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WAII #2 하지만 서슴없고 주저 없는
2019년, 나는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의 날씨는 이제 막 선선해지는 초가을이었지만 나는 태평양의 뜨거운 태양을 기대하며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가져가는 것보단 가지고 오는 것으로 채울 생각에 캐리어의 반은 비어 있었다. 나리타를 경유하는 대한항공 KE001 항공편은 크지 않았지만 들뜬 여행객으로 북적였고 그보다 더 큰 설렘이 그 틈새마저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좌석에는 Y가 앉아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친구와 하와이를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면 대체로 의문을 표하곤 했다. 그것도 Y와 간다니. 심지어 나와 Y의 중간다리에 있는 친구들마저 우리의 여행 계획을 들었을 때 꽤나 의아한 눈치를 보였다. 그들의 머리 위에 떠있는 몇 개의 물음표를 보자면 첫 번째는 우선 왜 ‘하와이’에 가느냐 하는 질문이고, 두 번째는 당연히 왜 ‘Y’와 함께 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물론 본질적인 의문은 결국 그 두 가지 질문을 합친, 어째서 ‘하와이를 Y와 함께’ 가느냐 하는 것이겠지만.
그 질문에 우리 사이를 모른다며 헛웃음을 친다거나 어떻게 멋대로 판단하느냐며 인상을 찌푸릴 생각은 없다. 하와이가 의미하는 ‘신혼여행지’라는 타이틀은 무시 못할 대명사이기도 하거니와, Y와 내가 사랑과 우정 사이를 넘나들 정도로 친밀하지 않은 사이라는 건 숨겨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나조차 왜 Y와 하와이를 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아마 Y도 모를 거라 생각한다. 그저 그 특유의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고 말 게 분명하다.
내가 기억하는 이 여행의 발단이라고 한다면 이 한 문장 정도다.
“우리, 취업 성공하면 꼭 다 같이 여행 가자.”
나는 Y를 스물다섯 살, 학교에서 만났다. 그때의 나는 취업 준비에 한창이었다. 경력에 공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졸업학기가 지났는데도 졸업을 유예하며 겨우 학부생 신분을 유지하던 아등바등하고 절박한 시기였다. 이십 대 중반이 되도록 취업을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은 풋내가 날 정도로 귀엽지만 그 순간을 버티는 나에겐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주변에는 소위 칼-졸해서 칼-취업한 동갑내기 동기들이 꽤 있었다. 나는 그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압박했다. 한 학기라도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을 보면 자괴감에 시달렸다. 다들 저 멀리 달려가는 레이스에서 나 혼자 출발점에 서서 아무것도 못하고 뒤처지기만 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무참히 흘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국내 모 기업의 인적성 시험을 준비하는 스터디그룹 모집글이 올라왔다. 마침 내가 눈여겨보던 회사 중에 하나였다. 그동안 이런 스터디에 참여한 적은 없었지만 이번에야말로 취업에 성공하고 만다는 단호한 결심으로 단숨에 메시지를 보냈다. 스터디는 빠르게 정원이 채워졌고 머지않아 자기소개 겸 가벼운 미팅 일정이 잡혔다.
어느 저녁의 신촌 한 대학에서, 동그란 테이블에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나중에 도착한 학생이 바로 Y였다.
Y를 처음 보았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낀 Y는 똑부러지는 인상의 학생이었다. 스터디원으로서 서로의 학점과 스펙을 공개하면서 Y가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어떤 잠재적 인상은 내 안에서 명확한 기정사실로 형태를 잡았다. 유학파 엘리트라는 헤드라인이 Y에게 걸리는 순간이었다.
여러모로 Y는 내가 이전에는 좀처럼 만나본 적 없던 타입의 인물이었다. 디자인학부를 전공한 나와 달리 국제학부를 전공한 Y는 영어와 일본어를 수준급으로 잘했다. 유학파답게 ‘오우’ 같은 낯선 추임새도 곧잘 썼다. 하지만 하이틴 드라마에 나오는 깍쟁이라든가 태닝과 짙은 눈썹을 한 채 유교사상 따위는 개밥으로 주는 마냥 털털한 타입도 아니었다. 물론 유학파라고 해서 모두가 그 스테레오 타입을 수행할 필요는 없지만, 내게는 의외의 지점이었다. 오히려 나는 Y를 만나면 만날수록 그가 의뭉스럽게 느껴졌다. 그의 진심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물론 유학파라고 해서 속내를 다 드러낼 필요 역시 없지만, 이마저도 내게는 낯선 지점이었다. Y가 오우, 라고 할 때마다 나는 그 ‘오우’가 ‘오, 별론데?’의 오우, 인지, ‘오, 대단하다!’의 오우인지 파악하려 애썼고 그 시도는 언제나 실패하곤 했다. Y의 오우는 그냥 그 ‘오우‘로 마무리되었다. 별달리 변하지 않는 특유의 표정과 함께. 나로서는 그 의미를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생각과 기분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고 하고 싶은 말은 문장으로 만들어 꼭 내뱉어야만 하는 나와는 그야말로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그런 순간이 있을 때마다 속으로 ‘안 맞네……’ 하곤 했다. Y가 싫다거나 꺼려진 건 결코 아니었다. 글자 그대로 안 맞는 게 있다는 걸 발견한 감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Y와는 스터디원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이 스터디가 끝나면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어떤 예감마저 들었다. 물론 Y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확신까지도.
그런 애매한(혹은 적당한) 관계에서 우리는 같은 기업의 인적성 시험을 치거나 다른 기업의 시험을 치고, 누군가는 붙고 누군가는 떨어지면서 짧지 않은 취준 시절을 함께 했다. 그러던 와중 스터디원 중 누군가 불현듯 말을 꺼냈다. 우리 모두 취업에 성공하면 함께 여행을 가자고. 부산이든, 어디든 근사하게 떠나자고.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는 몰라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진심이었다. ‘여행을 간다’는 것에 대한 다짐보다는 ‘취업에 성공’한다는 전제조건이 더 탐이 났겠지만, 그 문장이 주는 희망만큼은 우리의 만남 저편에 언제나 깔려있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으레 그렇듯 인생은 노력과 비례하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닻을 내리곤 한다. 굴지의 대기업 대행사 아트디렉터를 지망하던 나는 매체팀도 없는 독립 광고대행사의 아트디렉터가 되었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카피라이터를 꿈꾸던 Y는 뉴스 방송국의 PD가 되었다. 접점이 없던 사람들이 필요 관계에 의해 아주 잠깐 교차했다가 다시금 다른 영역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더 이상 서로를 만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Y와 나는 꾸준히 연락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종종. 서로의 생일을 기억하고, 선물을 전하며, 생각이 날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메시지를 보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이게 참 이상한 부분이다. 나는 Y와 내가 서로 맞는 부분보다 맞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봐도 그 생각은 변치 않는다. 하지만 ‘안 맞네……’가 남긴 건 어색함이나 불편함이 아니었다. 말수가 적고 진중한 Y와 생각이 많고 표현하는 나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하지만 주저하지 않는 성격과 섬세한 기질에서 통하는 게 있었다. 예민한 만큼 선을 지키는 거리도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가장 친밀한 친구가 아님에도 웬만한 친구 사이에 잘 시도하지 않는 것들까지 곧잘 하곤 했다. 마음의 중심부에서 멀수록 대범해지는 법일까? 서로의 깊은 취향을 알았다면 도전조차 하지 않았을 것들을, 우리는 서슴없이 꺼내놓았고 주저 없이 수락했다. 퇴근 후 마라톤 연습을 한다거나, 양양까지 서핑을 하러 1박 2일 여행을 떠난다거나, 모르는 독립영화의 팝업 전시를 보러 간다거나.
그러니 우리가 기억 저편의 한 문장을 꺼내든 건 사실 그다지 놀랍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다.
“우리, 취업 성공하면 꼭 다 같이 여행 가자.”
물론 이제는 취업이 인생에 그다지 큰 굴곡도 의미도 아니었다는 것 정도는 알 때였다. 굳이 여행일 필요도 없었다. 스터디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의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간단한 저녁식사로 유종의 미를 거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훌쩍 떠나고 싶었고, Y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같이 떠날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서로가 있었다.
서슴없이 하와이라는 지명을 내뱉으면 주저 없이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서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