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 존재의 사랑

영화 '그녀'를 본 뒤

by 손정빈

'인공지능 OS(Operating System)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2013년에 내놓은 영화 '그녀'(원제:her)를 이렇게 요약해놓은 뒤 이 문장을 고쳐 적었다. '인공지능 OS와 사랑에 빠졌다가 이별한 어느 남자에 관한 이야기.' 이별이라는 단어를 추가했지만, 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설명인 것 같아서 한참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 후에 이번엔 이렇게 썼다. '시련의 아픔을 가진 남자가 OS와 연애를 했다가 또 한 번 시련당하는 이야기'라고. 이 문장 역시 부정확하다는 느낌이 들어 몇 가지 단어를 지웠고, '그녀'를 설명하는 그럭저럭 맘에 드는 문장을 갖게 됐다. '똑같은 이별을 두 번 겪은 남자에 관한 이야기.'


편지 대필 작가 테오도르(왓킨 피닉스)는 외롭고, 외로워서 무기력하다. 원인은 이혼인 것처럼 보인다. 전처를 매우 사랑했으나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겼고, 갈등을 봉합하지 못 하고 갈라서게 됐으며, 테오도르는 이 과정에서 있었던 일련의 언행을 후회하고 자책하는 듯하다. 그러다가 인공지능 OS를 알게 된다.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에게 귀기울이며 당신을 알아줄 존재." 테오도르는 사만다(스칼릿 조핸슨)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이 OS 인격체와 대화를 나누면서 하루하루 특별한 감정을 교류하게 되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되기에 이른다. 싸울 일도 헤어질 일도 없을 것만 같은 관계. 그러나 영원한 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테오도르와 사만다도 헤어지게 된다.


그러니 OS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도, 사랑했다가 이별했다는 것도, 시련당한 아픔을 OS와의 사랑으로 달래다가 또 시련을 당했다는 것도 모두 맞다. 다만 가장 중요한 단어들로 '그녀'를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나는 '똑같은' '이별' '두 번'이라는 말을 반드시 넣은 한 문장을 만들 것이다. '똑같은'이라는 말은 영화 속 비중은 다르지만 테오도르가 겪은 두 차례 이별을 동등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걸 의미하고, '이별'을 택한 이유는 이 영화가 이별로 시작해 이별로 끝날 만큼 사랑보다 결별을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서다. 테오도르에게 첫 번째 이별과 두 번째 이별은 유사하지만 완전히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두 번'도 중요하다.

먼저 첫 번째 이별. 테오도르와 전처 캐서린(루니 마라)에 관한 정보는 많지 않지만, 이들의 결별 경로를 추적해보는 건 어렵지 않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두 사람은 사랑했고, 결혼했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두 사람이 각각 성장하면서 다른 길을 가게 됐다는 게 문제다. 아마도 캐서린은 어느 순간 테오도르의 품을 벗어나게 됐고(집안 환경이 좋지 않았던 캐서린은 테오도르와 그의 가족에게서 안정감을 느꼈다는 대목이 있다), 자신만의 세계를 서서히 구축해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테오도르는 캐서린의 이러한 변화(성장)를 받아들이지 못 한 것으로 추측된다. 달라졌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했을 수 있고, 이 변화를 수긍하지 못하는 자신이 밉기도 해서 "(캐서린에 대한) 감정을 숨긴채 살"았다. 그래서 헤어졌다.


이제 두 번째 이별. 테오도르는 인간, 사만다는 OS이니까 둘은 완전히 다른 존재이지만 이들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건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테오도르를 통해 세계를 경험하며 진화하던 사만다가 자신에게 육체가 없음을 자각한다는 것이다. 사만다는 좌절하지만, 이내 자신에게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육체가 없는 인공지능인 덕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달은 것. 가령 그녀는 수천명과 동시에 대화할 수 있고, 수백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 사만다는 더이상 테오도르라는 한 명의 인간 안에 머무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업그레이드'(성장)한 뒤 테오도르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렇게 테오도르는 또 한 번 실연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테오도르가 경험한 두 차례 이별의 양상은 대칭을 이룬다. 캐서린과 사만다는 각각 변화·업그레이드했고, 테오도르는 그런 연인을 차례로 떠나보냈다. 다른 게 있다면 캐서린의 성장을 받아들이지 못 했던 테오도르가 사만다의 성장은 받아들였다는 점이다(이건 사랑의 크기와는 무관할 것이다). 캐서린은 인간이고, 사만다는 OS이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테오도르의 두 번째 이별 대상이 OS인 이유는 진정한 감정 교환이 인간끼리만 가능한 사건이라는 걸 주장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아닌 존재는 결코 나와 같을 수 없음을 더 명확하게 상징하기 위한 거라고 봐야 한다. 흔히 '좋은 이야기'로 언급되는 것들은 독특한 소재를 통해 보편적 주제로 나아가기 마련인데, '그녀'가 OS와의 사랑을 끌어들인 이유가 이렇다.


나는 네가 될 수 없고, 너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어떤 위대한 사랑으로도 다른 두 사람을 온전히 하나로 묶어 놓는 건 불가능하다. 캐서린과 사만다가 각자 자신의 세계를 찾은 것처럼 인간이든 OS이든 모든 존재에게는 각각 하나의 우주가 있고, 서로 다른 세계를 어느 한쪽으로 편입하거나 혹은 두 개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건 불가능하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테오도르는 이걸 인정하지 못 해 괴로웠다. 캐서린은 테오도르에게 말한다. "내게 바란 게 그런 거였지. 밝고 행복하고 활기 넘치고 마냥 낙천적인 아내. 난 그게 안 되는데." 이런 사랑 혹은 관계를 슈퍼히어로식으로 표현하면 '유니버스'(universe)가 아닌 '멀티버스'(multiverse)의 존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이 '멀티버스 사랑'을 유지하는 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너무 자주 언급돼 이제는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 하는 말 하나를 꺼낼 차례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점차 성장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돼 가는 그 모습 또한 사랑하는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니까 말이다. 계속 함께할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혹여나 상대가 떠나가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떠나겠다는 그 결정 또한 내가 사랑한 사람의 모습이니까. 사만다를 보낸 뒤 테오도르는 캐서린에게 편지를 쓴다. "네게 사과하고 싶은 것들을 천천히 되뇌고 있어. 서로를 할퀴었던 아픔들. 너를 탓했던 날들. 늘 너를 내 틀에 맞추려고만 했지. 정말 미안해."

두 번의 이별 과정에서 캐서린과 사만다만 성장한 게 아니다. 테오도르도 성장했다. 사만다에게는 접근할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그만의 세계가 있다는 걸 테오도르도 이제 안다. 이건 사만다가 OS이고 테오도르가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한 격차가 아니다. 캐서린과 마찬가지로 사만다도 그저 테오도르와 다른 존재였을 뿐이다. 슬프지만,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 하면 사랑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존재라는 것 그 자체가 캐서린이고 사만다이기 때문에.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헤어지고나서야 캐서린과 진짜 이별할 수 있게 됐다. '누가 누굴 아프게 했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그때의 캐서린도 그때의 테오도르도, 그게 그때의 그들이었으니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만다가 말하지 않았나. "마음은 상자가 아니다. 다 채울 순 없다."


이건 너무 수동적인 사랑의 방식이 아니냐고 지적할지도 모를 이들을 위해 최근 방송된 드라마 '봄밤'에 관해 짧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안판석 감독이 연출하고 김은 작가가 극본을 쓴 이 멜로 드라마는 언뜻 보면 사랑에 실패한 남녀가 우연히 만나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너무나도 평범한 로맨스물처럼 보인다.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두 주인공이 사랑을 완성해가는 방식이다. 보통의 드라마는 사랑을 '상대를 위해 내 모든 걸 바친다'는 식의 이타적인 감정으로 그리지만, 안판석과 김은은 사랑을 이기심으로 만들어진 어떤 상태로 여긴다. 이를 테면 '상대를 위해 내 모든 걸 바치는 건 궁극적으로 나를 위해서'라는 것. 이런 형태의 사랑이 더 성숙한 관계를 이뤄낼 수 있다고 '봄밤'은 믿는 것처럼 보였다.


테오도르는 캐서린을 탓했다고 했다. 이건 내가 쏟아낸 마음에 네가 정당한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는 비난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상대에게 행복을 받아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 지금 여기 내게 찾아온 사랑을 마주하고 해야 할 일은 '봄밤'의 두 주인공처럼 두려움 없이 그저 최선을 다해 사는 일이다. 언젠가 헤어져야 하는 날이 오면 또 한 번 있는 힘껏 슬퍼하며 보내주면 된다. 이건 나를 위한 사랑이었으니 떠나가는 상대를 비난할 게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 하면서 말이다. 테오도르의 말처럼 늘 함께했던 당신을 사랑했고, 그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


(글) 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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