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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Aug 23. 2024

[사랑의 하츄핑] 어른의 혼영 후기

우정 예찬가








‘혼밥’, 즉 혼자 밥 먹기에도 레벨이 있다고 한다. 온라인에서 돌아다니는 표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먹는 것은 최하위로 레벨 1이고, 김밥천국 등 분식집에서의 혼밥은 레벨 4에 해당한다. 이보다는 줄 서서 먹는 맛집이나 패밀리 레스토랑, 그리고 고깃집과 횟집이 더 상위 레벨이고,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은 바로 술집이다. 개인마다 이 혼밥 레벨 표에 대한 공감의 편차는 있겠지만, 요지는 혼밥에도 레벨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최근에 깨달은 한 가지는 ‘혼영’, 다시 말해 혼자 영화 보기에도 레벨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어차피 영화관이 다 같은 영화관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시간대나 요일에 따라 사람이 더 많을 때, 적을 때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혼영 레벨은 어떤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보겠다. 8월 들어 지금까지 영화관에서 총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첫 번째는 ‘트위스터스’이다. 일종의 재난 영화로 이미 혼영 경험이 있다면 딱히 거리낄 것이 없는 장르이다. 두 번째는 ‘에이리언 : 로물루스’이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SF ‘호러’ 장르이다. 집에서 혼자 보자면 얼마든지 보겠지만 영화관에서 혼자 보자니 다소 걱정이 돼 호러 마니아인 남동생을 끌고 갔다. 막상 보고 나니 호러 영화 좀 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혼영도 무리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것이 다름 아닌 ‘사랑의 하츄핑’이다. 그것도 혼자. 자식도, 조카도, 하다 못해 친구의 아이조차 없는 나다. ‘이 죽일 놈의 호기심’이 아니었다면 볼 생각조차 안 했으리라. 예매일 아침까지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도착한 상영관에는 당연히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게 된 영화는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사랑의 하츄핑'의 주인공 하츄핑



• 너의 친구가 되고 싶어


10살 생일을 맞아 자신의 짝꿍 티니핑을 찾아야 하는 이모션 왕국의 공주 로미. 하지만 로미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티니핑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로미 본인은 물론 부모님인 왕과 왕비의 걱정도 커져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로미는 한 책에서 우연히 전설의 티니핑인 ‘하츄핑’을 발견하고 그대로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하츄핑은 현재 악당 티니핑인 트러핑에 의해 저주가 걸린 위험한 섬에 살고 있다. 이로 인해 궁의 모든 사람들이 로미의 선택을 반대하지만 이미 하츄핑에게 마음이 사로잡힌 로미는 이른 아침 몰래 홀로 그 섬으로 모험을 떠난다.


책에서 하츄핑을 발견하고 모험을 결심하는 로미


그러나 로미는 우여곡절 끝에 섬에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티니핑의 공격을 받고, 다행히 리암 왕자와 또래 친구 마리의 도움을 받아 위험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로미는 두 사람을 통해 마을의 사연을 듣게 된다. 한때는 리암 왕자의 티니핑이었던 트러핑은 왕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아버지에 의해 쫓겨나고, 이에 상처를 받아 사람을 믿지 않게 됐다. 그 이후 트러핑은 저주를 걸어 마을의 모든 티니핑들을 거대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다만 트러핑과 가장 친했던 하츄핑만은 저주에 걸리지 않고 깊은 숲 속에서 혼자 살고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미는 하츄핑의 친구가 되고 마을을 구하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트러핑의 저주로 거대하게 변해 버린 다른 티니핑들



• 우정, 그리고 또 우정


언젠가 디즈니 공주들의 극 중 나이를 알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겨울 왕국’ 시리즈의 엘사와 안나만이 성인이고 나머지 공주들은 모두 미성년자였다. 하지만 디즈니 공주들의 나이는 우습게 만든 것이 바로 ‘사랑의 하츄핑’의 로미 공주이다. 그의 극 중 나이는 무려 열 살. 한국식 나이라고 치면 초등학교 3학년에 해당한다. 현실의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생각하니 영화 속 로미가 겪는 에피소드들이 가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정신을 가다듬고 떠올렸다. ‘사랑의 하츄핑‘의 주요 타깃 연령대가 몇인지를. 애니메이션을 현실과 엮어서 말이 되냐 안 되냐를 따지고 드는 나 같은 어른이 아님에는 분명하다.


비록 주 타깃층에서 한참 벗어난 나이임에도 영화 ‘사랑의 하츄핑’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영화는 디즈니 급 그래픽과는 비할 순 없지만 시종일관 화려한 비주얼로 눈을 사로잡는다. 물론 그 중심에는 귀여운 하츄핑이 있다. 제목부터 하츄핑이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티니핑의 존재는 미미한 편이지만 아쉽지 않다. 큰 화면 속 하츄핑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나오는 노래들은 어른이 듣기에는 가사가 다소 유치할지언정 지루할 틈은 확실히 없애준다.


마리와 리암 왕자


하지만 가득 채운 시청각적 자극 외에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화의 메시지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다름 아닌 우정이다.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아름다운 리암 왕자가 등장했을 때 잠시 멈칫했다. 설마 10살 짜리한테 로맨스를 들이미는 건가 싶어서. 게다가 왕자는 최소한 고등학생은 되어 보였다. 기우였는지 둘 사이에는 별 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대신 로미는 마리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마리는 처음 섬에 도착해 곤경에 빠진 로미를 구해주고, 로미가 하츄핑에게 구애(?) 하려 애쓸 때도 물심양면 도와준다. 그리고 선뜻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해 준다. 도대체 아이들만 두고 어른들은 어디 갔는지 모를 일이지만 둘의 관계는 훈훈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로미와 하츄핑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도 없다. 인간을 믿으면 안 된다는 트러핑의 세뇌로 인해 깊은 숲 속에서 오랜 시간 홀로 외롭게 지내던 하츄핑은 로미가 다가오자 경계하며 숨는다. 그러나 로미는 아플 때를 빼곤 매일 같이 하츄핑을 찾아와 선물 공세를 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친구가 되어 달라고 통사정을 한다. 이런 노력에 감복했는지 하츄핑의 마음도 결국 흔들리고, 마침내 하츄핑은 로미의 짝꿍 티니핑이 된다. 그 때문에 트러핑이 하츄핑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로미와의 사이를 방해하려 들지만 트러핑 역시 결국 왕자와의 오해를 풀고, 둘 사이의 관계도 회복한다.


트러핑의 세뇌로 인해 인간을 두려워 하며 홀로 지내는 하츄핑


하츄핑과 로미의 관계를 현실로 옮겨오면 어떤 관계와 비교할 수 있을까. 티니핑이 로미와 같은 인간이 아니고 그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관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각양각색으로 생긴 인간들과 달리 티니핑들은 약간의 디테일만 다를 뿐 하나 같이 귀엽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우정이라는 주제 외에 한 가지 메시지를 더할 수 있다. 트러핑과 왕자의 관계로 되돌아가 보자. 왕자에게 사랑받던 티니핑인 트러핑은 갑작스레 버림받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는다. 보호자에 의해 파양 되어 마음의 문을 닫는 반려동물들과 상황이 비슷하다. 반쯤은 농담이지만 트러핑과 왕자 사이의 사건에서 이러한 결론도 도출할 수 있다. 반려동물 입양은 신중히, 일단 입양하면 끝까지 책임 지기.


티니핑 시리즈를 좋아할 주 연령대의 아이들이야 말로 우정이라는 감정을 본격적으로 느끼고 키워갈 나이대라는 점에서 로맨스 대신 우정을 다룬 ‘사랑의 하츄핑’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성인들이 즐기는 작품들의 경우 우정, 특히나 여자들 간의 우정은 등한시하는 경향이 다 보니 하츄핑과 로미의 우정 예찬이 무척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하츄핑의 귀여움이다. 어른들 마저 홀린 하츄핑의 귀여움만으로도 영화 표값은 다 한 것이 아닐까.


마침내 친구가 된 하츄핑과 로미






사진 출처 : 메가박스

https://m.megabox.co.kr/movie-detail?rpstMovieNo=240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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