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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하 Nov 29. 2019

사물과 오래된 마우스

나의 삶에 ___이 배달되었다.

오래된 친구가 숨을 거뒀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나와 손잡고 함께 일하던 친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에 어떻게든 살려보려다 다급했던 생각이 바뀌었다. 이 친구에게도 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동안 노고에 감사하며 깨끗이 닦아서 서랍장에 고이 모셨다.


나는 은근히 민감한 부분이 있어서 매일 사용해야 하는 제품은 매우 꼼꼼히 따져서 고른다. 특히, 마우스 같이 일을 해야 하는 도구는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가족이나 연인보다 내 손을 가장 오랜 시간 잡는 거 아닌가? 그래서 손이 얹어졌을 때 얼마나 편안한지, 잡기에는 적당한 크기인지, 클릭이나 휠을 굴릴 때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감도가 좋은지 등 나의 예민함을 충족시켜야 하는 필요충분조건들을 나열한 리스트를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살짝 피곤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터무니없을 수도 있는 여러 가지 사항을 충족한다면 쉽게 질리지 않고 진득이 오래 사용하게 될 것이다. 고심한 만큼의 애정이 사물에 깃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문득 고집스럽게 산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집안에 놓인 물건들을 하나하나 뜯어가며 언제 어떻게 샀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집안에 아직 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면면히 살펴보면서 재미있는 점 하나를 발견했는데 왠지 너무 따져서 사니깐 질이 좋거나 비싸거나 성능이 좋은 것만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안경, 향수, 수건 같이 나의 민감한 요구사항들을 만족스럽게 충족시켜 사들인 제품도 있지만, 가끔 불편해서 사용할 때마다 ‘내가 왜 이런 제품을 사서 고생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왜 욕실에 슬리퍼는 흉측한 모습으로 내 발바닥을 위협하고 있는가? 너무 아프다. 씻으러 갈 때마다 고통이다. '장수'라는 단어를 보지만 않았어도 집안에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건강'정도의 단어로 팔고 있었다면 외면했겠지만 하필 '장수'라니. 가족 코끼리 조각상이 있으면 돈이 들어온다는 어머니의 말도 안되는 토속신앙을 들으며 속으로는 '어머니! 제발요!' 했으면서 어느새 해외 직구로 급하게 주문해서 책장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떡 하기 자리를 차지하게 놓아두고 있다든지, 참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고 보니 프라이탁 가방에 큐빅으로 박힌 부엉이 열쇠고리도 달려있다. 여행지에서 산 말도 안 되는 피규어도 있다. 그때는 여행을 기억하려면 이거 꼭 사야 해! 했지만 볼 때마다 여행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환상은 없다. 그저 '저거 왜 샀지? 자리만 차지하네'라는 현실적인 생각만 든다.


나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대해 고민해 봤는데 이유는 아마도 사물이 가진 사소한 매력과 그럴싸한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건이 가진 특유의 매력은 불편하거나 무용하다고 느낄 때 스스로 자신을 설득하는 이유가 된다. '어허! 씻을 때마다 건강해지는 것 같구먼!, '어머니께서 기분이 좋으시게 한번 사볼까? 혹시 로또라도 되는 거 아냐?' '부엉이 눈이 꽤 귀엽네?'등 괜스레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다. 단순히 디자인이나 기능적으로 아주 우수하다고 해서 아가페적 끌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부족하거나 불편하더라도 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더라도 나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된다. 물론 그 매력은 나에게만 해당하면 되고 다른 누구의 관점과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마음이 동하고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는 그것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상을 봐야 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조건이 있는데, 첫째는 꼼꼼하고 세심하게 봐야 한다. 자세히 살펴보고 뜯어보면 남들이 찾지 못하는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고 하지 않았던가? 둘째는 온전히 만족하던, 사소한 매력에 끌리던, 나의 선택에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것이다. 책임감은 애정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다. 두 가지만 충족해도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둔 친구 대신에 몇 달을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오래 사용할 요량으로 새로운 녀석을 하나 장만했다. 역시 꼼꼼하게 따져서 사서 그런지 여러 가지 만족스럽다. 오래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손을 맞잡는 유일한 그대여, 우리 오래오래 해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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