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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 Aug 26. 2020

4년 전 여름, 북경.

내가 중국어에 매료된 두 달간의 이야기, 그 시작

얼마 전에 방 정리를 하다가 4년 전 여름, 그러니까 대학교 1학년을 막 마친 여름에 다녀온 북경 어학연수 프로그램 단체 사진을 발견했다. 많은 미국 대학들이 하절기 중국어 어학연수 또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예 중국에 새로운 캠퍼스를 설립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의 급부상 이후에는 더욱 많은 학교들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전년도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선배들은 힘들었지만 정말 보람이 있었다며 지원을 적극 장려했다. 나는 워낙 언어를 좋아하기도 하고, 중국어를 꽤 오래 배웠기에 일종의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프로그램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 이미 HSK 5급을 취득한 상태였기 때문에 1학년 때 중급 중국어 수업 두 과목을 들은 상태였다. 따라서 나는 400 레벨, 즉 대학교 4학년 레벨의 반에 배정받았고 그때부터 나의 즐거운(?) 고난이 시작되었다.


북경에 위치한 모 대학의 외국인 학생 기숙사에서 살면서 우리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오전 네 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수업 후에는 각자 자율적으로 시간을 정해 语伴, 즉 언어 파트너들과 만났다. 선생님이 나눠주신 프린트물에서 제시하는 화제에 대해 파트너들과 토의하고, 또 그 내용을 정리해서 제출해야 했다. 언어 파트너들은 우리가 머물렀던 그 대학의 학생들이었는데, 나는 푸젠(福建) 출신의 한 대학교 2학년 여학생과 짝이 되었다. 동갑이라 금방 친해졌고, 근처에 밥도 같이 먹으러 다니고, 카페 탐방도 하는 등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꽤 자주 연락했었는데,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상태다. 그 친구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얘기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정규 수업 이외에도 우리 반은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중국 영화를 한 편씩 보고 그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주 주말에는 북경 근교나 만리장성, 이화원, 시안 병마용갱 등의 명소로 프로그램 전체가 체험학습을 떠났다.


이렇게만 들으면 참으로 다채롭고 유익한 프로그램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동시에 매일 한 단원씩 나가는 살인적인 진도, 그리고 매주 금요일에 보는 필기시험과 구술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매일 오후와 저녁을 반납한 채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도 부족했다.


특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앞두고는 밥조차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어서 인스턴트 우육면이나 학교 매점에서 팔던 기다란 빵(?)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공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 반을 담당하셨던 선생님들은 마치 두 달 동안 중국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겠다는 기세와 일념으로 우리를 열정적으로 가르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감사하다. 내가 지금 중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 중 상당수는 이때 배우고 느낀 것들이다. 




나는 중국의 언어를 배우러 갔는데, 결국 중국에 흠뻑 젖어 돌아온 기분이었다. 집과 좀 더 가까운 북경에서의 두 달은 미국에서의 일 년과는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지금도 이 차이는 여전하다.


힘들었지만, 정말 하루하루가 달랐고, 매일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던 두 달이었다. 중학교 이후로 그렇게 잡념이 없는 상태로 무엇인가에 매진했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 온몸을 내던졌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단순히 중국어가 앞으로 필수라거나 유망하다거나 하는 이유로 중국어를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렇게까지 기꺼이, 즐겁게 공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2020년 8월의 끝자락에서 4년 전 여름, 그 치열했던 두 달을 회상하며 즐거웠던 기억, 당황했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 모두 좋은 추억으로 잘 갈무리하려 한다. 현실에 치여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그때의 느낌과 감상을 하나하나 꺼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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