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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의 정치
by 김태은의 지난주 Feb 26. 2017

안희정을 위한 변명

쉰한 번째 지난주




식은 떡밥을 데우며


 논의의 수명이 짧아졌다. 며칠을 쉬었다가는 참전조차 불가능하다. 이른바 ‘식은 떡밥’은 환영받지 못한다. 유력한 대선후보의 발언이 연일 화제이더니, 이제 좀 잠잠해졌다. 봄기운이 스멀스멀한 일요일, 슬며시 또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잠든 아가처럼 이제야 겨우 새근새근 한데, 왜 깨우려 드느냐는 불편한 마음들을 짐작한다. 그런데 그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된다면? 그리고 만에 하나,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사람 잘 안 바뀐다. 지난주, 중요한 책무를 맡게 될지도 모르는 인물이 본인 그 자체라고 할 만한 화두를 던져왔다. 어떤 논의는 그 자체로 영속성을 지닌다. 혹은 지녀야 한다. 식은 떡밥을 데운다.









관점의 확립


[앵커]
오늘 논란은 하루 종일 지속이 됐습니다. 첫 질문은 이미 던진 셈이 됐는데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안희정/충남도지사]
정당정치와 정치를 오래 하면서 제가 깨달은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 누구의 주장이라 할지라도 그 액면 그대로 긍정적으로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의 본질을 들어가기가 훨씬 빠르다고 하는 경험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치 일반에 대한 또 대화에 대한 저의 원칙적인 태도를 먼저 말씀을 올렸던 자리였습니다.

- JTBC 뉴스룸 연속대담 안희정 지사 편 중 ¹


 그런 사람 있다. 큰 이야기부터 하는 사람. 거창한 담론부터 이야기를 푸는 사람 말이다. 그는 말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생각을 풀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진단은 그와 같은 사람에게만 국한하지는 않는다. 의식과 언어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 성과(‘사피어-워프 가설’ ² 등)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발언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의식의 저변과 밀접하게 융통함을 상기한다. 곧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다. 안희정 지사는 민주, 선의, 인권, 자유와 같은 아주 기본적이지만 거시적인 담론을 던지며 대화를 시작하고는 한다. 이는 그가 생각을 풀어나가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문제의 초점은 ‘발언’이 아닌 ‘사고’로 집약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발언의 옳고 그름이 아닌, 사고의 적절성, 혹은 한 발 더 들어가 사고의 시의성까지 함께 견주어 봄이 지극히 온당하겠다.






일관성


"지난해(2009년) 당 지도부가 '그동안 고생했다'며 재보궐 선거에서 기회를 줬지만 '감사하다'라고 말하고 참고 거절했다.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 통합의 그 꿈을 위해, 오늘을 위해 거절한 것이다."

- 2010년 10월 당시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의 충남지사 출마 선언 중 ³


 지극히 기본적임에도 희소하다는 이유로 각광받는 가치들이 있다. 특히,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논함에 있어 ‘일관성’은 그 본연 이상의 가중치를 부여받곤 한다. 어찌 되었건 모국어를 구사하는 정치인 중 일관된 정치 철학을 말하는 이는 드물기에, 상대적으로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자의 가치가 높게 매겨짐은 타당한 시장 논리로 여겨진다. 앞서 밝힌 2010년 10월 당시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의 충남지사 출마 선언에서 확인할 수 있는 ‘통합의 정치’와 관련된 발언으로 미루어 ‘대연정’이나 ‘선의에의 존중’과 같은 발언이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더 찾아보자.


 그는 도지사직을 수행하면서도 자유총연맹 60주년 기념대회(2014년)에 참석해 자유총연맹 회원을 “동지”로 부르며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지 충청남도 도지사와 충청남도 자유총연맹 회원들이 함께 손을 맞잡고 고민해 보자”라고 제안한 바 있다고 한다. 그리고 ‘충남 사회단체 대표자회의’(2014년 10월 발족)에 진보뿐 아니라 보수단체들의 참여를 끌어내기도 했다고 전한다. ³ 이상의 사실을 전해 듣자니, 안희정 지사의 최근 발언이 급조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즉, 짧은 고민의 결과물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이와 같은 행보는 1차 관문인 당내 경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진정성에 무게를 싣게 한다. 따라서 안희정을 위한 첫 번째 변명은 그가 단지 외연 확장을 위해, 그리하여 보수표를 모으기 위한 전략에 기인하여 위와 같은 논지를 전개함은 아니라는 확증이다. 이는 아마도 그의 ‘오래된 생각’ 일지다.


* 안희정 충남지사가 2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여성정치연맹 초청 대선후보토론회에 참석하려고 행사장으로 들어서며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현실성


 광장은 다시 묻는다. ‘오래된 생각’은 모두 환영받을 대상인가? 지금 저 치들을 보라! 어떻게 저들까지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같은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도 안 지사의 발언에 ‘분노’가 빠져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⁴추위를 뚫고, 그것도 폭력으로 확전 시키지 않으려 최대한 억누르며 다스려온 분노 앞에, 안 지사의 발언은 분명 충격으로 들렸음직하다. 그런데, 이 사태가 끝나고 난 이후는 어찌 될 것인가? 그러니까 분노 이후의 우리 말이다.


 지금은 선악의 구분이 분명한 시절이다. 문제를 일으킨 자들의 수준이 너무나도 저열하여 피아식별이 수월할 뿐이다. 그런데 이 사태 이후에는 다시, 고도화된 우리 사회의  문제들 앞에 서야 한다. 국회를 바라본다. 정권교체가 된다 해도, 민주당 의석은 과반수에 못 미치는 121석이다. 그나마 국민의당, 정의당과 힘을 합쳐 과반을 넘긴다 해도,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180석에는 여전히 모자라다. 우리 사회가 진즉에 맞이했으나 행정부의 직무유기로 단 하나도 진전이 없었던 문제들, 양극화, 저출산, 청년 실업, 신 성장동력 마련 등의 해결을 위해서 입법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다음 총선은 무려, 2020년이다.


 적폐를 청산하자고 말한다. 중요하다. 하지만 권력을 빼앗겼다고 여길 자들이 분노 이후에 내미는 손을 잡아줄 리는 만무해 보인다. 지금이야 상종도 못 할 존재들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같은 테이블에 앉아야 할 상대임을 생각한다. 단지 2020년까지가 아닌, 박근혜 정부가 손 놓고 있던 시간을 포함시켜 보자면, 청산의 대상이라 치부하고 대립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누구 때문이건 간에, 우리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법 하나 어찌하지 못하는 지경에서, 어떻게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일까? 어떤 주장은 공허하다. 도리어 '대연정 구상'이나 '선의로의 접근'이 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발화되었다고 여겨지는 이유이다. 이런 관점에서 두 번째 변명은 ‘분명한 선악의 시절, 그 이후’를 말하고 있는 후보는 안희정뿐일 수도 있음이다.


** 정당 연대 시나리오 별 국회운영 예측 및 의석수 현황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


 이것은 일방적 추론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안희정을 이해하기 위해 적시할 사건으로 ‘노무현의 죽음’을 소환하는 절차는 필연적이다. 혁명만이 전부인 줄 알았던 피 끓는 정치 신인이 처음으로 마주한 민주주의가 무너졌던 시간으로 돌아가 본다. 역시 추측이지만, 필자는 '민주주의자 안희정'의 탄생을 노무현과의 만남으로 정의한다. 그런 존재가 떠났다. 그것도 더없이 비극적으로 떠나갔다. 이 거대한 이별 앞에 선 그를 상상한다. 타인을 선의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모든 사태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절망적 무력감, 내치고 싶을수록 끌어안아야 한다는 억압된 욕망이 자리 잡은 시기로 보인다. 그러니까 대연정 구상과 같은 발언이 단순히 참여정부 미완의 과제에 대한 책임감으로 읽히기보다는, 비극에의 트라우마로 의역 가능한 이유이다. 비극적인 죽음에 가장 고결하게 복수하는 방법이라는 나름의 자기 확신 내지는, 체면의 상태에 있음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관점으로 동정심을 품고 안 지사를 바라봐 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된다. 도리어 트라우마를 지닌 정치 지도자의 예측 불가능함이 나는 더 두렵다. 다만, '반체제 운동권자'로부터 '민주주의자'가 되기까지의 시련의 지점마다, 도리어 변화를 이루어낸 그의 성장기에 주목한다. 그는 힘든 일을 겪을 적마다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치적 아버지와 같은 존재의 죽음 뒤에, 관용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정치인은 흔치 않다. 이 같은 맥락에서 그가 그토록 목 놓아 타협을 주장하는 이유를 필자는 다음과 같이 받아들인다. 그것이 협치이건, 대연정이건, 선의에의 존중이건 그 모든 발화의 근간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이자, 극복에의 노력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자리한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안 지사에 대한 변명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흔하지 않은 비극으로 형성된 고결한 정체성은 너무나도 희소하여, 어찌 변모할지에 대한 예견마저 난해한 탓이다. 그리하여 세 번째 변명은 그가 외친 발화의 기저에 뭇 정치인들이 숱하게 ‘입으로만’ 극복이나 복수를 해야 한다고 외쳐대던, 노무현의 죽음이 있음이다. 이 근간은 쉽게 변할 수 없다.


*** 2009년 5월 23일,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출발하여 봉하마을에 도착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시신을 운구하는 침통한 표정의 참모진들 중 맨 앞에 선 안희정 지사의 모습









마지막 변명


 스스로의 부족을 알기에 직접 언급한다. 이 글은 지지 선언문이 아니다. 다소 가혹한 비난에 처한, 결코 이렇게 내쳐지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한 정치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주기를 바라며, 당사자의 견해와는 전혀 무관한 제삼자의 변명이다. 이상의 변명을 정리하며 안희정이라는 자가 인간 자체로 훌륭하다는 믿음은 더 단단해졌다. 그와 동시에 훌륭한 사람 아니, - 점수를 주는 김에 더 줘서 - 훌륭한 정치인이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필자 자신도 아직 이 대답에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그의 화두를 조금만 더 곱씹어 보자.


 우리는 익숙한 피아식별 이후에 구분된 ‘내 편’ 안에서 평안하다. 그런데 그 안락함 이후에는 ‘내 편’과 ‘네 편’, 그리고 그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는다. 어떤 분노가 우리를 뒤덮은 시절, 누군가 그 이후를 논하면 당황스럽다. 무척 당황스럽다. 그런데 생각해볼 수는 있다. 그가 적자임을 내세우는 어느 존재와 비교해 보자.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이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 ⁵이었다면, 안희정의 사람 사는 세상은 “나와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사는 세상”인 모양이다. 그런데 이것이 촛불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숙제는 아닐까? 범죄자에게 우호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아예 배척할 수 있나? 과연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기는 것인가, 설득하는 것인가? 안희정의 주장이 광장에 선 우리의 눈에는 멀고 낯설지만, 그 이후 삶의 영역에서는 더 가까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처럼 흥미로운 정치인의 존재만으로도 반가움을 느꼈다. 이를 마지막 변명으로 남긴다.


**** 2011년,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항의하는 농민을 안 지사가 포옹하며 다독이는 모습과 이에 당황하는 농민의 모습




참고

¹

 - JTBC 뉴스룸, 2017년 2월 20일 자, 연속대담 안희정 지사 편, “안희정 "누구의 주장도 '선의'로 받아들이는 게 소신"” 중

 - 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426575&pDate=20170220  


²

 - 사피어-워프 가설은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언어학적인 가설이다.

 - 위키백과 중 “사피어-워프 가설” 항목

 - ko.wikipedia.org/wiki/사피어-워프_가설


³

 - 한겨레 신문, 김종철 선임기자, 2017년 2월 25일 자, <토요판, 뉴스분석 왜> “‘노무현과 다른 길’로 ‘노무현 드라마’ 재현할까”

 - 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84140.html


 - 경향신문, 김지환 기자, 2017년 2월 20일 자,  “문재인 "안희정 지사의 발언에 분노가 빠져 있어"”

 -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201628001&code=910402


 - 노무현 사료관, “제142회 임시국회 첫 대정부질의” 중

 - archives.knowhow.or.kr/rmh/talk/view/2056072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JTBC 뉴스룸, 2017년 2월 20일 자, 연속대담 안희정 지사 편, “안희정 "누구의 주장도 '선의'로 받아들이는 게 소신"” 중 화면 캡처

 - 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426575&pDate=20170220 


*

 - 한겨레 신문, 김종철 선임기자, 2017년 2월 25일 자, <토요판, 뉴스분석 왜> “‘노무현과 다른 길’로 ‘노무현 드라마’ 재현할까”

 - 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84140.html


**

 - 동아일보, 문병기 기자, 2017년 2월 23일 자 “野4당 뭉쳐도 선진화법 못 당해… 대선 뒤 최대 이슈는 ‘연정’”

 - news.donga.com/3/all/20170223/83020383/1#


***

 - 노무현 사료관, 추모 전체 중 “봉하마을로 운구되는 고 노무현 대통령”

 - archives.knowhow.or.kr/memorial/all/view/2052625


****

 - 위키트리, 이인혜 기자, 2016년 12월 16일 자, “"미남계 쓰신다" 포옹으로 남성 달래준 안희정”

 - 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8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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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 주를 돌아보는 <김태은의 지난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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