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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비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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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Jan 10. 2019

송혜교 걱정하는 엄마 때문에 한바탕 했습니다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송혜교, 쟤는 왜 결혼 안 한다니. 큰일이다."    


송혜교가 동료 배우 송중기와 결혼 발표를 하기 전이었다. 어느 날, 엄마의 이 한 마디 때문에 아침부터 엄마와 한바탕한 적이 있다.


송혜교가 해외 한국 역사 유적지에 한글 안내서를 제공한 데 이어서 삼일절을 맞아 '해외에서 만난 우리 역사 이야기-도쿄편' 안내서 1만 부를 도쿄 전역에 배포했다는 뉴스를 보고, 흐뭇해서 내가 "송혜교 요즘에 좋은 일 많이 하네" 했더니 엄마가 느닷없이 송혜교 결혼 걱정을 한 것이다. 전혀 맥락 없는 말에 황당해서 한 마디했다. 


"엄마, 여기서 결혼 이야기가 왜 나와? 자기 일 잘 하면서 좋은 일도 하고 잘 사는 배우한테 결혼 안 해서 큰일이라니. 결혼 안 한 게 왜 큰일이야?"    


내 말에 뜨끔했는지, 아니면 가시가 있었는지 엄마는 이럴 때마다 주제와 상관없는 인신공격을 한다.    


"그런 말도 할 수 있지, 그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살까? 넌 이런 이야기 나오면 예민해져서 왜 그래?"    


"엄마, 나나 엄마나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한테 그런 말 들으면 피곤해했잖아. 내가 들어서 싫은 말은 남한테도 하지 말아야지."    


기승전-결혼 사회    


칠십 넘은 노인이 어찌 말로 나를 이길쏘냐. 이내 시무룩 모드를 장착하시더니 '괘씸한 년, 나 마음 상했다'는 기운을 마구 뿜어대신다. 내 생각에는 변함없지만, 엄마는 결혼 안 하면 큰일인 세상을 사신 세대인데, 내가 과했다 싶어서 사과를 했다.    


"엄마, 미안해. 내 말에 마음 상했으면 풀어. 앞으로 조심할게."    


그러자 아이마냥 "앞으론 그러지 마." 그러신다. 웃으면서 엄마 방의 화장실 전구 나간 것을 고쳤다고 다시 한 번 명랑하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현관문을 나서는 내 뒤통수에 대고 묵직한 펀치 한 방을 날리신다.    


"너 요즘 일도 없는데 전구 달고 그런 일 쪽으로 알아봐."    


내가 졌다.     


지금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데도, 엄마가 보기에 출퇴근을 하지 않으면 '사실상 백수'인 거다. 아무리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좋은 일 하면서 자신만의 생을 충만하게 살아도 '결혼 안 하면 큰일이다'라는 의식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남들 가는 대세의 길에서 어긋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부모 세대의 인식을 내 어찌 바꿀 수 있으랴. 결혼을 해도 다음 순서인 ‘자식도 안 낳고“라는 말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요 근래 송혜교가 나오는 드라마 <남자친구>를 보더니 아니나 다를까, ”쟤는 왜 아직 얘를 안 낳았다니“하신다. 입이 근질거렸지만, 이번에는 잘 참았다.

      

"결혼 안 하면 큰일이다"라는 말에 엄마 말대로 예민해지고, 까칠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그런 말들과 시선에 허허실실 넘기면서 살아왔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한숨 돌리지만, 나 아닌 다른 여성들에 대해 그런 시선을 보는 데에는 좀 발끈하게 된다.


그동안 그런 말들에 난타 당하면서, 발끈하면 노처녀 히스테리라 욕먹고, '결혼해서 애 낳아보지 않으면 얘'라는 등 염려와 걱정을 빙자한 무례한 독설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기-승-전-결혼. 이라는 가치관 속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결혼을 안 하면 모자라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치환되는 편견은 얼마나 부당하고 폭력적인지.  그게 어디 결혼에 국한될까냐마는, 남들이 다 가는 대세의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삶을 살면 못 견뎌하는 경향성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되받아칠 수 있는 싸가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도 그런 편협한 시선에 대한 비겁한 방관자였고, 대세에 얼른 합류하고 싶어 종종 거리는 조급한 수용자였다. 그랬던 게 못마땅하고 불만이어서, 또 내 몸에도 어느새 젖은 먼지처럼 들러붙은 그런 가치관들을 털어내고 싶어서 조금은 더 까칠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이 책은 일본의 저명한 여성 학자인 우에노 치즈코와 사회학자이자 시인인 미나시타 기류의 대담집이다. 두 사회학자의 질문은 간단하다. "싱글로 혼자 지내는 게 대체 뭔 문제일까요?" 두 사람이 찾은 원인 중 하나는 바로 관습이다. 때가 되면 결혼하는 게 정상이고, 남녀가 결혼해야 아이를 낳고 그래야 대가 이어진다는 관습.     


이 관습과 충돌하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응원이 가득한 책을 보며, 한없이 유쾌해졌다. 한편으론 그동안 관습의 잣대로 휘두른 수많은 펀치들 속에서도 살아남은 스스로가 기특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사실 처음에 이 책 제목을 보고 껄껄 웃었다. 내용도 좋았지만 제목만으로도 바로 이거다 싶었다. '그게 어쨌다구요?'의 정신.    


사소해 보이지만, 편견에 대해 이렇게 한 마디씩 할 때 사회는 느리더라도 조금씩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지 않는 생에 대해 비정상으로 보거나 결핍된 존재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려는 편견에 대해 "그게 어쨌다구요?"라고 되받아칠 수 있는 용기를 좀 장착하려 한다.            



신소영 소속프리랜서 직업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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