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 #5. 관찰
동남아 지역에는 ‘스콜(squall)’이라는 국지성 소나기가 종종 내린다. 갑자기 한 30분 정도 쏟아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쨍한 것이 특징이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몇 년을 살고 나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처음 동남아에 부임했을 때는 꽤나 신기했었다.
Kuala Lumpur에서는 정원이 딸린 주택에서 살았다. 비가 자주 오는 만큼 정원의 잔디는 빠르게 자랐다. 정기적으로 정원사가 와서 풀도 잘라주고 비료도 주었다. 나는 늘 초록빛으로 싱그러운 정원을 바라보는 것이 참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원의 잔디가 생기가 없어 보였다. 생각해 보니 이상하게도 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열대의 뙤약볕만 강하게 내리쬐는 날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어차피 정원사가 올 텐데 뭐’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는 시들시들하던 풀들이 누렇게 뜨면서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정원사는 기껏해야 한 달에 한번 정도밖에 안 오잖아? 만약 그 사이에 풀들이 다 말라서 죽어버리면? 원상복구 비용은 세입자인 내 몫인 거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의 불편한 마음은 나의 게으른 육신을 힘겹게 문밖으로 밀어내어 결국 수도 호스를 집어 들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종종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정원으로 나갔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뱀처럼 기다란 호스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정원 구석구석에 물을 뿌렸다. 몇 번 하다 보니, 회사에서 있었던 번잡한 마음을 떨쳐버리고 한 30분 정도 아무 생각 안 하고 머리를 비울 수 있는 꽤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성스러운 모기들만 물어대지 않는다면.
며칠을 그러고 나자 조금씩 정원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렇게 말라죽어가던 잔디 사이사이로 파랗고 싱싱한 어린잎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척이나 신기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어느새 나는 새로 솟아난 잔디가 또 어디 없나 찾아다니며 더 열심히 구석구석 물을 주고 있었다. 정원 곳곳의 풀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혹시나 어제보다 풀이 더 생기 있어졌는지, 또는 어제까지 없던 곳에 새로운 풀이 솟아나지는 않았는지 등을 주의 깊이 보게 되었다. 하루 사이에 눈에 띄는 차이가 그다지 있지는 않았을 터인데도 내 눈에는 왠지 풀들이 점점 더 싱싱하고 예뻐지는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아이고 귀여운 것. 많~이 마시렴… 에구머니나, 너도 있었네? 아휴~ 기특한 것…’
식물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라고 자부하는 내가 매일 30분 이상을 정원에서 식물들을 쳐다보며 보낸다는 것이 문득 재미있게 느껴졌다. 나태주 시인의 유명한 세 줄짜리 詩 <풀꽃> 이 생각났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앞을 보지 못하는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이라는 글에서 자신이 대학교 총장이 된다면 “눈을 사용하는 법(How to use your eyes)”이라는 필수과목을 만들겠다고 했단다. 무심결에 지나치는 우리 주변을 다시금 찬찬히 바라볼 때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기쁨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곱씹어보면 참 그런 것 같다. 중국의 고전인 <대학(大學)>에도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라는 말이 있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현자들은 ‘주의를 기울여 자세히 보는 것’의 가치를 사람들이 잊고 지냄을 안타깝게 여겼나 보다.
잔디나 풀꽃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화려하지 않은 사람, 천성적으로 자신을 내세우거나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우리는 그들의 진정한 가치를 못 알아보고 지나치기 쉽다. “The Power of Introverts (내향적인 사람들의 힘)”이라는 TED 강연으로 유명해진 수잔 케인(Susan Cain)은 자신의 저서 <Quiet>에서 세상 사람의 약 3분의 1은 본래 내성적인 성격을 타고난다고 말한다. 당연히 그들 중에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아인슈타인, 고흐,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사람들. 하지만 종종 내향적인 사람들은 외향적인 사람들(extroverts)을 선호하는 사회의 풍조 때문에 그들의 가치가 잘 드러나지 않거나 자주 저평가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손실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믿거나 말거나 나도 태생적으로는 내성적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나 사교모임에 참석하면 급격히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이 들고, 중간에 잠시라도 조용히 빠져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겨우 다시 일할 힘이 나는 걸 보면 특히 그렇다.
하지만 그런 나 자신조차도 사람들을 뽑고 관리하면서 가끔씩 내가 누군가의 ‘성격’을 그 사람의 ‘능력’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헷갈릴 때가 있다. 조용히 성실하게 일하면서 ‘소리 없이 강한’ 사람들… 그들을 ‘풀꽃’을 보듯 자세히 들여다보아주고 그들의 커다란 가치를 지나치지 않고 알아봐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러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2019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