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 석사로 객원연구원이라는 신분으로 일하고 있다. 학교 다닐 적 선배가 직장 상사가 되어 호칭을 조심하게 될 일이 생겼고 이제는 박사학위를 딴 동기가 어디에 정직원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으며 불안해하며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작년에 미국 박사과정에 지원하였지만 합격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재수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나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음이 먹어지지 않아서 ‘대선 이후 새로운 대한민국에서 공부하리라!’ 결심하다 친구인 쑥의 ‘베트남 갈래?’ 제안을 덥석 물었다.
9년 전 대학생일 때 캄보디아와 베트남 호찌민을 여행했으나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또 가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으로 넘어와서인지 호찌민을 ‘잘 정돈된 오토바이의 도시’로 기억했다.
도시계획 석사 졸업 후 공공영역에서 일하다 2016년 초 해외 발령 난 남편을 따라간다는 핑계로 퇴사했다. 회사를 때려치우면 그 날로부터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또 다른 고민의 시작이었다. 이대로 계속 쉬다 보면 영원히 일을 못할 것 같고, 노산으로 접어드는 생물학적 나이를 고려했을 때 섣불리 일을 시작했다가 임신 준비도 못할까 봐 직업전선에 다시 뛰어들지 못했다. 딜레마 같은 이런 고민을 한 지 1년이 넘어가자 조바심만 더해졌다.
그러다가 내 개인적인 상황과는 상관없이 외부에서 ‘조기 대선’이라는 변수가 찾아왔다. ‘일단 나라부터 정상화시키고 보자’는 생각으로 선거운동도 해봤다. 지난 5.9일 올해 제 1 목표인 정권교체를 완수하니 쉬고 싶었다. 휴양지를 가고 싶은데 마냥 바다 보고 드러누워 있을 성격은 못돼, 도시와 휴양지를 다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래서 베트남이 걸려들었다.
베트남의 수도가 호찌민인지, 하노이 인지도 잘 몰랐다. 여행 콘셉트는 ‘널브러져 쉬는 것과 새로운 도시 구경을 다하는 것’으로 잡았다. 우리 둘 다 좀 지쳐있었지만, 직업병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도시로는 호찌민, 휴양지는 나짱’이라는 큰 틀을 결정하고, 교통편을 알아봤다. 호찌민에서 나짱으로 이동하는 방법으로 심야버스, 철도, 저가항공이 있다.
첫째 심야버스는 버스 안에 이 층 침대가 줄지어 있어 약 10시간의 이동 시간 동안 자면서 갈 수 있지만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보니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둘째 기차, 호찌민에서 나짱까지 7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그마저도 지연과 연착이 잦아 버스와 비슷하다고 한다.
결국 버스와 기차는 패스하고 저가항공으로 결정, ‘인천→호찌민→나짱(깜란 공항)→하이퐁(캇비공항)→인천’의 매우 복잡한 노선이 잡혔다.
항공권과 숙소 예약을 끝내니 여행 준비는 거의 끝났다. 호찌민 핫플레이스, 맛집은 여행 가서 당일에 검색해도 늦지 않으니, 호찌민시에 대해서 찾아봤다.
이 도시는 어디가 중심지고, 여기 사람들은 어디 살고 어디서 쇼핑하는지, 요즘 이슈는 뭔지가 궁금하다. (나짱은 휴양 목적이기 때문에 공부는 패스했다.) 인터넷으로 호찌민 도시 관련 정보를 찾아봤는데 뉴스도 별로 없고, 대부분 관광 관련 포스팅들만 즐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호찌민은 아직도 ‘저렴하게 갈 수 있는 동남아 관광지’로 여겨지나 보다.
단편적인 정보 말고 베트남, 호찌민에 대한 공간적·역사적·인구 사회학적으로 지역 이해를 하고 싶었다. 직업병을 발휘해서 ‘베트남 정치, 역사, 커피 생산, 부동산’ 등의 키워드로 논문을 검색했다. 공간적으로는 호찌민 행정구역도를 보고 구(District) 별 특징을 파악해서 어느 지역을 가보면 될지 결정했다.
잠깐 공부했을 뿐이었는데도 우리가 베트남을-또는 호찌민을- 아직도 ‘저렴한 동남아 관광지’ 중 하나일 뿐으로 여기는데 반해, 지정학적·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라는 느낌이 왔다. 아니 우리만 몰랐지 이미 동남아 국제도시의 위상을 갖고 있는지도. 자료를 통해 파악한 베트남-또는 호찌민에 대한 정보와 인상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 식민지로 형성된 제국주의 도시경관을 가진, 불타는 부동산 개발의 도시 호찌민
인구 약 1억 명 중 생산가능 인구가 75%를 차지하는 젊고 활력 있는 나라
동남아의 대표적인 국가이며 중국과 동남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나라
남북으로 긴 국토를 가져 대중교통 발달이 쉽지 않은 곳
2016년 기준 국민 1인당 GDP 2300달러가 ‘잘못 표기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주요 도시의 빠른 성장과 지역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나라. 그래서 아직도 국제개발원조(ODA)를 받는다.
이렇게 준비과정만 봐도 우린 일반적인 관광객은 아니었다. 마치 우리끼리 ‘도시 답사’ 가는 느낌으로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아마도 이때부터 우리들의 여행기가 기획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