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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Dec 21. 2021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드라마 'D.P.' 의 교집합

현재까지 군대를 소재 삼은 수많은 작품들이 대중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할리우드에선 대부분 전쟁 영화 기반인 블록버스터가 대부분이긴 하나, 한국 미디어물이 조명하는 군대는 다르다. 아무래도 남북 대치라는 특수상황이 존재했고 이를 활용한 작품들이 많다. 


한국 최초 천만 영화 2편('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도 공교롭게도 군대물이자 남북관계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대중에게 명작으로 알려진 '공동경비구역 JSA'나 '고지전' 등 또한 같은 소재를 띠고 있다. 


한국 군대물의 또 다른 특수성은 바로 징병제다. 남북 분단이라는 시대적 비극과는 또 다른, 병역의 의무를 지는 남성들이 군대서 겪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담아내고 있다. 그 효시는 윤종빈 감독이 졸업 작품으로 선보였던 2005년작 '용서받지 못한 자'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신병으로 들어온 명문대생 승영(서장원)의 눈으로 폭력적인 병영 내부 문화를 들춰낸다. 그는 폭력적인 군 문화에 저항하는 인물로, 막내 지훈(윤종빈) 성기를 만지는 등 장난치는 고참에게 그러지 말라고 일침을 가하는 '개념 없는' 이등병이다. 그래도 그를 아무도 터치하지 않는 건 중학교 동창이자 전역 앞둔 병장 태정(하정우)이 있어서다.


그러나 승영 때문에 갈굼 당한 태정은 어쩔 수 없이 승영에게 손을 대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태정의 손찌검 여파는 승영을 거쳐 승영의 후임 지훈에게로 퍼져 나갔다. 승영은 선임들이 생각하는 '군 생활 잘하는 군인'으로 거듭났으나, 군생활을 힘겨워하던 지훈은 그렇지 못했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와 제도가 모두를 똑같은 유형으로 바꾸지 못한 것.


군생활 적응에 실패한 지훈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이에 충격받은 승영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휴가 중 태정을 만나 사과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속으로 담아뒀던 이야기들을 꺼내지 못했다. 폭력과 억압이 대물림되면서 악순환이 이어져 결국 비극적인 최후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병영생활 제도를 신랄하게 고발하면서 동시에 불합리한 제도에 연루된 캐릭터들의 얼굴도 담아냈다. 극 중 인물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고, 피해에 대한 자기연민으로부터 가해에 대한 죄책감을 안겨줬다. 태정과 승영 모두 폭력과 억압 등에 이기지 못해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시하며 자신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군대를 다녀온 이들은 태정과 승영에게 "비겁자"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홀로 싸우기엔 오랜 세월 내려온 병영제도의 악폐습을 홀러 저항하고 바꾸기 대단히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고, 그래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로 군 내부 부조리를 담은 작품들은 쉬지 않고 꾸준히 등장해 대중을 향해 조용히 자기 목소리를 내며 명맥을 이어왔다.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은 넷플릭스 'D.P.'는 미디어 작품에서 상대적으로 마이너 축에 속했던 해당 소재를 메이저로 끌어올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김보통 작가의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한 'D.P.'는 '용서받지 못한 자'를 포함한 군 고발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른 점은 없다. 그동안 공개됐던 병영 내 악습 사례들을 6개 에피소드로 박박 긁어모은 뒤, 탈영병을 체포하는 군무이탈체포전담조 듀오라는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뿐이다. 


여기에 안준호(정해인), 한호열(구교환) 두 캐릭터 간 케미스트리를 맛깔나게 살리는 밝은 버디물로 전개하면서 6.25 시절 수통을 언급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조석봉(조현철)의 묵직한 일갈을 장착해 상업 드라마로서 절묘하게 균형감을 맞췄다.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한국 전역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금세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일반 대중이 즐기고 감명받는 상업 미디어물을 넘어 정치권도 반응했고, 서욱 국방장관이 "지금의 병영 현실과는 좀 다르다"며 현 군대 사각지대를 살펴보겠다고 진땀을 흘리는 광경까지 만들어냈다. 'D.P.'가 쏘아 올린 공의 나비효과는 어마어마했다.



넷플릭스라는 거대 OTT를 소통창구로 활용한 점을 무시할 수 없으나, 'D.P.'가 이목을 끌었던 원동력은 '용서받지 못한 자'가 반향을 일으켰을 때와 비슷하다. 병사들이 탈영하게 된 이유 및 군대 내 일어나는 사건들을 단순하게 선악 구도로 잡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안준호와 한호열이 추적하는 탈영병들이 왜 탄생하게 됐고 폭력이 대물림되는 이유, 폭력을 두고 순응하고 저항하는 캐릭터들의 서사 및 전사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쪽으로 잡았다는 것. 원작과 달리 안준호의 계급이 상병이 아닌 이등병으로 시작되는 것도 이러한 점이 영향을 끼쳤다. 


'D.P.'가 '용서받지 못한 자'보다 나은 점도 있다. 해당 시리즈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도 재밌게 볼 수 있게 여러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D.P.'의 경우, 친숙한 캐릭터와 상황의 나열해 군 복무를 하는 병사의 어머니나 누나, 혹은 여자친구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게끔 진입장벽을 낮췄다. 예를 들면, 부대 내에서 괴롭힘 당하는 인물들 중 한 명은 오타쿠였고 이를 불편함 없이 유머 코드를 적절하게 중화시키며 표현해냈다. 


사실 'D.P.'의 전개 방식이 독창적인 건 아니다. 같은 소재를 사용한 다른 작품들처럼 스테레오타입으로 풀어냈다. 그런데도 대중에게 제대로 먹혀든 또 다른 이유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제도 및 시설이 많이 개선됐어도 여전히 부조리와 폭력성을 뿌리 뽑지 못하고 온전히 생존하고 있다는 점. '용서받지 못한 자'가 조명한 2000년대 초반이나 'D.P.'의 배경인 2014년, 병영 내 악폐습은 근절되기는커녕 명맥을 이어왔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서욱 국방장관이 "지금의 병영 현실과는 좀 다르다"고 말했던 2021년, 'D.P.'가 담아냈던 2014년에 비해 군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2개월 간격으로 해·공군 여군 부사관 사망 사건이 터졌고, 이 과정에서 군대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쉽게 변할 수 없는 곳인지 드러났다. 또 'D.P.'의 극 중 배경과 같은 해 일어났던 육군 28사단 윤 일병 사건의 피해자 윤 일병 유족은 가해자와 국가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을 통해 가해자 배상 책임만 물을 수 있을 뿐, 국가 책임은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러니 "군대에 안 왔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라는 'D.P.' 속 대사가 머리가 계속 맴돌 수밖에.


최근 넷플릭스는 'D.P.' 시즌2 제작을 확정 지었다고 밝혔다. 시즌2에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시즌1에서 미처 다 표현되지 않았던, 다수의 '피해-가해자' 관계가 피해자로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고, 안준호만큼 정의롭지 못하고 메일 빌런 황장수(신승호) 패거리만큼 악랄하지도 못한 절대다수의 시시한 이기주의자들이 폭력의 악순환을 만들어가는 모습도 담아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군필자들이 자기연민으로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 복무기간에 그런 적이 없었나 되돌아보며 자기반성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D.P.' 시즌2가 이전 시즌보다 더욱더 윤리적이거나 성찰적으로 만들어야만 한다고 무작정 강요할 순 없다. 이건 작품이 아닌, 군 조직과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다. 내재된 폭력 속에서 안준호처럼 선의를 유지하고 부조리에 저항하는 수단이 존재하는 날이 오는 게 모두가 원하는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그림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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