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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Mar 28. 2016

은밀한 일상

셰임


쾌락이란 정말 이상한 것이거든.

고통이란 의례히 쾌락의 반대로 생각되지만, 그 관계란 정말 애매하단 말이야. 이 두 가지 느낌은 한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법은 없으면서도 그중의 어느 하나를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하나가 따르게 마련이네.

마치 두 몸뚱이에 하나의 머리통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세.

<소크라테스>



우리의 삶은 하나 이상의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를 단순하게 봤을 때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우린 산소, 물 그리고 탄수화물에 중독됐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중독됩니다. 돈과 명성에 중독된 사람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단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고 못 견딘다면, 축하합니다. 활자 중독입니다. 이처럼 그 의미를 조금만 넓혀보면 중독을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심리학적 의미의 중독(addiction)은 그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가 증가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때문에 중독된 상태를 알아채는 것은 그것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없이는 중독된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중독은 그 상태가 주변에 잘 드러납니다. 가령 알코올 중독은 낯빛과 음주 빈도, 손의 떨림 정도만으로도 '아, 이 사람 뭔가 있구나.'라고 눈치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오늘 다루게 될 '성중독'은 중독자 스스로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잘 드러나지 않는, 중독계의 은신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코올, 도박, 약물, 쇼핑, 인터넷 등에 대한 중독은 잘 알려진데 비해 성중독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오늘은 이 녀석을 좀 파헤칠까 합니다. (각오해!)



성중독이란?


보통은 ‘성중독(섹스중독)’에 대해 그저 섹스를 너무 좋아하는 증상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기호로 여길 수도 있는 성적 영역을 굳이 중독으로 구분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중독은 단순히 성행위를 좋아하고 자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심리학에서의 성중독(sexual addict)은 성적 모험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병리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 빈도수보다는 성행위의 목적, 절제 수준, 행위 후의 태도에 따라 중독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가령 성중독자에게 있어 성행위는 그 자체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불안을 해소하려는 목적'이 강합니다. 때문에 자신의 의도보다 광범위하게 자주 성적인 장면에 빠져듭니다. 절제가 어려워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하죠. 또한, 성행위 후에 기분이 좋아지거나 편안해지기보다는 수치심, 우울함, 절망감을 느낍니다. (한국 심리학회, 2014)


성중독은 사회적으로 별 다른 문제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다른 중독과는 구별됩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모범적이고 성공한 개인에게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으며 모험을 추구한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긍정적이고 판타스틱한 의미로 쓰이는 이 단어가 성중독자에게는 다른 역할로 적용됩니다. 점차 더 자극적이고 무분별한 성적 체험을 찾는 것이죠.


오늘도 모험을 떠나보실까.


문제는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은밀한 일상의 양극화에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철저히 억압시킨 감정과 욕구를 오로지 한 가지 통로를 통해서만 표출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성행위는 어떤 것보다 우위일 수 있습니다. 그런 자신의 방식에 대해 좌절을 느낍니다. 좌절감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성행위를 찾게 되는 악순환을 겪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성중독자는 그런 순환고리가 자신의 성욕이 많은 탓이라고만 생각한다는데요. 과연 그럴까요. 영화 <셰임>에 등장하는 '브랜든 설리반(마이클 패스벤더 분)'을 통해 성중독자의 일상과 모험의 세계를 엿보겠습니다.




그 남자의 은밀한 일상


브랜든은 뉴욕의 성공한 엘리트입니다. 항시 정갈한 복장, 점잖은 태도를 유지하는 신사이기도 합니다. 키는 훤칠하고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잠깐 마주친 여성의 눈동자 색을 기억해낼 정도로 남다른 눈썰미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 개인적 일상은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출근 전 샤워실, 회의 후 화장실, 회사 컴퓨터의 직박구리 폴더, 첼시의 핫 플레이스 바, 허드슨 강변의 어두운 골목, 집안의 침실, 개인 노트북.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회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장면으로 들어섭니다.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답게 이중적인 생활을 정교하게 유지합니다.


그는 성중독자일까요. 아니면 그저 욕구가 많은 남자일까요. 우선 앞서 언급했던 성중독자의 주요 특징 '행위의 목적, 절제 수준, 행위 후 태도'의 관점에 따라 그의 일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행위의 목적


브랜든은 중요한 회의가 끝나면 화장실에서 자위행위를 합니다. 문을 닫고 다급하게 의식을 준비하는 모습은 마치 밀린 숙제를 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업무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매춘부를 부릅니다. 한 번은 연애 중인 여성과의 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자, 그녀와 있던 호텔로 매춘부를 부릅니다. 그리고 매우 능숙하게 성관계를 즐깁니다. 아무래도 그가 성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브랜든의 완전무결한 이중생활은 그의 여동생 씨씨와의 동거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그는 점점 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되죠. 그럴수록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아 헤맵니다.



절제 수준


샤워실, 화장실 등, 사면이 막힌 공간은 언제나 그의 성적 공간으로 둔갑합니다. 노트북을 열면 나신의 여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회사 컴퓨터에도 포르노를 가득 채워두었고 옷장을 열면 수십 권의 성인잡지가 쌓여있습니다. 회사 상사가 맘에 둔 여인과 강변의 어두운 골목에서 성관계를 갖습니다. 바에서 처음 본 여성에게 자극적인 추파를 던지다가 그녀의 애인한테 두들겨 맞기도 합니다. 한 번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묘한 시선을 던지는 여인을 따라 내렸습니다. 그녀는 도망쳐버린 후였죠. 대충 훑어봐도 그의 일상에 '규칙'이 있을지언정 '절제'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위 후 태도


영화는 공허한 표정으로 어딘가 응시하는 브랜든을 길게 비추며 시작합니다. 감독인 '스티브 맥퀸'은 브랜든이 성중독자의 일상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공허와 불안, 수치심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그가 성행위로 인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까요.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성관계 도중 서서히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은 고독하고 슬픈 느낌마저 줍니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감정의 깊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능력을 각성시키는 매그니토를 보며 마이클 패스밴더의 표정 연기에 놀랐었는데요. 과연 그의 저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씨씨 그리고 관계의 의미


자신의 정돈된 영역 내에서 딱히 다른 사람을 해코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브랜든의 삶을 문제 삼을 수 있는가, 나름의 방식대로 욕구를 해결하려는 그를 과연 위의 세 가지 단서만으로 중독자라고 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브랜든을 만나거나, 혹 그의 은밀한 성적 집착을 우연히 알게 된다고 해도 그를 성중독이라고 판단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브랜든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관계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는 누구와도 일정 수준 이상의 깊은 관계를 만들지 않습니다. '사회적 침투 이론'에 따르면 개인은 겹겹이 쌓인 내면을 조금씩 상대에게 공유함으로써 친밀함을 생성합니다. 브랜든은 그나마의 일상을 함께하는 직장 동료들에게는 물론, 가족에게도 자신의 내면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덜 드러내는 것 자체를 문제로 보긴 어렵겠지만 브랜든은 성관계를 갖게 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태도가 유지됩니다. 누군가와 성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친밀함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브랜든에겐 그런 과정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수순으로 진행될 때 어려움을 겪곤 하죠.


철저하게 관계를 거부하는 브랜든의 태도는 처절하게 관계에 집착하는 그의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 분)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집으로 씨씨가 찾아와 더부살이를 하는데요. 그 사건을 계기로 브랜든의 일상은 점차 틀어집니다. 직장상사에게 난잡한 포르노로 가득 찬 회사 컴퓨터를 들키거나 여동생에게 자위행위 현장을 발각당합니다.


잘 지냈어?


브랜든에게 씨씨는 마음을 열 수 있는 마지막 관계를 의미합니다.


어느 날 브랜든은 씨씨의 공연을 보기 위해 직장상사인 데이비드와 함께 그녀의 바를 방문합니다. 그런데 공연을 본 데이비드가 씨씨를 맘에 들어합니다. 그는 평소 주변의 여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씨씨의 노래실력을 칭송하며 추근댑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음을 엽니다. 결국 두 사람은 브랜든의 집으로 장소를 옮깁니다.


브랜든은 씨씨로 인해 자신의 정교한 공간이 침범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그녀는 유일하게 브랜든의 이중적 일상을 깨뜨린,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가족입니다. 그녀는 관계에 집착합니다. 만난 지 20분 된, 심지어 가정까지 있는 얼치기에게 혹해 몸과 마음을 다 내주려 합니다. 그 꼴을 지켜볼 오빠가 몇이나 될까요. 브랜든 역시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몰라 망설입니다. 결국 그는 두 사람을 남겨두고 집을 나섭니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밤거리를 달립니다.


다음날 브랜든은 자신을 증명이라도 하듯, 연애 중이던 여성과의 첫 잠자리를 가지려 합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아 실패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브랜든은 여동생과 크게 다툽니다.



그에게 연락처 남겼지? 역겨워.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가정 있는 사람인 거 알잖아.
몰랐어. 미안해.
넌 항상 미안하지.
난 미안하단 말이라도 해.
넌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꼼짝 못 하게 해.
내 오빠잖아. 난 동생이야. 우린 가족이야.
난 혼자 살아왔어.
가족은 서로 돕는 거야. 나도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어.
넌 날 가라앉게 할 뿐이야.
지금 떠나면 볼일 없을 거야. 그게 슬프지 않아?
대화하고 싶지 않아.
오빤 아무도 없어. 오빤 아무도 없어.



집을 나온 브랜든, 그에게 더 이상의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직장과 집은 모두 발각되어 버렸으니까요. 애정을 갈구하며 가족으로서의 결속을 원하는 동생조차 자신의 정교한 영역을 무너뜨리는 침입자일 뿐입니다. 그는 그날 밤 끝을 알 수 없는 모험을 떠납니다. 그 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을 체험하게 됩니다.




왜 중독에 빠질까


성중독증의 원인은 과거 환경으로 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랐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개방적으로 자란 경우도 이에 해당됩니다. 가까운 친인척이나 연인에게 버림을 받았거나, 누군가로부터의 강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결핍으로 인한 독립적 감정을 지속적인 행위와 성적 환상으로 해소하려는 접근이 성중독증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클린턴과 여성 직원의 무분별한 성행위는 성중독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때문에 성중독을 ‘클린턴 신드롬’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내 안에 악마가 있어서 외로울 때나 답답할 때, 화가 날 때 이런 일을 하게 된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사례 역시 과거의 환경을 통해 원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클린턴의 아버지는 계부였으며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어머니 또한 도박 중독이었습니다. 클린턴의 이복형제 역시 코카인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불행한 가정환경 속 두 형제는 성인이 돼 속하게 된 사회에서 각각의 형태로 정신적 질환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브랜든의 성장 배경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가 '혼자 살아왔다'고 강조하는 점, 가정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태도, 여동생에 대한 불만, 그리고 남매 모두 관계의 형태가 불완전하다는 점에서 그들의 성장환경도 온전치 않았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에는 다양한 계기가 존재합니다. 계기로 인해 바뀐 현재는 새로운 과거가 됩니다.


클린턴은 스캔들 사건을 계기로 꾸준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아내는 클린턴의 성중독이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을 알고 그를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브랜든에게 갑작스러운 씨씨의 방문은 침범이자 계기였습니다. 그가 느꼈던 균열들은 어쩌면 그에게 필요한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 후반, 그는 자신이 모험의 밤을 보내는 동안 차갑게 식어갔던 씨씨를 끌어안고 통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비록 어려운 순간으로 이어졌으나, 동생을 목숨을 건졌고 오빠는 깨달았습니다. 남매의 남은 일상이 좀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당장, 계기를 만들자


성관계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권리입니다. 만약 내 성생활이 미숙하되 자연스럽고, 부족하되 황홀하다면 그것을 문제로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브랜든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면, 이 글이 ―여동생 씨씨와의 갑작스러운 동거처럼―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브랜든은 자신의 여동생이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측은지심을 갖고 있는 여리고 착한 남자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처럼 여동생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마음을 열고 나아갔다면, 좀 더 나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요.







※ 참고: 왜 성중독인가


은밀하게 위대하게


성중독이라는 주제를 택한 이유는 그것이 갖는 고유성 때문입니다. 성중독은 특정 시점이 없이, 즉 자신이 인지하기 전에 습관화되는 '중독'의 위험성과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성적 폐쇄성’이 결합된 위협적인 정신질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주변에서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게다가 성중독자의 대부분은 단지 자신의 성욕이 많다고 생각할 뿐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에는 전체 인구의 5%~8%가 성중독자로 보고됩니다. 국내는 5%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성에 대해 폐쇄적인 문화의 성격상, 국내에는 더 높은 비율의 성중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IT강국이라는 장점이 촉매제로 작용하여 온라인 상에선 언제 어디서든 실제와 정반대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최근 10년 사이 급증한 '사이버 성중독증'은 온라인을 통해 진화된 성중독의 현재이기도 합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상 모습의 양극화 현상은 성중독의 본질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그곳이야 말로 '성중독'이라는 존재가 기생하기에 최적의 환경인 셈입니다. 그 녀석은 은밀하고 위대하게 자신의 덩치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중간자 역할의 감소


부모는 아이가 세상과 교류할 때 일어나는 충돌을 유연하게 해석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중간자 역할을 합니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내면에서 일어나는 욕구의 흐름을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해소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지만 부모가 이러한 중간자의 역할을 하지 못 할 경우, 예를 들어 아이의 정서를 너무 억압한다거나 또는 욕구에 대하여 너무 쉽게 접근할 때, 클린턴의 경우처럼 아이가 그 어떤 답도 얻을 수 없을 때, 아이는 내면의 흐름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법을 학습하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중독은 '표현 방식의 미숙함'에서 비롯되는 증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죠. 안정적으로 관리 및 해소하지 못하고 억압되던 내면이 음습한 특정 통로로 집중되는 셈입니다. 정해진 모습을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협소했던 통로는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듭니다. 바쁜 일상은 집요하게 아이와 교감할 시간을 뺏어 갑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중재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할애하는 시간만큼 아이의 통로는 넓고 다양해집니다.



과정이 거세된 사회


언제부터인가 사회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지난 노력들은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죠. 브랜든의 '과정이 거세된 성생활'은 현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 일부를 대변합니다.


다음 세대는 결과 위주의 사회에 더 잘 적응할 것입니다. 인터넷을 비롯한 과학을 발달 속도에 맞춰 그 이전 세대 누구보다 빠르게 진화하겠지요. 단순히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그 흐름을 통제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속도와 결과보다 중요한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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