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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May 20. 2020

무의미란 곧 자유의 터, <인간의 굴레에서>

고전소설3

*스포일러 있음

1,2권 합해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어찌 정리하나 막막했지만 역시 그저 배운 점을 정리했다. 책 하나에 신의 존재를 묻는 종교, 간질거리는 짝사랑, 치정 로맨스, 죽음과 예술에 대해 고찰하는 성장, 평화로운 일상... 그야말로 인생이 다 담겨 있다.



은근히 웃기다

서머싯 몸은 스스로를 대중작가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현웃 터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고전이 주는 고고하고 진지한 이미지와는 딴판이었다. 그는 그저 말하고 싶은 것을 재미있게 이야기할 줄 아는 <이야기꾼>인 것에 만족하고 그것이 자신이 글쓰는 목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세랑 작가님이 생각나는 부분). 다른 것보다 문체의 수련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이유가 알기 쉽고 단순하고 편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였단다. 정말 존경스럽다. 다음과 같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진지하고 섬세한 감수성으로 묘사하니 웃음이 터질 때가 많다.

프로일라인 헤트비히의 애창곡은 <이히 리베 디히(당신을 사랑해요)>였다. 필립은 발코니에서 그녀와 별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노래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꺼냈던 것이다. "이히 리베 디히-"

독일어가 서툴러서 적당한 표현을 찾느라고 필립은 말을 멈췄다. 그런데 말을 잇기도 전에 프로일라인 헤트비히가 불쑥 말을 받고 나서는 것이었다. "아, 지 뮈센 미어 니히트 <두> 사겐 -- 제게 이인칭 단수로 말해선 안 돼요." (친밀한 표현이 아니라 예의를 갖춘 표현을 가르쳐줌으로써 은근 철벽 친 것)

온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상대방을 그처럼 허물없이 부를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무슨 생각을 말하려던 것이 아니라 그저 노래 제목을 언급하려던 것뿐이었다고 털어놓는다는 것도 좀스럽게 여겨졌다.

"... 딴 사람을 사랑할 순 없어요. 헤르만과 정식 약혼을 한 건 아니지만요. 전 이미 그이의 신부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필립은 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마치 퇴자 맞은 구애자나 된 것처럼 말했다. "행복하시기 바라요."

코미디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우연이 겹친 사건을 담담하게 묘사할 때 완성되는 것일까?



마음속 깊이 꽁꽁 감춰둔 마음을 용기 있게 그려내다

주인공 필립이나 그가 사랑한 여자 밀드레드를 비롯해 많은 등장인물들에게서 나를 보았다. 인생의 순간순간 느끼는, 그러나 숨기고 싶은 추한 모습들. 드라마나 소설의 묘미인 것 같다. 내 추함이 투영된 주인공의 찌질한 모습을 통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는 것.


-너무 좋아하지만 자신이 받은 상처 때문에 자존심이 앞서 상대를 괴롭혀주고 싶은 어리석은 마음

-부푼 꿈으로 떠난 외국 유학길이지만 늘 혼자 다녀야 하는 것에 그만 신물이 나는 마음

-성인이 되어서도 옭아매려는 보호자를 향한 깊은 무력감과 반발심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은근히 보상받고 싶은 마음

-막 전문가의 세계에 발 들인 신입이 주워들은 말로 한껏 뽐내고 싶은 마음

-대상이 없을 땐 사랑에 빠졌다가 막상 눈앞에 나타나면 단점이 눈에 띄어 망설여지는 마음


이 모든 섬세한 감정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특히나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밀드레드가 필립의 가장 친한 친구 그리피스와 눈이 맞아 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필립이 오히려 자기 돈을 쥐여주면서 갔다 오라고 부추기는 장면이었다.

뭔가 한껏 추잡한 짓을 하고 싶은 욕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시궁창에서 뒹굴고 싶었다. 전 존재가 짐승이 되고 싶었다. 땅바닥을 기어 다니고 싶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비슷한 감정 묘사를 본 적이 있다. 눈이 홱 뒤집히는 분노, 지하 3500미터 아래에서부터 하얗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맞닥뜨리면 어찌할 바를 몰라 자기 몸이라도 마구 난도질하고 싶어 진다. 그 자기 파괴적인 감정을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야기를 제대로 쓰려면 이런 재미난 심리를 잘 꿰뚫어야 한다. 누구나 상상할 순 있다. 이런 상황에선 이럴 거야, 저런 상황에선 저럴 거야. 내 연인이 내 제일 친한 친구와 사랑에 빠지면 당연히 불같이 화를 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일차원적이다.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전혀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쓰려면 경험을 많이 하고 연륜이 쌓여야 하는가 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뿜어내는 비정상적인 에너지

위의 연장선상이긴 한데, 사랑에 빠진 사람의 감정도 정말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냥 '사랑에 빠졌으니 행복하다 이 세상은 꽃길이다>_<' 이런 게 아니라 비참한 결말에 이르게 될지라도 너의 옆에 있고 싶다, 하는 처절함이 느껴졌다. 깊이 사랑할수록 아이러니하게 아픔이 커진다.

그녀에게 제 마음을 온통 바치는 것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를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저 보통으로 대하면서 가슴속에서 끓고 있는, 그 걷잡을 수 없는 정열을 절대 내보이지 않아야 옳았다. 그녀가 이쪽의 약점을 이용하려고 들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신중해질 수가 없었다.
분별이 있는 남자라면 마땅히 노라를 택하리라. 밀드레드와 함께 있는 것보다 노라가 그를 훨씬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것. 문제는 그가 지금 온 영혼을 바쳐 밀드레드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라와 행복해지고 싶기보다 밀드레드와 불행해지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 정주행 한 <하트 시그널 2>에서 김현우가 한 말이 생각났다. 왔다리갔다리 변덕 때문에 많이 욕먹긴 했지만 그의 마지막 말만은 계속 잔상처럼 남아있다.

마음이 그런데 어떡해요.

이게 정말 로맨스의 키포인트인 것 같다. 머리로는 끝을 다 알지만 결국 마음을 이길 수 없는 것. <하트 시그널 3> 박지현 역시 첫 만남에 천인우에게 반했지만 누군가에게 깊이 빠져버리는 게 두려워 외면했다. 이런 뒤틀린 지점에서 사람들은 예상치 못했던 감정을 기억해내고 공감한다.


후반 즈음에 가면 두 권에 걸친 밀드레드를 향한 지긋지긋한 열정이 희미해지고 필립은 자신의 소소한 일상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부분이 아주 편안했다.

필립은 정말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주변의 공기를 새삼스레 들이마셨다. 마치 그 공기를 처음 마셔보는 사람처럼. 이제 어린애처럼 세상 만사가 ㅏ냥 즐거웠다. 그는 정신나간 그 기간을 육 개월의 중노동형 복역 기간이라고 불렀다.
모든 게 아득한 옛일 같았다. 그러면서 필립은 지난날의 자신에 대해 웃음이 나왔다. 이제 밀드레드에게는 한없이 연민만이 느껴질 뿐 다른 감정은 없었다.... 환자가 없을 때, 필립은 말털 덮개를 씌운 소파가 두 개 놓여 있고 가스 등불이 너물거리는 응급실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게 즐거웠다.


로맨스 장르를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사랑에 빠지는 걸 그다지 반기진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 평온한 상태일 때 생활도 정돈되고, 바깥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비로소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인생을 끌고 가는 느낌이다. 지나고 나서 그때 그 사람과 이뤄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영원하지도 않을 사랑에 나를 내던지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 많다.



괴롭기만 한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

책이 지속적으로 던지는 화두가 하나 있다. 인생에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인간의 굴레에서>에서는 꽤 많은 등장인물들이 죽는다. 필립은 그들의 죽음을 보고 한 번도 빠짐없이 허무함을 느낀다. 젊은 시절 얼마나 꿈과 열의에 반짝였느냐와 상관없이 마지막 순간 눈길이 머무는 곳은 그들의 찬장에 더럽게 먼지 쌓인 접시다.

가슴 아프게 느껴진 것은 패니의 헛된 노력이었다. 그녀보다 더 열심히, 더 성실하게 노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을 믿었다. 하지만 자신감이란 별 소용이 없음이 분명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죽으면 그뿐이다. 필립도 성직자에서 회계사, 화가, 그리고 의사까지 오랜 세월을 돌아 그의 인생을 찾았다. 한 때는 밀드레드에게 홀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노숙자가 되어 굶어 죽을 뻔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선택을 할 때마다 그가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필립이 처음부터 지름길을 알아내 의사가 되었더라면, 밀드레드를 멀리 했더라면, 하고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인생이 몇 번 다시 반복된다고 해도 그는 뺑 돌아 지금의 위치에 정착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때 그때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여 원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그래, 거기에서 나오는 결론은 뭔가?" 헤이워드가 물었다.
"글쎄요. 후회는 무익하다는 것 정도겠죠. 우유를 엎지르고 울어야 소용없다는 겁니다. 그 우유를 엎지르는 데 우주의 온갖 힘이 작용했을 테니 말이에요."

그는 자신이 근무한 병원의 첫 날을 이렇게 묘사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비극도 희극도 아니었다.... 다원적이고 다양하다고 할까.... 이곳에서는 불쌍한 소녀를 공포와 수치로 몰아넣으며 생명의 탄생을 진단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선도 악도 없었다. 사실만이 존재했다. 그것이 인생이었다.
... 도대체 살아서 뭐 한다는 말인가?... 그는 늘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일만 해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왜 이런 비참한 실패를 맛보아야 한단 말인가.... 만사가 순전히 우연이란 말인가.... 해답은 분명했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현자는 임금에게 사람의 역사를 단 한 줄로 줄여 말해주었다. 그것은 이러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생이 풀리지 않는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세상을 원망할 것도 없다. 세상이 날 버려서도 아니고 내가 덜 노력해서도 아니다. 세상은 내가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냥 인생이 흘러가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그러나 의미가 없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모든 선택은 내 인생의 고유한 무늬로 새겨지기 때문이다.

직조공이 양탄자의 정교한 무늬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았듯이,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또 사람의 행동이 사람의 선택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고 믿어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삶도 나름의 무늬를 짜고 있다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 종말이 다가오면 그는 무늬의 완성을 기뻐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품 이리라. 그 예술품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자기뿐이라 한들, 자신의 죽음과 함께 그것이 사라져 버린다 한들 그 아름다움이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립은, 끝없는 노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에게 삶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저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듯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것이리라.... 삶이 무의미하다면 그것을 별로 두려워할 것도 없을 테니까. 필립은 이상한 힘을 느끼며 삶과 마주하였다.

고전을 요즘에서야 제대로 읽는데, 읽을수록 위로가 된다. 어쩐지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생각났다. 꾸며지지 않은 지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하는 게 닮았다. 조금 밝은 색감의 분위기로 삶의 허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인생의 의미를 믿게 해주는 예술 작품

소설은 필립의 유년시절부터 죽 따라가며 그가 삶의 이유에 대해 고민하다가 끝내는 초연 해지는 과정까지 대장정을 그려낸다. 결국 사람은 이 세상에 그저 던져졌을 뿐이고 얼마나 노력하고 무슨 선택을 하든 결과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그저 자기 좋을 대로 자신만의 인생을 꾸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철학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책의 후반부 즈음 주인공 필립이 이 허무주의 속에서 반짝 희망을 느끼는 장면이 있다. 어떤 화가의 그림을 보고 나서다.

필립은 <있는 그대로의 삶>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그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깨달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여태껏 경배해 온 리얼리즘보다 더 나은 것이 여기에 있다고 느껴졌다.... 그것은 삶의 다양함을, 삶의 활력을, 아름다움과 추함, 고매함과 비열함을 모두 받아들였다.... 사실들에 더 강렬한 빛을 던져 그것들을 다른 것으로 변모시키는 리얼리즘이었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우연에 맡길 필요가 없다는 것, 사람의 의지란 강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화가는 누군가에게 이런 장대한 깨달음을 주기 위해 그림을 그리진 않았을 거다. 그저 자신이 행복을 느끼고 좋다고 생각하는 바를 진심으로 그렸을 뿐이다. 그 개인이 진심이었기에 필립도 그림을 보며 감동을 넘어 희망을 느꼈다. 이게 결국은 드라마를 비롯한 문화 예술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 아닐까? 견딜 힘을 주는 것. 변하지 않을지라도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해주는 것. 그 작은 차이가 살아갈 힘을 주니까.



모든 결함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기나 긴 시간 끝에 필립은 평생 저주해왔던 자신의 발목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다.

불구 때문에 성격이 비뚤어졌음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불구 때문에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는 내면 성찰의 힘을 기를 수 있었음도 아울러 알고 있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삶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몸에든 마음에든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다.... 이 순간 필립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 성자와 같은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맹목적인 우연의 무력한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한 가지 분별 있는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고 잘못은 참아내는 일뿐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글이 너무 길어져서 딱 한 명만 꼽아보자면 크론쇼다. 그는 화가의 꿈을 좇다가 결국 주정뱅이가 되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현실주의자들이 자랑스럽게 들먹일만한, 생업보다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산 사람의 최후였다.

다행히 나는 민감한 감각을 타고난 사람이라 혼신을 다하여 관능을 충족시켜 왔다네. 이제 그 값을 치러야 하겠지. 치를 준비는 되어 있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마치 영화 <라라 랜드>에서 미아가 오디션으로 부르는 노래에 나오는 이모 같다. 라라 랜드를 극장에서 다섯 번 봤는데,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I remember that she told us she jumped in the river once, Barefoot
She smiled, Leapt, without looking
And tumbled into the seine
The water was freezing
she spent a month sneezing
but said she would do it, again
...
She captured a feeling
Sky with no ceiling
Sunset inside a frame
She lives in her liqour, and died with a flicker
I'll always remember the flame

열정과 자유를 택하고 감기(=병뿐 아니라 어려운 생활 같은 비유도 될 수 있을 듯)를 얻었지만 시간을 되돌린대도 똑같이 하겠다. 그런 후회 없는 지조를 가진 캐릭터는 존재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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