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된 청소부

동네 예술가 리뷰 -철원의 청소부 화가 정택인

by 오태현




세상에 대수롭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 속에 있는 보석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철원에 정택인이란 이름의 청소부가 있다. 정식 환경미화원은 아니다. 적은 수입으로 근근이 사는 생활보호대상자, 공공근로 미화원이다.


청소구역은 집에서 가까운 작은 골목길, 늘 힘들게 신철원리의 거의 모든 길 큰길 건너 지포리까지 다니며 쓰레기를 줍고 빗자루질을 한다. 남들은 잠깐 하는 청소를 혼자서 하루 종일 한다. 사고능력이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에 멈추어 있어, 동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소위 '동네 바보형'으로 알고 다.


읍사무소에서 한동안 골칫덩이 취급을 받았다. 요상한 행동 때문이었다. 자전거에 무언가를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면서, 약수터에 물레방아를 만들어 놓거나, 길가에 돌탑을 쌓고 소나무를 심었다. 교회 옆에 꽃밭을 만들기도 하고, 남의 집 앞에 해바라기를 심기도 했다. 복지계장이 나서서 "계속 이상한 행동을 하면 지원을 안 해주겠다."며 여러 번 엄포를 놓아 말려보려 했지만, 기행은 멈추지 않았다.









2년 전부터는 신철원리 용화천 다리 밑 둑 뒤로 한나절씩 사라졌다 나타나곤 했다. 이웃들은 처음에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조그마한 깡통 몇 개를 들고 다니는 걸 보며 그저 개울에서 물고기나 잡든지, 개천변에 채소라도 키우겠거니 했다. 평소에도 그랬으니 별로 이상할 것이 없었을뿐더러 사실 이웃들은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깡통이 페인트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청소부 정택인은 용화천 개울가에 상당히 크고 긴 벽화를 그려놓았다. 벽화를 본 사람들은 "꽤나 재주가 있네." 하며 신기해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초등교사인 염노섭 선생은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심상치 않게 여겨 세 명의 화가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세 화가는 하나같이 그의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며 "그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라."라고 했다.


염 선생은 그 길로 문구점에 달려 화구를 사서는 그에게 안겨줬다. 시골에서 구하기 어려운 캔버스는 수고로이 직접 구해다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마을 청소부 정택인은 50여 점의 그림을 그렸고, 그가 다니는 교회 교인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전시회를 열어주었다.


우리는 그저 동네에 치울 것 있으면 불러서 청소나 시키는 마음 착한 동네 바보로 알았던 그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특이한 행동이 두려워 거리를 두던람들 다가와 한 마디씩 말을 걸었다. 어떤 사람은 '철원의 피카소'라고 불러주었다. 전에는 늘 이상한 행동만 하는 모자란 사람으로만 취급했는데, 이제는 우리 곁에 살고 있는 순수하고 착한 예술가로 인정하게 됐다.









서양화가 이수 선생은 그를 보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너무나 재미있는 친구"라 했다. 그러고는 그에게 "철원의 바스키아"라고 이름 붙여주었다. 바스키아는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덕에 자유롭고 순수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정택인도 전혀 미술을 배우지 않은 데다가, 순수한 시절에 멈춰버린 그의 정서가 그림을 통해 참된 예술을 경험하도록 했다는 것이 이수 선생의 평가다.


비록 기술적으로 잘 그린 그림이거나 혹은 비싼 값에 팔릴 그림은 아니라도, 동네 사람들은 그 그림을 좋아했고, 정택인을 화가로 인정해 주었다. 그는 순수한 열정으로 자기 안에 있는 보석을 발견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했다. 그렇게 '청소부 정택인'은 '화가 정택인'이 되었다.














우리 곁에는 우리가 모르는 화가도 있고, 시인도 있고, 무용가도 있다. 사진가도 있고, 가수도 있고, 조각가도 있다. 대수롭지 않게 대하던 가족이나 이웃이 어느 순간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다. 세상에 대수롭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 안에 숨겨진 보석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시인 안도현은 연탄재도 함부로 차지 말라고 했다.


지금부터 우리 이웃들 중에 화가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시인, 무용가, 사진가, 가수, 조각가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안에 누가 있는지 찾아보라. 혹시 그 안에서 공책 한 귀퉁이에 낙서하는 바스키아를, 연애편지 쓰는 바이런을, 스마트 폰을 든 브레송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택인 꽃밭 | 정택인 집사님이 왔다 갔다 며칠 하시더니 교회 앞에 어느 날 이런 꽃밭이 생겼더군요. ^^*



글 중 '바보'라는 표현은 지적 장애우들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그동안 저를 비롯한 이웃들의 인식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반성하기 위해 적나라하게 쓴 것입니다. 혹시라도 마음이 불편하신 분이 없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소설 같은 스토리텔링을 위해 정택인 선생님과 염노섭 선생님, 이수 선생님의 존칭을 생략했습니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들이라 실제로 저는 이분들께 항상 존칭을 사용합니다.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도 여러분 안의 예술가를 찾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태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