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카의 퇴장과 도미지로의 시작, 그리고 더 깊어진 괴담의 세계
“흑백”으로 시작된 오치카의 괴담 듣기는 “금빛 눈의 고양이”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오치카의 미래가 행복이 아니라 괴담으로 점철되는 것 같아 마음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 한마디에서 저는 작가가 인물을 얼마나 아끼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로서 존중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래서 오치카는 떠났습니다. 흑백의 방의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향해.
오치카를 대신해 괴담 듣기의 주인공이 된 이는 사촌오빠 도미지로입니다.
가업을 승계할 부담이 없는 차남, 자유롭게 살아가던 한량 같은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오치카의 짐을 이어받습니다. 괴담을 듣고, 그것을 기록하고, 그리고 ‘버리는’ 사람.
주인공이 바뀌자 이야기의 결도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치카의 괴담이 신기하고 으슬으슬한 체험담에 가까웠다면, 도미지로가 이어받은 괴담은 한층 더 노골적으로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워졌습니다. 마치 문이 하나 더 열려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눈물점』의 마지막 이야기인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은 스케일과 공포의 밀도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만약 이 이야기를 오치카가 들었다면, 과연 그것을 ‘버릴’ 수 있었을까 상상해보게 됩니다.
도미지로라는 인물이기에 감당할 수 있었던 무게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는 언제나 놀랍습니다.
쓰고 또 써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처럼, 괴담은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는 점입니다.
괴담이라는 장르가 허구임을 알면서도, 읽다 보면 어느새 “혹시…”라는 마음이 스며듭니다. 그 미묘한 경계 위에서 독자는 서늘함을 경험합니다.
이야기의 힘이란, 결국 현실과 허구의 틈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는 것 아닐까요.
흑백의 방의 주인이었던 오치카가 떠난 자리는 적지 않게 허전합니다.
그러나 오치카의 미래를 생각하면, 작가의 선택을 존중하게 됩니다. 괴담을 듣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길을 선택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도미지로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괴담을 듣고, 또 그것을 버려갈지 궁금해집니다.
오치카와는 다른 기질, 다른 시선, 다른 책임감으로 이어가는 괴담 수집. 그것은 단순한 주인공 교체가 아니라, 괴담이라는 세계의 확장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백 가지 괴담을 모으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 초반에서 오치카는 떠났지만, 그 자리를 도미지로가 이어받았습니다.
저는 이제 도미지로를 응원하게 됩니다.
괴담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야기는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인물들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눈물점』은 한 사람의 퇴장이 아니라, 괴담 세계의 또 다른 시작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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