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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럽여관 Nov 30. 2021

[스타트업 저널 #1] 프롤로그

문송한 언어학도의 스타트업 창업 분투기

2021년의 끝자락에서 한 해를 돌아보며 회사의 성장 그리고 나의 성장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먼저 나는 학사로도 모자라 석사까지 영어학을 공부한 언어에 미친 사람, 아, 이게 아니라, 언어학도였다. 그리고 경영학도 찔끔(부전공) 공부했다. 언어란 게 참 공부하면 할수록 재밌는 구석이 있어서 석사를 하면서 실은 박사과정이 하고 싶기도 했고, 더 이상적으로는 어디 연구실에 들어가서 맨날 논문 읽고 실험 아이디어 구상하고 실험하면 좋겠다는 실없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지.


결국, 유학의 장벽, 우리나라 대학원의 현실 그리고 경제적 자립에 대한 욕망의 삼박자가 합쳐져 취직을 했다.


외국어 교육에 특화된 회사에서 영어 교재를 연구, 기획, 제작하는 일을 했다가, 도서 저작권 에이전시에서 에이전트로 일하며 수출입 판권을 소개, 판매, 관리하기도 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시력과 체력과 맞바꾼 이 두 직무의 경험이 스타트업을 하면서 요긴하게 쓰였기 때문. (아, 정말 무의미한 경험이란 없다.)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 밖에서 살 궁리를 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던 타이밍에 현) 공동창업자이자 전/현) 친구가 한국어 관련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며 접촉을 해왔다. 내가 또 아이디어 내는 거 좋아하는 걸 어찌 알고, 언어가 들어가면 일단 들어보는 걸 잘도 알고. 


처음엔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 중 하나를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나는 언어학 백그라운드로 콘텐츠를 만들고, 너는 웹 개발을 하고. 일단 필요한 최소 인원은 있다는 순진한 생각.... 회사 이름도 고심해서 짓고, 열심히 DB도 만들고, Y Combinator의 스타트업 스쿨 온라인 강의도 듣고 하면서 점차 비즈니스 마인드를 깨워나갔다.


내 모국어를 공부하면서 나는 계속 영어학 연구 환경과 비교하게 됐다. 영어학은 읽을 논문이 너무 많아 무엇을 읽을지 리스트업하는 게 일이었는데, 한국어는 원하는 연구 결과를 찾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영어는 하루가 멀다고 온갖 교재가 나오고 또 나오는데, 한국어 교재는 대부분 아직도 낡아 있고 업데이트가 필요했다. 한국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한국어 학습자는 일단 정확한 정보를 찾는 것부터가 문제였고, 학습 자료를 구하는 것도 일이었다. 


외국어를 어느 수준까지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 거다.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건 더 넓은 세상을 읽게 되는 일이고, 그것이 또 삶에서 더 나은, 많은 기회를 주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한국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에게 한국어는 꿈을 이루는 수단이고, 세상을 더 또렷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시장 조사를 하고,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점점 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명확히 보였고, 해결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4월에 정부 지원 사업 하나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자를 내고 대표가 됐다. 공식적으로 나는 CEO, 공동창업자는 CTO라는 직함을 달았다. 난 사업 관련 행정, 스타트업 교육, 학습 콘텐츠/마케팅 콘텐츠 제작, 서비스 기획, 지원사업 지원/발표 등의 업무를 하게 됐다.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어갔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베타 사이트를 런칭한, 아주 작은 프로젝트 같아 보였던 우리는 이제 만 명이 훌쩍 넘는 유저가 함께하는 플랫폼이 되었다.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아주 적은 인원이 아주 많은 일을, 아주 뜨거운 마음으로 이뤄내고 있다.  


1월엔 알지 못했던 MAU, Churn rate, Retention 따위의 용어를 이제 김밥, 만두, 김치 수준으로 말할 수 있다. 돌아보면 이렇게 많이도 배웠구나, 이렇게나 많이 성장했구나 싶지만, 분명 아직도 모르는 게 태산일 거다. (뭘 모르는지 모르는 게 제일 위험한 상태.. 아?)


다만, 자꾸 더 진지해지는 마음으로 리더의 자질에 대해 고민하고, 고객을 생각하고, 조직 문화를 생각하고, 동시에 무수한 실무를 쳐내고 있다. 데스밸리의 압박과 야크 쉐이빙의 조롱 사이에서.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고, 목표도 멀지만, 꿈은 계속 창대하다. 


그래도 스타트업 생태계에 발을 들이고, 돌아가는 구조를 조금은 알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와 관련한 무수한 상념이 모두 휘발되기 전에 기록하려고 한다.  


문송한 시대라고들 하지만, 인문학이 다루는 것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사업, 창업에 뜻이 있는 누군가에게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가 넘치는 누군가에게

스타트업의 세계에 발을 들일지 주저하는 누군가에게

아니면 그냥 타인의 고생담을 즐겨 읽는.. 누군가에게


읽히면 좋겠다. 실낱같은 도움이라도 되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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