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으로 간 건 순전히 도피였다. 적성에 맞지도 않는 과의 전공 수업을 듣고, 조별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보고,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대학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조금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선택한 호텔경영학은 호텔에 취업하는 것 말고는 써먹을 데가 없었다. 호텔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2학년 때 실습을 나간 이후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전공을 바꿀 용기도, 자퇴할 강단도 없어서 꾸역꾸역 다니고 있었다. 매 학기마다 '이번만 참고 다니자'며 버텼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드디어 지긋지긋한 대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해방감이 들었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살면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대학생이라는 보호막, 아직 배우는 중이라는 핑계를 떼고 혼자서 삶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버려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천만 원 가까이 쌓인 학자금 대출도 불안을 키우는 데 큰 몫을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습관적으로 학교의 취업 공고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그러다 괌의 작은 호텔에서 1년간 근무할 인턴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태평양의 작은 섬, 이곳에서라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들었다. 매일매일 여행하듯 행복할 것만 같았다. 호텔 홍보 사진 속 에메랄드빛 바다, 야자수,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행복해 죽겠다는 듯 웃고 있는 모델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부터 호텔 산업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처럼 과장해서 지원서를 작성했다. 인턴 급여가 한국 최저 임금에도 못 미쳤던 탓이었을까, 지원자가 적어서 생각보다 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짐을 꾸렸다. 인턴십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값싼 노동 착취에 불과했지만 그런 건 조금도 상관없었다. 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 괌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가 일했던 니코 호텔은 투몬 베이를 따라 늘어선 수많은 호텔과 리조트 행렬에서 가장 구석에 있었다. 오래된 호텔이지만 모든 객실에서 바다가 보였고, 수영장에 괌에서 가장 긴 워터 슬라이드가 있어서 가족 단위 고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내 업무는 프론트 데스크에서 손님이 오면 체크인, 체크아웃하고 요구사항을 처리해 주는 것이었다. 매일 다른 손님들이 같은 요청, 같은 문의를 했다. 나는 영혼 없이 친절한 말투로 전날에도 그 전날에도 했던 말을 기계처럼 뱉어냈다. 괌에서의 삶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배경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일상에 갇혀 있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랬던 것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지겨워졌다. 이 작은 섬이 너무나 지겨워 견딜 수 없었다. 다시 도망치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손님들도, 어디를 가나 보이는 푸른 바다도, 습한 바람도, 소금기를 머금은 공기도, 365일 뜨거운 날씨마저 싫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도피는 실패했다. 괌이 아닌 다른 어디에 갔어도 아마 실패했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며칠 전, 벨보이 동료 래리가 괌에서 제일 멋진 절벽에 데려다주겠다며 나를 이끌었다. 꼭 가봐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길래 못 이기는 척 따라갔다. 래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10분 정도 달렸을까, 1년간 익숙하게 오갔던 투몬베이를 지나 한 주택가에 도착했다. 래리는 차를 세우고 주택가 뒤 풀숲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러고는 익숙한 듯 풀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으슥한 분위기에 살짝 겁이 났다. 여기서는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제대로 가는 게 맞냐고 묻자, 래리는 일단 따라와 보라며 제멋대로 자란 풀을 헤치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여차하면 필요할 수도 있으니 작은 돌을 하나 주워들었다. 다리에 간질간질 달라붙는 풀을 걷어내며 래리를 따라가다 보니, 사람들이 오가느라 평평하게 다져진 흙길이 나왔다. 그래도 사람의 왕래가 아예 없는 곳은 아닌 듯하여 약간 마음이 놓였다. 주웠던 돌은 멀리 던져 버렸다.
길은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숨이 막 가빠지려 할 때 정상에 다다랐다. 괌에서 제일 유명한 '사랑의 절벽'처럼 웅장한 해안 절벽 같은 건 아니고, 여기저기 깨지고 금이 간 회색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버려진 전망대였을까, 무슨 용도로 만들어진 곳인지는 래리도 모른다고 했다. 어린 친구들의 아지트 정도로 사용되는지 곳곳에 락카로 칠한 낙서가 많았다. 그래도 필리핀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게 마음에 들었다. 볼록하게 휜 수평선을 보면서 '역시 지구는 둥글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의 난간이나 보호장치도 없는 절벽에 래리와 나란히 걸터앉아 동그란 해가 해수면 가까이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찰박거리는 파도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알던 괌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괌에 들어온 것 같았다. 해가 저물어가며 세상을 오렌지빛으로 덮었다. 금이 간 콘크리트 덩어리마저 노랗게 물이 들었다. 래리는 내 표정을 살피며 "어때? '사랑의 절벽'보다 좋지?"라고 물었다. 나는 "'사랑의 절벽'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좋다"고 대답했다. 언젠가 체크아웃하던 손님이 나에게 이렇게 예쁜 바다와 노을을 매일 볼 수 있어서 정말 좋겠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한두 달 정도 지나면 지겨워진다고 대답했는데, 다시 만나게 된다면 "죄송해요. 제가 틀렸네요"라고 사과하고 싶었다.
기억은 미화되고 돌이켜 보면 늘 좋은 것만 남아서 나는 언제나 지나온 날을 그리워했다. 괌에서 제일 멋진 절벽 아래 오렌지빛으로 윤슬이 반짝이던 순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을, 이 지겨운 섬을 매일 그리워할 터였다.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던 순간도,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우던 순간도, 텅 빈 영화관에서 혼자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화를 보던 순간도, 차모로족 동료들과 시시한 농담을 나누던 순간도, 필리피노 매니저와 싸우고 무단결근하던 순간도, 까다로운 손님에게 하루 종일 시달리던 순간까지도. 어제 같던 오늘에도 자그마한 새로움과 즐거움이 있었다. 순간 속에 있을 때는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고 나서야 애틋해 했다. 도피한 일상에서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도피하려던 찰나에야 알았다.
나는 쉽게 권태를 불행이라 여겼다. 아직 오지 않은 어떤 시간만을 기다리며 지루한 현재를 그저 견디며 보냈다. 익숙함 속에 감춰진 다정한 풍경들, 당연하게 여겼던 하루가 조금씩 쌓여 나를 만들었다는 걸 콘크리트 절벽에서 어렴풋이 느꼈다. 한참이 지나 돌이켜 보지 않아도,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순간 알아챌 수 있었다면 조금은 덜 지겨웠을까, 조금은 더 행복했을까. 그랬다면 매일 돌아오는 오늘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어리석은 나는 앞으로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아차릴 것이다. 그 모든 지루함을 그리워하고, 지나간 오늘을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