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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레 Jun 17. 2021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케익

기울어진 팬심이 그린, 일그러진 그림

벌써 오래전... 열차에서 잡지를 넘겨보다가 심쿵하는 사진을 발견했다. 도깨비를 모델로 하는 커피회사가 신상 커피를 출시한 모양이었다. 평소 달달한 거라곤 질색하는 내가 미소를 머금고 이 커피 광고를 흐뭇하게 한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하는 심정으로  손으로 잡지를 잡고 나머지  손으로 문제의 페이지를 찍었다. 찰칵. 그 이후로 지하철 광고판에서도 도깨비의 커피 광고는 흔히   있었다.

시간이 꽤 흘러 새로운 그림 소재를 찾다가 핸드폰 속 그 사진을 인쇄해서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때는 그저 팬심이 과도하게 뿜뿜하는 상태여서 케이크의 삼각기둥 비율, 앉아있는 모델의 자세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신이 났을 뿐이다. 마음에 해가 떴다가 달이 떴다가 했다. 팬심이란 그런 것이리라.


스케치를 끝내고 겨우 초벌칠을 했을 뿐이지만, 내 작은 시작은 반을 넘어 완성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팬질을 할 수 있다니, 그림을 배우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이 사진을 킵 해둔 스스로가 기특해마지 않았다. 그런데 묘한 일이었다.

채색을 하면 할수록 그림은 이상해져만 갔다. 케이크의 높이가 어색해 고치면 인물이 구부정해 보였고, 테이블 각도를 틀면 커튼이 기울어졌다. 온갖 직선과 상상 속 직선이 난무하는 그림을 그리자니 계속 울고 싶은 심정이었고 실제로도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당시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코로나19로 미술 수업은 중단된 상태였고, 이 구도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웠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일그러져가는 그림에 끝도 없는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나는 생계의 절반은 글을 써서, 절반은 사진을 찍어서 유지해왔다. 그런 내게 대학에서 돈 많이 주고 사진을 배웠다는 전공자 후배가 내 사진을 보고 “수평이 맞다”라고 칭찬했었다. ‘잘 찍었다’, ‘멋지다’도 아닌, 겨우 수평이 맞다가 칭찬이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그 말은 분명 기본을 잘 지킨다는 의미 있는 칭찬이라 기뻤다.

사진에서는 상대가 움직여도 내가 움직여도 수평이, 또 속도가 맞아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수평은 구도상 안정감을 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포토샵 기능을 익힐 때 처음 배우는 것이 수평 맞추기이다. 요즘은 아이폰에도 사진의 수평 자동 조정 기능이 생겼다.

이 그림의 일그러짐의 실제 원인은 사진 자체가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커튼, 테이블, 접시, 케이크, 인물 어느 것에 하나도 수평이 맞지 않았다. 수평 구도가 아니라면 수직이라도 맞아야 했지만, 물론 수직도 맞지 않았다. 사진이나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이 수평, 수직이 맞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가장 중심이 되는 소재는 수평이 맞아야 한다.

그런데 이 사진은 광고인만큼 주목받기 위한 황금분할도 여러 개가 겹치고 주요 아이템을 부각하면서 특정 소재에 시선을 유도하고, 또 잡아끌고 있었다. 적어도 잡지에 사용된 그대로의 구도라도 유지하며 스케치했다면 혼선이 덜했을 것이지만, 달리는 열차 안에서 급하게 일단 킵했던 사진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사회문제에서는 계급 차별과 갈등의 주제이겠으나 회화 장르에서는 참혹함의 다른 이름이다. 꼼꼼해야 할 스케치에서 작은 실수는 채색을 하면 할수록 더 가파르게 높은 산이 되고야 말기 때문이다. 그림 초보의 기울어진 팬심에서 시작한 기울어진 운동장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이 그림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눴다. “와! 공유 좋아, 나도 팬이삼”, “이런 그림도 그리는 거? 부럽”이었다. 그 외에 단 하나의 이질적인 반응이 발견되었는데 놀랍게도 “나라고 생각할게”라며 동일시의 마법에 빠진 남편이었다. 게다가 그는 인물의 신체 비율은 사진 속 모델 기준을 적용해 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어차피 내 그림 실력에서 인물의 얼굴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저 세상의 영역이고, 결국 극강의 비현실적 우주적 인물이 출연하고 말 텐데… 그것을 자신이라고 믿겠다니 정신승리로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긴 당시에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며 스트레스가 많기는 했다.

남편이든, 도깨비든 차별적으로 누군가를 확실하게 그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겐 그런 능력이 없었다. 핑계라 해도 어쩔 수 없지만 인물화를 잘 그리려면 기본적인 소묘 능력이 필수적이다.

강민아. 커피와 도깨비. 2021. Oil on canvas. 22.0x27.3cm

어느 영역이나 일정 시간을 투자해야 실력을 갖출 수 있지만, 특히 인물화는 눈, 코, 입 모든 특징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전체적인 골격과 근육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기 때문에 초보자에겐 무척이나 어렵다.

실제로 완성된 내 작품 속 인물은 당연하게도, 혹은 슬프게도 추정될 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만화적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나는 팬심으로 충만하고, 남편은 모델의 비율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으니 가정의 평화는 이루어졌다.

이미 기울어진 사진을 스케치하고 채색해 보는 경험은 누구나에게나 일어나는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초벌을 마치고 세부 묘사를 한참 하다가 원본 스케치가 기울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닥친 절망감은 바닥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바로 잡아가는 과정은 지난했지만, 극복하는 과정에서 분명 배움도 있었다고 믿는다. 선수평, 절대 수평 최우선 확인이랄까.

결국 우리 집 거실에는 티라미슈 케이크에 기대앉은 도깨비와 그림 속 그 인물이 자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한 남자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 커피에는 그림에서 풍겨 나온 티라미슈 향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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