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16년차 외국 생활도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 아내와 동네 카페에서(2025.11월)
연말이다.
올해도 연말은 그렇게 가고 있다. 수많은 행사와 출장으로 토요일에도 일정이 있지만, 인스턴트 라면 국물과 오랜 불에 우려 나온 사골 국물의 차이처럼, 많은 그리고 바쁜 일정이라 해도 갑자기 다가오는 공허감을 채워주진 못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어떻겠냐 싶겠지만, 외국에서 떠돌이 삶이 길어지다 보니 이맘때면 더욱 묘한 기분이 뭔가 설명하기 힘든 외로움과 만감이 교차한다. 흔히 생각하듯 현지인들과 어울리며 왁자지껄할 송년 파티를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한국에 있었더라면 간혹 있었을지 모를 친구나 지인들과의 가벼운 저녁에서의 일상의 대화가 더 그리운 연말이다.
한국을 떠난 지 몇 년이 되고 나이도 오십을 넘기다 보니 내 주변에서 떠나는 것들이 더 많아지고, 그런 일상은 오래된 노스탤지어를 그리는 뮤직비디오에서나 나올 뿐이다. 뭐 해? 하며 가볍게 전화를 걸만한 친구도 이젠 손가락에 셀 수 있을 정도 일 것이고(그렇게 많아? 할지도 모르겠다), 혼자 책상에 앉아 유튜브에서 나오는 예전 발라드에 커피 한잔 걸치며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면 그나마 호사가 되겠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쓸쓸함을 극복해 보고자 여러 궁리를 해본다.
올해 내가 한 일 중에 잘한 것이 뭐였지, 그래도 올해 그거는 했잖아 등을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요즘 잘했다기보다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래된 친구나 지인들은 영화 속 페이드 아웃되듯이 사라졌지만, 새로운 젊은 친구들이 가끔 그 자리를 메꾸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의 생일날, 브라질에서 웃음과 분노를 함께했던 S사무관이 로마에서 깜짝 놀랄 선물을 보내왔고, 나이는 한참 어려도 정신 연령은 나보다 훨씬 높을 것 같았던 지금은 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J도 잊지 않고 서울에서 커피를 보내주었으며, 일이 많은데도 늘 씩씩한 후배동료인 B영사가 해바라기를 들고 축하해 주었다. 또
다른 과의 한 직원도 휴가 갔다 왔다 사 왔다며 생각지도 못한 멋진 손수건도 선물해 주었다.
이제는 이렇게 축하를 해주는 사람들이 나보다 젊은 이들이 많다는 것에 나도 나이가 먹었나 보다라고 생각이 들게 한다. 오래된 인연이 가면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삶은 이렇게 이어져가는 거겠지라는 생각에 이제는 이렇게 사람들이 나를 생각해주고 있어라고 자랑하기보다는 그래서 그나마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안도감을 갖게 해 준다.
하지만 잠시간의 도파민은 유효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에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16년 전부터 시작한 외국 생활에 10년이 지나갈 무렵 이제는 이런 일상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로부터 오륙 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마음, 그리고 이런 분위가 아직도 낯설다. 나름 남들보다 혼자 잘 지내고 혼자서도 잘 논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뭔가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이제는 주변을 꽉꽉 채우는 것 같다.
오늘은 날이 추워져서 아들도 다음 주 시험공부를 집에서 하겠다고 하고, 아내도 아침부터 빨래를 하고 마루에서 옷감을 개고 있다. 나는 방에서 중국어 공부를 해보겠다고 책을 펴놨다가 알 수 없는 감상 때문에 한 시간째 키보드 방황을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집이라는 한 공간에 아내와 아들과 같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몇 년 지나면, 집이라는 둥지를 떠나는 아들의 빈 공간을 아내와 둘이서 채워나가야겠지. 그래서 그래도 지금 셋이 있는 이 시간과 공간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연말의 시간은 지나간다.
나는 다시 감상에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다고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시간이 이어지고 쌓여가는 것
그것이 인생인 것 같다.
거짓말 같이.
https://youtu.be/2TK0eL50EkA?si=L88Q2NfKx0vJlONo