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 가이드 리뷰 002
이 글은 두 번째 글입니다. 첫 번째 글을 먼저 읽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곡성 가이드 리뷰 001 "어둠의 제왕이 이겼다고 생각한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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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좌절감은 결코 낯설지 않다.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선량한 학생들과 탑승자들이 죽임을 당했고, 그들만큼이나 선량한 가족들이 아직도 고통을 당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그렇게 가슴 아파 눈물을 흘렸는데도 아직도 눈물이 난다. 또 얼마 전에는 뉴스를 통해 난민 어린이들이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참상을 접했다. 이 또한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른다. 도대체 그 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고통을 당한단 말인가?
세상에는 고통당하는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있다. 불의의 사건과 사고로 고통받는 사람들, 자기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전쟁에 매몰되어 죽어가는 사람들, 끔찍한 질병에 노출되어 죽어가는 사람들... 이런 고통은 인종과 연령과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물론 이런 류의 고통은 죄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살기 위한 몸부림에 질서가 깨지고, 증오와 폭력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한다. 이런 증오와 폭력이 원인이 되어 이차적인 결과로 죄가 생겨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라도, '고통이 먼저인가, 아니면 죄가 먼저인가?'라고 묻는다면 답은 당연히 '고통이 먼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그런 고통을 당할 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에게 "죄가 먼저였다."라고 말한다.
선량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죄 때문에 이런 큰 고통을 당하게 되는가? 영화의 주인공과 흡사한 외모를 가진 평범한 아빠로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감정이 이입되어 힘들었다. 어린 딸을 둔 아빠라면 모두 공감할 듯 싶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분명 '차라리 내가 당하는 고통이었으면 더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제발 감독이 저 어리고 해맑은 아이게만은 못되게 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도대체 무슨 큰 죄가 있어 그 여린 소녀에게 감당할 수 없을만치의 고통을 준단 말인가?
이런 마음을 품고 영화를 보면, 보는 내내 분노가 일어난다. 결국 고통이 선량한 사람들을 먹어치우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된다.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한다면, 이런 악이 판치는 내내 선은 어디에 있는가?' '악마가 판치는 세상에 도대체 신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신은 왜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당하도록 내버려 두는가?'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면 결국 선이나 선한 신의 존재에 대한 불신을 품게 된다.
영화가 말하는 대로 분명 '고통'은 '죄'와 무관하지 않다. 먼저 '죄'가 있었다. 그러나 그 죄는 결코 선량한 사람들의 죄가 아니다. 끔찍한 재난이나 전쟁들은 대부분 몇몇의 욕망과 이기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으로부터 죽음을 불러오는 죄를 만들어낸 것처럼, 최초의 살인자 가인이 동생보다 더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동생을 돌로 때려죽인 것처럼, 하나님처럼 되어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세력을 형성하려 했던 바벨탑 공동체가 온 세상의 소통을 깨뜨린 것처럼 말이다.
현대의 물질만능 시대에 돈으로부터 얻은 힘으로 세상의 군주처럼 군림하려는 이들이 정치나 관청과 결탁하여 선량한 이들에게 고통을 끼치는 일. 소수의 종교인, 정치인과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입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며 선량한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난민으로 떠돌게 하는 일. 그런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중에 부차적으로 만들어진 폭력과 질병으로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가 말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이 문제에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런 이기적인 욕망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물질 만능에 매몰된 욕심과 욕망. 인정머리 없이 서로를 향해 비난의 총칼을 겨누는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확신. 명예와 권력을 위해서는 편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는 비도덕성. 동기와 과정은 상관없이 성공만 하면 된다는 결과 지향적 사고를 가진 우리들은 결코 "죄가 없다."할 수 없다.
'곡성'은 악과 고통이 판치는 이 세계의 축소판이다. '곡성'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죄악의 결과들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허무하고 절망적이다.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안 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결론이 영화의 결말에 있지 않고 영화의 서두에 있다고 감히 주장한다. 아니, 꼭 그래야 한다. 이 영화의 결론이 연역적이 아니라면, 치밀한 구성과 상황 묘사, 연기자들의 혼신을 다한 열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좋은 영화가 아니다.
우리가 악과 고통을 보고 겪으며 세상에서의 그 존재와 영향력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또한 선과 행복의 존재와 영향력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의 후반부를 보며 절망에 빠지는 것처럼, 영화의 전반부에 드러난 결론, 즉 의심하지 못할 선의 존재와 일상 속에 묻어나는 따뜻한 행복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악은 있지만 반드시 선이 있으며, 고통이 있지만 반드시 행복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귀납적이 아닌 연역적으로 감상해야 한다. 영화를 다 본 후 다시 전반부를 곱씹어야 우리에게 희망이 돋아난다.
선과 행복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언제든 그 존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를 가만히 되짚어보라. 빛에서 어둠으로 끝나니 비극이지만, 뒤집어보면 어둠에서 빛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캄캄해도 우리의 실수와 실패, 그릇된 판단과 잘못된 결정들을 하나씩 하나씩 고쳐나가면 반드시 결국에는 빛으로 돌아가게 된다.
대부분의 고통은 죄로부터 기인한다. 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고통이 소수의 악인들로부터 나온다. 소수의 악인들은 만연한 이기심의 사회에서 정당성을 얻는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선량한 사람들의 고통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한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 속에서 의로운 분노가 일어난다. 그런 마음이 생겨났다면 거기에 마땅히 우리의 할 일이 있다. 우리는 마땅히 선량한 이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죄와 악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회든 제도든 간에 말이다. 이 땅에 다시는 그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나로부터 이기심을 버리고, 옳은 결정을 내리고, 우리가 속한 작은 공동체가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이끌고, 우리의 이 사회가 올바른 동기와 과정을 밟아 마땅히 그래야 할 결정을 하도록 헌신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은 영화를 보듯 남의 일 같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입에서 큰 '곡성'이 나게 될 것이다.
물론 영화를 거꾸로 보는 것보다 우리의 현실을 빛으로 바꿔가는 일은 훨씬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결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고통의 현실로 악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면, 선의 존재를 믿음으로 행복이 현실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커먼 그림자가 자꾸만 보인다면 뒤돌아서라! 반대편에서는 이미 찬란한 빛이 비치고 있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다 보니 글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이드에는 밑줄을 쳐 놓았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마도 밑줄 친 부분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실 줄 압니다. 혹시라도 영화를 보실 분들은 이 부분을 기억해 두시면서 보시면 조금 더 진지한 영화 관람이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각 장면의 메타포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 사실 저는 장면 하나하나에 모두 메타포나 큰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맥락과 행간을 읽는 것이 이 영화를 관람하는데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관점에서도 이 영화의 주제와 결론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에는 매우 치밀한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세부적인 이야기들은 이 영화의 관객 수가 천만이 넘으면 할까 합니다. 분명히 천만 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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