 요양 중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질병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기사에 뜨면 '좀 심각하구나'느끼는 정도. 아이를 낳고 보니 기사에 뜨지 않아도 이름만 스쳐 들려도 뒷골이 서늘하고 가슴이 떨린다. 작은 바이러스라도 아이에겐 치명적일 수 있으니.


다행히 우리 아이는 나아가고 있다. 질병 치레를 크게 하고 나면 마음이 놓이면서도 우리 아이보다 더 아픈 아이들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 아픈 아이들이 없었으면, 모두들 이 겨울 건강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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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나는 더 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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