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
이스탄불 공항, 새벽 다섯 시.
오랜만에 해외 출장을 나왔다. 이른 시간이지만 이 거대한 공항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합실 한켠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 노트북을 펼쳤다.
누가 보면 업무로 바쁜 것 같겠지만, 사실은 이 연재의 마지막 글을 쓰고 있다. 막상 연재라는 걸 해보니, 솔직히 말해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 정해진 발행일에 쫓겨서 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한 부담이고 스트레스였다.
그렇지만 한번 시도해 보기는 잘했다 싶다. 그동안 머릿속에 쌓여 있던 생각들을 꺼내어 정리해 볼 수 있었으니까.
2.
생각해 보면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10년 남짓 남았다. 그 사실이 처음 머릿속을 스쳤을 때는 ‘이제 정말 끝이 보이는구나’ 싶은 묘한 허무감이 밀려와서 한동안 우울했다. 저녁에 괜히 맥주 한 캔을 따서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출근하는 것이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그 출근이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이토록 섭섭하게 느껴진다는 게 좀 우스웠다. 그리고 내 인생의 대부분이 ‘회사에 다니던 시간’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기도 했다.
돌아보면 커리어란 게 거창한 설계의 결과라기보다 그때그때 버티며 그저 최선을 다한 결과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계획대로 된 일은 거의 없었던 반면 솔직히 운도 많이 따랐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이뤄놓은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나름 괜찮은 커리어였고 감사한 여정이었다.
3.
아직도 여전히 비행기를 타고, 낯선 도시를 오가며, 누군가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건강과 체력이 있다는 것도.
하지만 AI가 세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고, 요즘은 젊은 세대의 언어와 감성도 따라잡기가 힘들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서서히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으로 무대 위에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 부딪히고, 실수하고, 배우며, 다시 일어설 것이다. 이번 연재는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생각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4.
공항 안내 방송이 울린다.
“아테네행 OOO 편 — 탑승을 시작합니다.”
이제 노트북을 덮고 가방을 챙길 시간이다. 아직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그저 잠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인생도,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계속 한 걸음씩 더 나아가야 한다. 길이 헷갈릴 때도 있고 잠시 막힐 때도 있지만 괜찮다. 중요한 건 여전히 일하고, 배우고,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아직 경유 중이다.
(2025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