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모임 대표 FAQ
결혼준비 할 때 많이 싸웠어?
서늘한 기운이 가고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오니 겨우내 잠잠했던 카톡방도 깨어난다. “선배님, 저 드릴 말씀 있는데...”로 시작하면 둘 중 하나다. 퇴사 아니면 결혼. 긴장된 마음에 카톡을 확인하면 다행히 결혼소식이다. 이번 연락은 2년 전 퇴사한 후배였다. 똑똑하고 성숙하고 예뻤던 후배가 퇴사하는 날 “결혼하면 청첩장 줘야 해.”라고 했는데 그걸 기억하려고 연락 준 고마운 아이.
청첩장 모임날, 4명이 모였다. 주최자인 후배는 그새 여성스러워지고 예뻐졌다. 다들 우리 회사만 나가면 얼굴이 편다고 하던데 정말 인지 피부가 매끄럽고 생기가 돈다. 이직한 회사 이야기를 듣다가 본격적으로 결혼 이야기를 듣는다. 배우자를 만나게 된 계기와 결혼을 결심한 이야기 등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말만 듣고 있으니 하루 종일 시름했던 일들을 다 잊어버렸다.
그러다 참석자 중에 다음 달 결혼 예정인 한 후배가 머뭇거리며 묻는다.
“그런데, 결혼 준비할 때 많이 싸웠어?”
저 질문을 듣자마자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새로운 이야기를 쏟아내는 새 신부. 표정만 보면 가장 혐오하는 상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결혼식 준비하면서부터 하나하나 부딪쳤다는 그녀. 결혼식장과 식순 및 혼수 등등 하나하나 갈등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목소리를 집중해서 듣는데 어느 순간 날 선 목소리가 아득해진다.
“결혼 준비하면 많이 싸운대.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 어떤 사람이랑 결혼하는지가 중요하지 나머지는 다 중요치 않아. 앞으로 준비하면서 결정할 것도 많고 의견 충돌도 있겠지만 그래도 너랑 내가 결혼한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치 말자. 웬만하면 내가 다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소파만 내가 고르게 해 줘.”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결혼을 약속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결혼준비를 할 때 남편이 했던 말이다. 사실 저 말을 들을 때 내 나이는 27살이었고 결혼이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넘겼었다. 그저 손에 들린 건 결혼준비 체크리스트였고 업무를 하나씩 쳐내듯이 하나하나 해소하는 자세로만 임했었다.
보통 커플들이 결혼식 식순이나 신혼집 인테리어 이슈로 많이 부딪친다고 하는데 뭔가 기억이 전혀 없는 걸 보면 내가 하자는 걸 남편이 그대로 따랐거나 남편이 하자는 걸 내가 그대로 따랐을 확률이 높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서 하나 떠올려보면 결혼식은 남편 쪽(서울)에서 하고 피로연(지방에서 결혼식 1,2주 전에 하는 행사)을 하자고 했었는데 그것에 대해 조금 이견이 었었던 것 같긴 하다. 그 조차 일단 다 해치우고 얼른 합쳐서 살자는 생각이 앞질러서 해치워져(?) 버렸지만.
결혼 준비 중 싸운 이야기를 공감하며 나누는 예비신부, 예비신랑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결혼 전 싸운 건 싸운 것도 아니다. 결혼하고 나면 더 큰 놈들이 이빨을 세우고 기다리고 있다. 꼭 안고 있는 두 사람을 물리적으로 떨어트리기 위해 벌크업 된 팔뚝과 날카로운 송곳니로 밀착된 두 사람을 어떻게든 분리시키려는 놈들. 나의 본성에 내가 깜짝 놀라게 되는 사건사고가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는 일이 생긴다. 문장으로만 썼을 뿐인데 마음이 가라앉고 침울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결혼이란 내 인생에 든든한 내 편 하나 확보했다는 자세로 임해야 아닐까.
꼭지를 돌게 하는 상대방이라도 저 사람이 무조건 내 편이라는 것. 청소기를 돌리는 순서도 다르고 치약 짜는 위치도 다르지만 일단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면 한 몸 던져 나를 어떻게든 지키려는 사람이 저 사람이라는 것. 그 믿음으로 가야 하는 게 결혼인 것 같다.
그나저나 쏟아지는 결혼소식에 통장이 텅장이 되고 있다. 청첩장을 받은 사람들 중에 누굴 갈지 누굴 안 갈지 한참 동안 생각하다 보니 내 결혼식에 와준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들도 고르고 골라서 온 게 내 결혼이었을 텐데 그분들께 다시 한번 고마워진다. 결혼식 앨범을 잘 보며 은혜 갚으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