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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절주절 신씨네Cine Jan 25. 2019

첫사랑, 그 아린 이름을 향한 헌사...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다시 보고...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 잠시 눈을 감고서 시간을 되돌려보자. 때는 14~17세 무렵, 첫사랑을 시작할 즈음이 좋겠다. 당신이 그 시절 첫사랑이라 명명된 그 혹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이 사랑은 영원할 거야...’ 정말 진짜 그 당시에는 그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마도 어느 순간 당신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첫사랑의 그 혹은 그녀가 아니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굉장히 높은 확률로(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영원이란 것에 마치 불가침 영역이 있는듯한 이 현상에 대해 누군가는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아주 기막힌 정답을 내놓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원을 꿈꿨던 첫사랑에 대한 감정적 기억은 꽤 오래간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감정이 그간의 인생에서 꽤 여러 번이나 날 요동치게 했음에도, 첫사랑의 그녀가 가져다준 설렘은 내 기억과 감정에 아주 지나치게 요란한 흔적을 남겨 놓았으며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 언젠가는 이 요란한 흔적을 지워야 한다는 걸 말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감독 유키사다 이사오)에서의 주인공 마츠모토 사쿠타로(오오사와 타카오)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모든 사랑의 종착지로 여겨지는 결혼. 하지만 어느 날 사쿠타로의 방에서 그의 옛 기억이 담긴 아주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를 듣게 된 그의 약혼녀 리츠코(시바사키 코우)는 홀연히 사라진다. 사라진 그녀를 찾기 위해 사쿠타로는 필연의 기억을 따라 고향 다카마츠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고향에 도착한 사쿠타로는 리츠코가 들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테이프를 자신의 옛 방에서 발견하게 되고, 그 테이프에 들어있는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 아키(나가사와 마사미)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금 추억에 빠진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사쿠타로가 다시 추억을 되돌아보는 이유다. 그것은 아주 쉽게 '남자의 첫사랑은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애써 잊고 지냈지만 가슴 한켠에 아릿하게 남은 그 기억의 힘이 그만치 대단한 까닭이다. 하지만 지극히 객관적으로, 또 영화 밖에서 그의 지질한 추억여행을 구경하는 관객의 입장에선 사쿠타로가 아키와의 추억을 회상함은 마치 ‘결혼’이라는 완전한 사랑을 위해서 실행되어지는 과거 요란한 첫사랑의 흔적에 대한 살풀이와 같아 보인다.

 

이윽고 영화가 되돌아보는 사쿠타로의 첫사랑 아키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얼굴도 예쁜 학생이었다. 모든 남성의 로망으로 자리한 그녀는 우연찮은 하굣길에서의 만남을 통해 사쿠타로와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첫사랑은 많은 첫사랑의 형태가 그러한 것처럼 아주 투명한 형태로 키워진다. 함께 라디오에 응모 사연을 보내는가하면, 워크맨을 통해서 사랑을 속삭이고 무인도로 둘만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첫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전설처럼,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사랑도 아키가 가진 병으로 인해 그 전설의 전철을 밟아 간다.


우리는 살아가며 꽤 많은 이들과 사랑을 나누지만, 단언컨대 첫사랑은 다른 사랑과 달리 꽤나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 정확히 형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건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의 마음만을 바랐던 순수함은 아닐까. 그렇기에 첫사랑의 기억은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과거 내 모습에 대한 그리움과도 동행한다. 


하지만 이렇게 과거를 지극히도 그리워한다 해도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순수함이나 행복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기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이를 죽은 아키에 대입시켜 영신-접신-송신의 살풀이 과정으로 해소하려 한다. 


위 과정은 스크린 속에 아주 아름답게 펼쳐진다. 흔히들 목소리엔 그 사람의 영혼이 담겨있다고 여겨진다. 그렇기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속에서 아키의 목소리를 담은 카세트 테이프는 그의 영혼과 만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짐은 자명하다. 그렇게 사쿠타로는 과거에 아키와 주고받았던 카세트 테이프를 꺼내 들고서, 그녀와의 추억이 서려있는 자리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다. 영신(迎神). 그들은 그렇게 추억의 장소에 서서 심장을 울리는 파동과 함께 감은 눈 안에서 해후한다.

 

그 후에 벌어지는 첫 만남-감정의 교류-추억의 회상-아픈 기억의 흔적에 대한 나열은 그 당시의 감정에 대한 총체적 조명을 실행한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거닐었던 거리의 향기, 함께 떠났던 무인도에서 설레었던 그 밤. 그 가운데로 침잠한 현재의 사쿠타로는 천천히 그 시절의 아키와 한 몸으로 동화되며 감은 눈 안에서 온전히 그 시절을 바라본다. 우중충하고 비가 내리는 현재의 환경과는 정반대의 햇살이 가득한 아름다운 그때……. 아키와의 기억, 추억과의 접신(接神) 과정은 결국 기억 속에서 죽어가는 아키의 "울룰루(에어즈 락)에 가보고 싶다"는 한(恨)으로 점철된다. 


첫사랑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미안함은 굳이 아키의 경우처럼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성숙하지 못했던 당시의 내 모습과 더 잘해주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 그 후회의 감정은 꽤나 오래 그 잔향을 남긴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영원한 시작을 앞둔 사쿠타로에게 있어서도 이 감정은 감출 수 없는 기억이고, 털어내야 하는 감정으로 자리한다.


결국 아키와의 모든 추억에 대한 복기를 끝마치고, 현재로 돌아온 사쿠타로는 오랜 시간 동안 남아있는 아키에 대한 미련과 대면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현재 그의 약혼녀 리츠코와도 대면한다. 이 대목에서 밝혀지는 리츠코의 비밀은 아키에게서 마지막 테이프를 사쿠타로에게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메신저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메신저는 현재의 사랑으로 과거의 감정을 덮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쿠타로가 영화 내내 드러내고 있는 아키에 대한 미련으로 그를 오해해선 안 된다. 약혼녀 리츠코에 대한 사쿠타로의 사랑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다만 너무도 커다랬던 첫사랑이 가슴 한 구석에 끈적하게 남아서 만들고만 일말의 그리움이다. 그리고 마지막 테이프에서 아키의 목소리는 바로 이 아쉬움과 미안함, 집착을 떨쳐내고 새로운 시작을 하라는 당부가 담겨있다. 송신(送神). 그러므로 사쿠타로는 리츠코와 아키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울룰루로 함께 떠난다. 그리고 울룰루에 도착해 흩뿌리는 아키의 유골은 마지막으로 행해지는 천도제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토록 원했던 곳에 도착해, 그곳과 동화되는 아키의 모습은 그동안의 후회로 간직했던 사쿠타로의 기억에 대한 안식을 준다.


사람에게 끈적하게 달라붙는 집착은 비단 첫사랑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실제로 무언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할 때, 과거의 집착을 정돈하고 신선함을 환기하곤 한다. 바로 그런 정리의 과정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위와 같은 위령제, 살풀이, 천도제와 같은 과정으로 실행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완성되는 완전한 후회의 청산은 실제로 앞에 펼쳐질 생생한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한껏 함축하며 내가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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