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시간이 한 순간에 폭발하는 마법
경이로움은 일상의 논리가 갑작스레 무너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눈앞에서 현실이 될 때, 우리는 단순한 감탄을 넘어선 무언가를 경험한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나는 주기적으로 조성진이 우승했던 2015년 쇼팽 콩쿠르 파이널 연주 영상을 본다. 볼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미 우승이라는 결과를 알고 있고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연주 레퍼토리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악보 위의 음표들은 살아있는 선율로 변화한다. 이때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한 인간의 모든 것이 한 점으로 수렴되어 폭발하는 장면이다. 진정한 경이로움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밀도에서 나온다. 수년간 축적된 노력과 의지가 단 한 때에 응축되어 터져나오는 그 에너지를 감지할 때, 우리는 전율한다.
조성진과 임윤찬 같은 피아니스트들을 보면 인간 능력의 신비로움을 새삼 깨닫는다. 3천 개가 넘는 음표를 완벽하게 외우는 것도 경탄할 만하지만, 더 비범한 것은 각 음표마다 서로 다른 감정과 해석을 담아내는 능력이다.
그들의 손가락은 1초에 수십 개의 건반을 정확히 누르면서도, 각각의 터치가 고유한 음색을 만들어낸다. 기계적 정확성과 예술적 감성이 동시에 구현되는 지점이다. 근육과 신경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 음악이라는 언어로 소통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기적이다.
프로게이머들은 어떠한가? 페이커 이상혁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듯하면서도 최적의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초인적이다.
페이커의 게임 중계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경기 중 그의 얼굴을 카메라가 비추었을 때, 게임 화면을 응시하는 그의 강렬한 눈빛 말이다. 그곳에는 미래를 읽는 힘이 담겨 있다. 수십 개의 변수가 동시에 변화하는 실시간의 상황에서, 그는 마치 체스 그랜드마스터처럼 여러 수 앞을 내다보며 최적의 선택을 한다.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경기 전체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꾼다. 관중들이 그의 플레이를 보며 환호하는 이유는 단순히 승리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반응속도와 판단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경계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마라톤 선수는 다른 의미로 초인적이다. 그들의 얼굴에서 읽히는 고통은 숭고하다. 42.195km라는 거리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인간 의지력의 시험대다. 몸은 이미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지만, 정신은 더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한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때의 표정에는 고통과 환희,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새겨져 있다. 그들이 달려온 것은 단순히 거리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구현이다.
바둑판 앞에 앉은 기사들의 정적인 모습 뒤에는 폭풍 같은 사고가 진행되고 있다. 19×19 격자 위에 놓인 몇 개의 돌이 만들어내는 경우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최적의 한 수를 찾아내는 능력은 직감을 넘어선 영역이다. 대국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자리를 뜨지도 않은 채 복기 시간을 가지면서, 수백 수를 정확히 재현하며 각 수의 의미와 변화를 곱씹고 되짚는 모습을 보면 인간 기억력의 한계가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그들에게 바둑판은 단순한 게임판이 아니라 우주의 축소판이다.
이렇게 탁월한 인간의 능력을 보며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압축된 시간'의 미학이다.
조성진의 완벽한 연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긴 여정이 있었다. 손가락이 굳어질 때까지 반복했던 연습, 콩쿠르에서의 좌절, 실수에 대한 자책,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 모든 경험이 2015년 바르샤바 무대에서 하나의 완벽한 지점으로 결실을 맺었다.
페이커의 0.1초 판단 뒤에는 리그오브레전드에 대한 끝없는 탐구가 숨어 있다. 하루에도 열 몇시간씩 연구했던 세월들, 패배의 쓴맛을 씹으며 자신의 약점을 분석했던 밤들,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며 위험을 감수했던 도전들. 그 모든 것이 한 번의 클릭에 녹아들어 있다.
마라톤 선수들의 결승선 통과는 단순히 42km를 달린 결과가 아니다. 새벽 훈련을 위해 따뜻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던 수천 개의 아침들, 근육의 비명을 무시하며 한 걸음 더 내디뎠던 의지력, 포기하고 싶었던 때들을 견뎌낸 정신력이 그 한 지점에 모두 담겨 있다.
바둑 기사들의 한 수는 단순한 돌의 이동이 아니다. 수많은 기보를 외우고 분석했던 시간, 밤새워 변화를 연구했던 노력, 실패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모두 응축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경이로움의 정체다. 시간의 축적이 한 지점에서 폭발하는 것. 평범한 인간이 비범한 존재로 변화하는 찰나를 목격하는 것이다.
도구는 변해도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조성진이 하루 10시간씩 건반을 두드리는 것과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조각 기법을 익히기 위해 무수한 습작을 만들었던 것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 페이커가 게임 패턴을 분석하는 집중력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완벽한 그림을 위해 수천 장의 스케치를 그렸던 열정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라. 24세의 나이에 만들어낸 이 작품 뒤에는 십대부터 시작된 끊임없는 조각 수련이 있었다. 크고 작은 조각상들, 실패한 작품들, 스승 밑에서 갈고닦은 기법들. 그 모든 시간이 바티칸의 대리석 위에서 하나의 완벽한 순간으로 결실을 맺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AI가 등장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도구가 나타날 뿐, 그 도구를 사용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인간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다.
피아니스트의 연주와 AI의 음악 생성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전자에는 인간의 의지와 감정이 스며들어 있고, 후자에는 알고리즘과 확률이 있다. 둘 다 뛰어난 결과를 만들 수 있지만,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이야기다.
왜냐하면 경이로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실패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최선을 다하는 용기,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 완벽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열망. 바로 그 인간적인 것들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조성진의 연주 영상을 계속 찾아본다. 거기서 확인하는 것은 뛰어난 피아노 실력이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얼마나 경탄할 만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에 대한 증명이다. 그 증명은 시대가 바뀌어도, 기술이 발전해도 결코 바래지 않을 것이다.
경이로움의 본질은 완벽함이 아니라 완벽을 향한 여정에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오직 인간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